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이 자국에서 열린 컨페더레이션스컵 축구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2001년부터 시작된 컨페더레이션스컵은 월드컵 축구대회가 열리기 전 해에 주최국과 각 대륙별 축구대회 우승팀이 다음 해 월드컵 주최국가에서 자웅을 가린다. 당연히 월드컵의 전초전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비록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우승하면 그 다음 해의 월드컵에서 절대 우승하지 못한다’는 ‘컨페더레이션스컵의 저주’가 있다고 하나, 그래도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우승한 팀은 객관적인 실력을 입증받으며 분위기에서 상승세를 탈 수밖에 없다. 우승팀이면서 컨페더레이션스컵의 호스트이기도 한 월드컵 유치국이라면 더욱 더 의미가 있다. 그 월드컵 유치국이 축구를 국기(國技)로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브라질이라면 월드컵 열기를 미리 불러일으킨다는 컨페더레이션스컵의 목적에 그만큼 부합하기도 힘들 정도로 후끈 달아오를 것이다.
특히나 ‘월드컵 최다 우승국, 축구와 삼바의 나라’ 등 표현에 어울리지 않게 세계 축구랭킹이 22위까지 떨어진 브라질에 이번 컨페더레이션스컵의 우승은 과거의 영광을 재현시키는 무대로 내년 브라질 월드컵이란 축제를 여는 서막 역할을 충분히 했다.
여느 월드컵마다 새로운 스타들이 탄생한다. 완전히 새로운 스타보다는 대부분 지역에서 눈길을 모은 선수들이 세계 최대의 무대에서 세계의 축구팬들에게 선을 보이고 인증을 받는 무대가 된다.
브라질은 이미 축구황제라는 펠레를 이을 선수로 네이마르라는 이제 갓 20세가 넘은 젊은 선수를 컨페더레이션스컵을 통해 화려하게 선보였다. 네이마르는 브라질을 떠나 세계 최고의 명문 강팀으로 현재까지 군림하고 있는 스페인의 FC바르셀로나에 합류한다. 본격적으로 세계 무대로 발돋움하는 선수로 이번 컨페더레이션스컵은 21세기 들어 최고 스타의 자리를 향한 네이마르에게는 그보다 더 잘 어울릴 수 없는 무대였다.
월드컵 주최국 브라질로서 이번 컨페더레이션스컵 자체가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대회였고 그 결과까지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축구장을 벗어나면 상황은 달라진다.
정부의 경제정책에 항의한 시위가 벌써 한 달째 대규모로 벌어지고 있다. 발단은 버스 요금을 100원 정도 올린 것이라고 하는데, 이전의 산적했던 문제들이 곪을 대로 곪아 터져 나온 것이라고들 한다. 컨페더레이션스컵이란 축제는 브라질의 성적과는 별개로 브라질의 가장 심각한 문제 중의 하나인 빈부격차를 보여주는 행사로 간주됐다. 브라질 노동자들의 한 달 평균 임금보다 많은 컨페더레이션스컵 입장료가 도마에 오르고 막대한 규모의 월드컵 경기장과 부대시설 건설비와 그에 얽힌 정부와 기업의 담합 등의 난맥상이 드러나며 시위는 더욱 격화됐다.
워낙 시간도 꽤 남아있고 브라질 사람들의 축구에 대한 사랑이 남달라서 현재로는 별 문제가 없을 듯 보이기는 하지만, 과연 내년 월드컵이 브라질에서 제대로 열릴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회의론도 나오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심각한 단계로 접어든 시위에 글로벌 기업들의 광고가 한몫 하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 나왔다.
거리로 나서라
이탈리아 자동차 기업인 피아트는 컨페더레이션스컵에 맞춰 거리응원을 후원하는 프로모션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락-레게, 펑크(Rock-Reggae-Funk)’를 한다는 브라질의 인기 그룹인 ‘오 랍빠(O Rappa)’가 한국으로 치면,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윤도현 밴드가 부른 ‘오, 필승코리아’와 같은 곡을 만들어 불렀다. 그 제목이 바로 ‘Vem Pra Rua’. 포르투갈어인데 영어로 옮기면 ‘Come to the Street’라는 뜻이라고 한다.
노래 가사에서 사람들을 보고 ‘거리로 나오라’고 하면서 이렇게 이어진다. ‘왜냐하면 거리야말로 브라질에서 가장 큰 관중석이란 말이지’(어느 기사의 영어 번역은 ‘because the street is the biggest grandstand in Brazil’). 시위대들은 ‘Vem Pra Rua’가 쓰인 플래카드나 깃발을 들고 같은 제목의 노래를 부르며 거리로 모였다. 브라질 사람들의 쓰라린 과거를 이기고 자부심을 일깨우는 가사가 울려 퍼진다. ‘이제 브라질은 이전 어느 때보다 위대해질 거야’(역시 영어 번역을 옮긴다-This Brazil that’s gonna become bigger than we’ve ever seen before).
사실 거리응원은 월드컵의 자동차 부문의 공식 스폰서인 현대차와 기아차의 대표 프로그램이다. ‘Fan park’라고 명명해 월드컵에 출전한 대부분의 국가들의 주요 도시에서 펼쳐진다. 2010년 남아프리카월드컵의 경우 월드컵 경기장의 총 관중 수보다 팬파크 거리응원에 참가한 사람들의 수가 많다고 해 화제가 됐다. 우승을 차지한 스페인의 경우 결승전에 무려 30여만명의 인파가 몰려들었다. 피아트가 현재까지는 브라질에서 열린 컨페더레이션스컵에 한정해 벌인 프로모션이지만 거리응원을 소재로 했다는 점에서 예의주시할 부분이다.
