대중스타로서 임영웅이 가지는 경쟁력은 상당하다. 데뷔 스토리부터 매력적이다.
임영웅은 2020년 방영한 TV조선의 <미스터트롯>에서 우승한 후 단숨에 국민가수로 부상했다. 2021년 12월, 고작 데뷔 6년 차 가수 임영웅은 나훈아, 심수봉에 이어 TV(KBS) 단독쇼 무대에 올랐고, 올봄엔 K리그 시축자로 나서며 4만 5007명이라는 최다 관중을 모았다. 물론 가요계를 비롯한 엔터테인먼트업계 일각에선 “데뷔한지 30년을 넘긴 선배 가수들도 서지 못한 무대에 10년도 안 된 까마득한 후배가 먼저 섰다”는 말도 나온다. 그만큼 그의 이름을 건 TV쇼가 얼마나 이례적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러한 시기 섞인 시선은 16.1%라는 지상파 1위 시청률로 사그라들었다. 그런가 하면 방송가에선 “<미스터트롯>이란 프로그램에 임영웅이 등장하는 순간부터 영웅시대가 시작됐다”고 말하곤 한다. 임영웅은 이 무대의 첫 곡으로 노사연의 ‘바램’을 담백하게 풀어냈다. 자신을 홀로 키운 어머니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덤덤하게 불러낸 그의 목소리는 가창력이란 말로는 부족한 공감대를 형성했고, 시청자들에게 이름 석 자를 단단히 각인시켰다.
1991년 6월 16일에 태어난 그는 경복대에서 실용음악을 전공한 발라더가 꿈인 학생이었다. 트로트로 방향을 정한 후 2016년 ‘미워요’ ‘소나기’란 곡을 발표하며 트로트 가수로 데뷔한다. 하지만 데뷔곡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2020년 <미스터트롯> 최종무대에서 그는 고인이 된 아버지가 생전에 어머니에게 자주 불러줬다는 ‘배신자’를 노래했다. 이처럼 등장하는 순간마다 그와 가족의 짠내 나는 인생사가 전해지며 팬층을 두텁게 했다. 외아들인 그에게 “세상의 영웅이 되라”며 영웅이란 이름을 지어줬다는 아버지, 미용사로 일하면서 홀로 아들을 키우며 지금도 경기도 포천에서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다는 어머니, 가장 하고 싶은 일이 “어머니와 할머니에게 효도하는 것”이라는 아들의 이야기는 30대 이하 세대에겐 동년배의 감성으로, 40대 이상 세대에겐 동생, 아들, 손자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다가섰다.
임영웅은 스토리가 매력적인 데다, 실력도 뛰어나다. 한국 대중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가수다. 하재근 문화평론 가는 “임영웅이라는 사람 자체가 큰 매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인 노래 실력도 출중한데 인간성, 대외적으로 모범적인 태도 등이 높은 충성도를 이끌어냈다”고 강조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전 세대의 아이콘인 이효리가 여성의 패션을 비롯해 결혼, 육아 등 전반적인 라이프스타일에 영향을 미쳤듯이 임영웅도 자신의 인생사로 전 세대를 아우르며 리더로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른바 ‘임영웅 신드롬’을 ‘이효리 열풍’과 비교한 서 교수는 “1980년대에 태어난 세대를 변화시킨 혁신제가 이효리였다면 1990년대생을 비롯한 Z세대들에겐 앞으로 임영웅의 영향력이 버금갈 것”이라며 “임영웅의 음악이 트라우마세대인 Z세대와 기성세대를 융합하는 축이자 힐링 포인트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로 트라우마를 겪은 Z세대와 기성세대의 소통이 쉽지 않은 상황에 임영웅이란 스타가 전 세대를 아우르며 길을 내고 있다는 것이다. 서 교수는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가 사람들에게 힐링을 준다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대한민국을 뒤흔드는 대표적인 팬덤은 임영웅의 ‘영웅시대’다. 공식적인 회원만 20만 명에 달한다. 정식 활동은 하지 않지만 잠재적으로 팬심을 드러내는 이들까지 합하면 그 응집력은 어마어마하다.
지금의 임영웅은 ‘영웅시대’가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임영웅이 가수로서의 실력이 뛰어난 것도 있었지만 팬덤의 응원 문화가 그의 폭발적 성장을 만들었다.
