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의 160%가 1월 성과급으로 지급됩니다.’
연말·연초가 되면 직장인들의 주된 관심사 중 하나는 바로 성과급이다. 기업들의 호실적과 함께 통 큰 성과급을 지급한다는 소식은 선망과 질시가 결합한 미묘한 감정을 선사하기도 한다. 이러한 연유로 성과급은 업황을 간접적으로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올해 가장 논쟁거리가 된 기업은 매년 통 큰 성과급을 지급해온 삼성, 하이닉스와 같은 대기업이 아니었다. 주인공은 최대 연봉의 160%의 성과급을 지급한 CJ올리브영이었다. 2022년 사상 최대 실적을 낸 CJ올리브영은 직무에 따라 차등 지급한 결과 본사 소속 상품기획(MD) 직군은 연봉의 최대 160%에 달하는 성과급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속을 들여다보면 직군별로 차이가 크다. MD 직군을 제외한 다른 사업부의 성과급 지급 규모는 연봉의 20~40%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서는 ‘동기가 1월에 성과급으로 8000만원을 받았다’는 글이 돌면서 직원들 사이에선 부서와 직군에 따라 다른 성과급 격차로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글들이 올라오기도 했다.
성과급은 일정 부분 업황을 투영한다. 사상 최대 실적을 이룬 기업들은 구성원들에게 그에 맞는 성과급을 지급하지 않을 명분을 잃는다. 대표적인 사례가 2차전지 업체인 LG에너지솔루션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영업이익 1조원을 돌파하며 역대 최대 실적을 올렸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매출 25조5986억원, 영업이익 1조2137억원을 거뒀다. 전년도 매출(17조8519억원), 영업이익(7685억원)에 비해 각각 43.4%, 57.9% 증가한 수치다. 이에 따라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기본급의 870%를 성과급으로 지급하기로 했다.
출범 1년이 지난 신생 계열사임에도 불구하고 LG그룹 계열사 가운데 가장 많은 성과급을 받게 된 것이다. 이 외에 석유화학 분야의 LG화학 양극재 부문이 기본급의 700%, LG전자가 기본급의 550%의 성과급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동차부품 사업본부 역시 기본급 550%를 성과급으로 받았지만, 생활가전을 담당하는 H&A사업본부의 경우 기본급의 250~300%에 그쳤다.
고유가의 수혜에 힘입어 정유사들의 성과급도 상당하다. 현대오일뱅크는 지난해 12월 성과급으로 모든 임직원에게 월 기본급의 1000%를 지급했다. 이는 전년도 성과급인 기본급의 600%에 비해 상당히 늘어난 수치다. GS칼텍스는 기본 연봉의 50%를 성과급으로 지급했다. 2021년 기준 GS칼텍스의 1인 평균 급여액(1억552만원)으로 단순 계산하면 약 5300만원을 성과급으로 받는 셈이다.
SK이노베이션은 기본급의 800% 성과금을 책정했지만, 노조가 반발하고 있다. 에쓰오일은 아직 성과급 규모를 정하지 못했다. 지난해 SK이노베이션은 기본급의 1000%, 에쓰오일은 지난해 업계 최고인 기본급의 1600%를 지급한 바 있다.
다만 초호황으로 역대 최대급 성과급을 지급한 정유사들은 표정 관리하기에 바쁘다. 정치권에서 정유사들에 횡재세를 거둬야 한다는 주장이 연일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과도한 이익을 거둔 기업에 대해 과세해야 한다는 지적은 계속되고 있다. 유가가 올라 서민들이 피해를 봤는데 관련 제품을 다루는 기업은 그 와중에 평소보다 더 큰 이익을 봤다는 지적이다.
김윤정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주체에 과세하고 재분배하는 건 국회나 정부의 역할”이라며 “횡재세(목적세)나 사회연대세(누진세) 등의 다양한 방편을 통해서 고자산 증세를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유업계에서는 과거 적자를 냈을 땐 지원이 없다가 흑자를 올렸다고 이익을 내놓으라는 건 형평성 원리에도 어긋난다는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성과급에 대한 불만은 같은 그룹 내에서도 터져 나온다. 그룹사별로 집단성과급 제도를 운용할 때 피할 수 없는 불만이다. 대표적인 예가 삼성그룹이다. 삼성그룹은 연봉의 50%까지 최대한도의 성과급을 받을 수 있다. 올해 최대 성과급을 받은 업체들은 삼성전자 DS 부문(반도체), 삼성디스플레이, 삼성물산 상사 부문, 삼성바이오로직스, 삼성카드 등이다.
삼성은 연 1회의 초과이익성과급(OPI)과 연 2회의 목표달성장려금(TAI) 등 연간 총 3회 성과급 제도를 운용한다. 올해 1월에 지급하는 성과급은 OPI다. 전년 기준 소속 사업부 실적이 연초에 세운 목표를 넘었을 때 초과 이익의 20% 한도 내에서 개인 연봉의 최대 50%까지 매년 한 차례 지급한다.
문제는 반도체 불황에도 불구하고 최대 성과급을 지급했다는 점에 다른 계열사 직원들의 불만이 들려온다. 삼성전자 DS 부문은 연봉의 47~50%를 성과급으로 지급했지만 다른 사업부서는 성과급 규모가 절반으로 줄었다.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스마트폰)는 연봉의 29~33%를, VD 사업부는 18~22%를, 네트워크 사업부는 22~26%를 받는다. 생활가전사업부는 작년 초 연봉의 36%를 받았지만, 올해는 4분의 1 수준인 5~7%의 성과급을 받아들었다.
