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0일, 대한민국 금융 중심지 서울 여의도 페어몬트 호텔에서 열린 ‘제1회 월드크립토포럼(WCF)’ 개막식에는 준비된 좌석보다 많은 인파가 몰렸다. 특히 에릭 트럼프 월드리버티파이낸셜(WLFI) 공동창업자에 청중의 이목이 쏠렸다. 트럼프 창업자는 윤선주 두나무(업비트) 최고 브랜드임팩트 총괄과 대담을 진행하며 “달러와 금, 국채, 주식, 그리고 지식재산권(IP)과 부동산에 이르기까지 모든 실물 자산이 토큰화(Tokenization)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또한 디지털 자산과 탈중앙화금융(DeFi)이 기존 시스템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낡은 인프라를 현대화(Modernize)하고 ‘자본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창업자는 토큰화의 핵심 가치로 ‘효율’과 ‘민주화’를 꼽았다. 특히 전통금융사의 비효율적인 정산시간과 중개 수수료를 지적했다. 그는 뉴욕에서 서울로 송금을 할 때 스테이블코인을 사용하면 전통 은행 시스템을 사용하는 것에 비해 빠르고, 적은 수수료로 송금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런 ‘실용성’ 덕분에 스테이블코인이 글로벌 결제 인프라로 자리 잡았다는 뜻이다. 또한 “부동산, 예술, 음악, 영화 등 모든 자산이 토큰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례로 트럼프 타워를 토큰화하고, 토큰을 구매해 건물의 일부를 소유하는 식이다. 일반 대중도 소액으로 ‘조각투자’에 참여할 수 있게 되며, 이는 금융 권력이 소수 은행에서 대중으로 이동하는 ‘민주화’를 의미한다고 전했다.
실제 스테이블코인은 글로벌 결제 시스템의 ‘기반화폐’로 자리 잡고 있다. 2026년 초 기준 데이터에 의하면 스테이블코인의 연간 거래량은 33조달러에 달하며, 이는 비자(Visa)의 연간 결제액 14조달러의 두 배 이상에 달한다. 이 중 WLFI가 발행하는 미국 달러 페깅 스테이블코인 ‘USD1’의 시가총액은 1월 29일 기준으로 50억 달러를 돌파했다. 이는 스테이블코인 시총 기준 상위 5위권에 달하는 규모다.
미국과 일본 등 주요국들은 이러한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고 있다. 미국은 ‘규제 불확실성 해소’를 통해 기업들이 안심하고 사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집중했다. ‘지니어스법(GENIUS Act)’ 통과를 통해 가이드라인을 제시했고, 이에 발맞춰 테더(Tether)는 지니어스법을 준수하는 새로운 스테이블코인 ‘USAT’를 출시하며 시장 주권을 확보했다.
일본은 정부와 민간이 협력해 스테이블코인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포럼에 참석한 최초의 엔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사 JPYC의 노리타카 오카베 대표는 “엔화 스테이블코인이 석 달 만에 누적 발행액 11억엔을 돌파하며 매달 30%씩 급성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노리타카 대표는 아시아 국가들이 달러 의존도를 낮추고 자국 통화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스테이블코인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은 블록체인상에서 주식과 채권을 24시간 365일 스테이블코인으로 결제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고 있다.
금융 인프라가 낙후된 국가들에서는 스테이블코인이 기존 시스템을 보완하는 것을 넘어 ‘대체’하고 있다고 전했다. 마헤파 안드리아맘피아다나 마다가스카르 디지털개발·우정·통신부 장관은 바이디 시 투레 월드뱅크 디지털 전문관과 함께 블록체인이 바꾸고 있는 마다가스카르의 농업 및 행정에 대해 소개했다.
포럼에 참석한 한국 정부 관계자들은 개인 중심의 가상자산 시장 한계를 극복하고 시장 구조를 선진화하기 위해 법인의 가상자산 시장 참여 허용을 적극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권대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다른 나라는 디지털 자산의 제도권 편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라며, “정부는 스테이블코인 교류 체계를 포함해 디지털 자산 산업 전반을 아우르는 통합법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전통금융권에서도 기대를 포착했다. 둘째 날인 11일 연사로 참여한 이용재 미래에셋 디지털자산사업본부장은 “누가 블록체인을 먼저, 제대로 도입하냐에 따라 금융사들 간의 시가총액 순위가 많이 바뀔 것”이라며 말했다. 특히 “그동안 금융사는 주식, 채권, 원자재, 부동산 등 크게 4가지 자산군을 기반으로 서비스를 제공했는데, 여기에 디지털 자산이라는 새로운 자산군이 추가된 것”이라며 “이는 엄청난 호재”라고 강조했다.
도미닉 쉬너(IOTA 공동창업자) 등 해외 전문가들은 한국의 기술 수용성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규제 공백이 기업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지니어스법으로 시장을 선도하듯, 한국 역시 규제의 불확실성을 빠르게 해소하여 ‘그레이존’에서 사업을 영위하던 기업들이 투명한 가이드라인 안에서 혁신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트럼프 창업자 또한 속도를 강조했다. 한국은 IT 인프라와 1000만명에 육박하는 가상자산 이용자를 보유하고 있어, 아시아의 암호화폐 수도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명확한 규제와 산업 육성 전략이 필요하다며, “한국은 크립토 산업에서 매우 앞서 있으며, 빠르게 움직이는 국가가 이 금융 혁신에서 승자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10~11일 양일간 열린 포럼에서는 주요 연사와 금융계 인사를 포함해 800여명이 참석했다. 조셉 샬롬 샤프링크 대표, 그렉 킹 렉스파이낸셜 창업자, 앤서니 알바니즈 앤드리슨호로위츠(a16z) 최고운영책임자(COO), 노리타카 오카베 JPYC 대표, 제이슨 팡 소라벤처스 창업자 등 총 68명의 글로벌 디지털 자산 및 블록체인 전문가들이 주요연사로 참여했다.
[박수빈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86호 (2026년 3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