영웅시대의 주인은 소속사 물고기컴퍼니지만 그 안에서 팬들이 자율적으로 모임을 만들었다. 영웅시대는 전국 어디에나 손쉽게 지부를 설치하며 쉽고 빠르게 만들어졌다. 따로 회장이 존재하지도 않는 상황 속에서 자발적으로 그룹 이름을 만들어 기부와 봉사활동을 이어왔다. 최소 10명에서 최대 50~100명까지 인원도 다양하다. 어떤 규칙에도 얽매이지 않지만 상당히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대외 활동에도 적극적인 게 요즘 팬덤의 특징이다. 영웅시대 역시 기자들에게 보도자료성 이메일을 집중적으로 보내는 홍보 일을 도맡아 처리하는 회원들이 있다. 영웅시대를 포함한 일부 팬덤의 경우 연예기획사보다 뛰어난 업무 처리 능력과 압박 수단을 갖춘 수준이다.
영웅시대 회원들은 도시락 봉사, 독거노인 정기 봉사, 급식 봉사, 산불 피해 기부 등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영웅시대의 한 해 기부 총액을 10억원 이상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들은 팬들의 새로운 기부 트렌드인‘팬덤 필란트로피’ 현상까지 만들어냈다.
똑똑한 팬 문화가 스타 시장을 움직인다. 영웅시대는 개설 이래 스타의 이미지와 커리어까지 고려하며 적극적인 지원과 홍보를 이어왔다. 이는 스타 개인은 물론 관련 업계 전반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기업 이상으로 조직화된 팬덤이 스타를 받쳐주고 끌어준다.
김성수 대중문화평론가는 “중년층이 새로운 가수를 발굴해 키우는 재미를 느끼며 관련 시장이 커졌다”면서 “스타와 팬 간의 정서적 거리감이 사라진 데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다양한 콘텐츠를 계속 선보이며 인기가 지속되는 양상”이라 분석했다.
팬덤의 주축인 ‘시니어 여성’에게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부, 지하철 전광판 홍보, 스트리밍, 굿즈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한다. 주도적으로 애정하는 스타를 지원하며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경제적 파급력이 다른 세대보다 월등하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보고서에서 “탄탄한 경제력을 갖춘 중장년층은 시간적 여유가 있어 결집력·행동력이 매우 강하며 활동 빈도도 높다. 1020세대보다 관대하게 트로트스타를 바라보기 때문에 지속성이 긴 편이다. 잃어버린 나의 정체성을 찾고 위안을 얻는 수단으로 관련된 소비에 적극적”이라 분석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분석한 ‘2012~2022 모바일 음악콘텐츠 이용 시간의 변화’에 따르면 지난해 50∼59세의 월평균 모바일 기기 음원 서비스 이용 시간은 19억8000만분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 연령대를 통틀어 19∼29세(55억9000만분)와 30∼39세(43억5000만분)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수치다. 통상 아이돌 음악 주요 소비층이라 여겨지는 13∼18세의 이용 시간인 10억5000만분의 약 2배에 달한다. 이 통계는 닐슨미디어코리아의 코리안클릭 데이터상 연도별 모바일 음원 서비스 앱 월평균 이용 시간을 산출하는 방식으로 작성됐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은 “13∼18세는 2017년까지 20대에 이어 (음원 앱) 핵심 이용자층으로 자리해왔으나 2017년부터 뚜렷한 이용 시간 감소세를 보였다”며 “지난해에는 50대가 13∼18세의 이용 시간을 웃돌았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추세는 K트로트의 식지 않는 열기와 무관치 않다. MBN <불타는 트롯맨>을 기획한 서혜진 PD는 “트로트에 세대교체가 일어나고 있다. 지난 10년간 발라드는 침체하고 트로트는 부흥했다. 트로트는 ‘힙’하고 ‘핫’한 아이템”이라며 “여전히 확장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그 중심에 임영웅이 있다.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인 <미스터트롯>을 통해 스타덤에 올랐지만 갈수록 인기가 단단해지고 있다.