삼성전자 한 관계자는 “삼성 내에서도 ‘전자(삼성전자)’와 ‘후자(삼성전자를 제외한 나머지 삼성그룹 계열사들)’ 간의 계급이 존재하고, 삼성전자 내에서도 반도체와 다른 계열사의 신분 차이가 크다”라며 개인성과가 아닌 집단성과급 제도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재계 한 관계자는 “글로벌 인재 경쟁이 큰 반도체 분야는 성과급 불만이 이직으로 이어져 인재 이탈이 나타날 수 있다”라며 “관련 기업은 실적 악화에도 불구하고 사기 진작과 이탈 방지 차원에서 성과급을 푸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외에 SK하이닉스 역시 반도체 업황 둔화에도 높은 수준의 성과급을 지급한 이유다. 2022년 4분기에 10년 만에 분기 적자를 낸 SK하이닉스도 모든 임직원에게 기본급의 820%(연봉의 41% 수준)를 성과급으로 지급했다.
기업의 성과와 달리 높은 성과급을 가져가 눈총을 받는 곳도 있다. 대표적으로 한국전력이다. 30조원이 넘는 영업적자(2022년 실적 전망치)가 예상되는 한국전력공사에 ‘경영평가성과급을 지급하는 게 맞느냐’는 지적이다.
한전 성과급의 명칭은 두 가지로 하나는 한전 내부에서 진행하는 성과평가를 통해 차등 지급하는 ‘내부평가급(기본급의 200%·자체 성과급)’, 다른 하나는 정부 경영평가를 통해 차등 지급하는 ‘경영평가성과급(기본급의 300%)’이다. 경영평가에서 D등급이나 E등급을 받으면 경영평가성과급은 받을 수 없다. 모두 받으면 기본급의 500%가 성과급으로 지급된다. 한국전력 한 관계자는 “공공기관의 특성상 성과급은 되도록 챙겨주는 분위기”라며 “특별히 사고를 치는 등 문제가 없으면 (500%를) 채워준다”라고 밝혔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민의힘 이주환 의원이 한전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연봉 1억원 이상 직원이 3589명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한전의 전체 직원은 2만3563명인데 억대 연봉자 비율은 15.2% 규모였다. 전년 대비 억대 연봉자 수는 301명이었는데, 과거부터 이 비율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과거 억대 연봉자 비율을 살펴보면 2018년 1752명(7.8%), 2019년 2395명(10.4%), 2020년 2972명(12.7%), 2021년 3288명으로 4년 새 2배 이상 증가했다. 이에 대해 한국전력 측은 “2021년보다 경영평가 등급 상승으로 지난해 성과급이 지급돼 억대 연봉자가 증가했다”며 경영평가성과급이 증가했음을 인정하기도 했다.
최근 성과급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곳은 은행업계다. 정부가 고금리 환경에서 은행의 예금과 대출이자 차이인 예대마진 수익이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월 13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은행의 ‘돈 잔치’로 인해 국민 위화감이 생기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라”라고 지시한 바 있다.
은행권의 이자장사 논란에 대한 비판은 피하기 어렵다. 해외에 비해 예대마진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편이기 때문이다. 4대 금융지주에 속한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등 4대 은행은 지난해 33조원에 가까운 이자 이익을 거뒀다. 이는 전년보다 23.2% 늘어난 수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작년 예금은행 가계대출 평균 금리는 연 3.91%에서 5.6%로, 기업대출 평균금리는 연 3.3%에서 5.56%로 각각 뛰었다.
이러한 실적과 함께 주요 시중은행들이 최근 타결된 2022년 임단협 협상에서 성과급 지급 규모를 전년 대비 확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나은행은 2022년 임단협을 통해 이익연동 특별성과급으로 기본급의 350%를 책정했다. 2021년 임단협에서 기본급의 300%를 지급했던 것보다 50%포인트(p) 높아졌다.
신한은행은 경영성과급으로 기본급 361%(현금 300%·우리사주 61%)를, NH농협은행은 기본급 400%를 책정했다. 각각 전년에 기본급의 300%(현금 250%·우리사주 50%)와 350%를 지급했던 것과 비교하면 지급률이 대폭 상승했다.
KB국민은행은 2022년 임단협에서 기본급 280%에 특별격려금 340만원 지급에 합의했다. 전년에는 기본금의 300%를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각 은행의 성과급 지급률이 대폭 상승하면서 전체 지급 규모 역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금융감독원이 국회 정무위원회 황운하 의원(더불어민주당)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5대 시중은행의 성과급은 모두 1조3823억원으로 파악됐다. 이에 따라 올해 성과급 지급 규모는 1조4000억원을 훌쩍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5대 시중은행의 성과급은 2017년 1조78억원, 2018년 1조1095억원, 2019년 1조755억원, 2020년 1조564억원, 2021년 1조709억원, 2022년 1조3823억원으로 6년간 줄곧 1조원을 넘었다.
다만 고금리 환경에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린 은행들은 자연스러운 임금 인상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한 은행권 고위 관계자는 “금융 외에 통신, 자동차, 정유 등 따지고 보면 과점 위치에 있는 산업은 다양하다”라며 “금융만 공공재적 성격을 이유로 표적이 되는 것은 부당하다”라며 강하게 반발하기도 했다.
[박지훈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50호 (2023년 3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