트로트가 인기를 끄는 이유에는 ‘뉴트로’ 트렌드도 한몫한다. 뉴트로의 주체는 10~20대다. 이들은 경험해보지 못한 ‘옛것’에 새로움을 느끼면서 복고에 열광하는 것이다. 트로트가 뉴트로의 대표적인 사례다. 기성세대에게는 향수로 느껴지지만 그 시대를 살지 못한 세대에게는 새롭고 재미있는 경험으로 다가온다. 익숙한 것이 주는 심리적 안정감 역시 트로트가 부각된 원인 중 하나다.
유튜브, 틱톡 같은 동영상 플랫폼이 잇따라 등장하며 대중문화 소비 채널이 다양해진 것도 트로트 인기 확산에 영향을 미쳤다. B급 문화로 여겨졌던 트로트가 다양한 뉴미디어를 등에 업고 어느새 대세 문화로 자리잡은 것이다. 중장년층의 전유물이 아닌 전 세대가 함께 즐기는, 인기 콘텐츠로 도약한 모습이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는 “젊고 능력 있는 트로트 가수가 잇따라 등장하며 트로트 시장의 세대교체가 성공했다. 젊은층이 트로트 시장에 유입되면서, 무시 못 할 핵심 콘텐츠로 자리잡았다”고 분석했다.
Q 임영웅의 인기에 트로트 장르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습니다.
A <미스터트롯>이 미친 영향력이 꽤 컸어요. K팝이 유명해지니 모두 아이돌 음악만 들을 것 같지만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조사를 보면 가장 많이 소비되는 음악 장르는 발라드거든요. 마찬가지로 트로트도 중장년층 사이에서 지속적인 팬층을 형성하고 있었어요. K팝이 BTS라는 깔때기가 분출구가 됐듯 트로트도 임영웅이란 아이콘을 만난 거죠.
Q 임영웅이 아이콘이 된 이유라면.
A 그건 시대상과 맞물렸다고 봅니다. 소비자의 소비행태가 중요한 작용을 했어요. K팝이 세계적인 신드롬이 된 건 뛰어난 음악성이나 특성도 있겠지만 전 세계적으로 음악을 소비하는 이들의 소비행태가 바뀌었고, 바로 그 행태가 K팝과 교점을 만든 부분이 있거든요.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보거나 SNS로 짧은 영상을 감상하기에 K팝이 너무 잘 맞는 콘텐츠였던 거죠. 수동적인 소비에서 능동적인 참여로 바뀐 겁니다. 그런데 트로트의 저변이 확대되면서 스마트폰을 쉽게 사용하는 기성세대와 어르신들이 능동적으로 팬덤 문화에 동참하게 됐어요. 이를 통해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는 거죠. 임영웅 신드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팬덤 문화 중 하나가 ‘스밍’인데, 음원 순위를 높이기 위해 음원을 실시간으로 재생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주로 아이돌의 팬층에게 일반화됐었는데 이게 중장년층으로 확대되며 스트리밍 총공격으로 이어졌어요. 가요 종합 차트에서 임영웅의 노래가 1위에 오르는 횟수가 반복되며 아이콘으로서의 위상이 더 단단해지고 있는 겁니다.
Q 임영웅의 음악적 장점이라면.
A 임영웅 신드롬에는 사실 그의 독특한 음악적 지점이 있어요. 임영웅은 트로트에만 천착하지 않고 다양한 장르를 넘나듭니다. 특히 ‘런던보이’ 같은 곡은 굉장히 모던한 동시대 음악처럼 느껴지거든요. 중장년층 입장에선 트로트만 부르는 가수가 아니라 스펙트럼이 넓은 가수, ‘런던보이’를 들으면서 젊어지는 느낌을 갖게 되는 거죠. 그냥 힙한 아저씨가 되는 느낌이랄까요? 젊은층들도 “우리 엄마가 좋아해서 들어봤는데”라며 듣기 시작했어요. 팬덤이 확대되고 있는 가장 큰 이유죠. 또 하나, 바른 생활 이미지도 한몫하고 있습니다. 사생활이 없는 시대에 결점이 없다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에요.
Q 임영웅 신드롬이 언제까지 이어질까요.
A 지금도 충분히 오래 지속되고 있어요. 아마도 임영웅이란 인물을 뛰어넘을 또 다른 아이콘이 나온다면 상황이 달라지겠죠. 그 전까진 지금도 팬층이 넓어지고 있기 때문에 상당 부분 계속될 겁니다.
[김병수·안재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