잠에서 깬 거인
피아트와 함께 브라질의 시위대가 사랑한 광고가 있다. 피아트 광고와 마찬가지로 광고 카피를 그대로 플래카드에 옮겨서 쓰고 있단다. 바로 조니워커의 ‘Keep Walking’ 캠페인의 브라질 편이었다. 조니워커는 2009년 길이가 6분여에 이르는 ‘조니워커, 세계를 걸어서 주유한 사나이’(Johnnie Walker, The Man Who Walked Around The World)를 단편영화 형식으로 선보였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유명 배우인 로버트 카알라일이 스코틀랜드 풍의 농촌 마을길을 걸으며 내레이션을 진행하는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조니워커의 창업주로부터 이어지는 역사를 보여줘 마케팅계 뿐만 아니라 영화계에서도 찬사를 받은 작품이다. 이후 2010년부터 조니워커는 주요 국가에서 현지 사정에 맞춘 이미지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잠에서 깬 거인(The giant woke up)’. 브라질에서 현지 캠페인으로 집행한 광고의 제목 겸 슬로건이다. 제목만으로도 시위대에 딱 어울릴 것 같은데, 이어지는 카피는 더욱 더 시위대의 피를 격하게 끓어오르게 만든다. ‘이 거인은 더 이상 잠에 빠져 있지 않는다. 계속 걸어라, 브라질이여!’(The giant is no longer sleeping. Keep Walking, Brazil.)
여기서의 ‘거인’은 땅 넓이로 세계 5위 국가이며, 경제적으로 남미 최대국가인 브라질의 나라로서의 물리적인 힘과 규모, 그리고 그런 국가에서 오랜 세월 동안 무시되거나 핍박 받아온 거대한 시민의 힘을 함께 상징하고 있다. 사실 둘, 곧 국가와 시민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 민중, 시민 없는 국가는 존재할 수 없다.
지난 2011년 9월호 바로 이 연재물에서 ‘논란을 만들어내는 광고하기’란 졸문을 실으면서 리바이스 광고물 얘기를 했다. 리바이스의 ‘앞으로(Go forth)’라는 광고가 폭동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영국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의 심각성을 감안해 광고의 영국 내 극장 및 페이스북 방영을 중단한 사건을 소개했다.
피아트와 조니워커는 브라질에서의 광고를 중단한다는 소식은 없다. 아마도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피아트야 우선적으로 컨페더레이션스컵이란 단기 이벤트를 겨냥한 광고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광고를 내리기는 했는데, 문제가 됐던 노래는 브라질에서 계속 인기를 끌고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내년 월드컵에서 피아트가 노래와 함께 이번 사건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주목된다.
조니워커가 2009년에 발표한 단편영화와 같은 광고영상물을 보면, 조니워커의 ‘Keep walking’이란 슬로건이 세계 여러 나라의 민주화 운동가와 정치지도자들이 애용하는 문구가 됐다고 배우 로버트 카알라일이 자랑스럽게 말한다.
당연히 브라질에서 조니워커가 자신들의 광고를 내리거나 수정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시위대에 의해 이용되는 것을 대놓고 말하지는 못하더라도 즐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기업에서 원래 의도했는지 여부는 명확하지 않더라도 이렇게 사회적인 의미까지 확대해서 해석되고 활용될 수 있는 광고카피나 마케팅 활동의 테마가 필요하다. 그런 카피가 훌륭한 카피이다.
브라질 인기그룹 O Rappa
상대를 높이는 방법
“만일 당신이 처칠과 이야기를 시작한다면 처칠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고 믿게 될 것이다. 하지만 로이드 조지와 이야기를 시작한다면 아마도 당신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이라고 느끼게 될 것이다.” - <세계를 뒤흔든 경제대통령들>(유재수 지음, 삼성경제연구소 펴냄)
제1차 세계대전 때 영국 수상을 지냈고 그 전에 상무장관과 재무장관을 지내면서 강성의 철도노조와도 타협을 하면서 최고의 협상자로 꼽혔던 로이드 조지에 관해서 정치인이자 작가였던 나이젤 니콜슨이란 사람이 한 얘기란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영국을 이끈 처칠과 비교되어 무릎을 치게 만들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직후 수상 자리에 오른 처칠은 의회에서 그 유명한 ‘피와 노고와 눈물과 땀(Blood, Toil, Tears and Sweat)’이란 연설을 한다. 연설 직후에 로이드 조지가 지지연설을 했다. 그 연설 중 “처칠이 수상이 된 것으로 인하여 처칠보다는 영국이 축하를 받아야 한다”는 구절이 있었다. 연설을 한 후에 로이드 조지가 처칠에게 다가갔을 때, 그 단호하고 터프한 모습을 보여주던 처칠이 두 손에 얼굴을 파묻고 흐느끼고 있다가 로이드 조지의 손을 잡았다고 한다. 상대를 올려주는 말이 그렇게 중요하다.
“고전이란, 사람들이 보통 ‘나는 …를 다시 읽고 있어’라고 말하지, ‘나는 지금 …를 읽고 있어’라고는 결코 얘기하지 않는 책이다.”
이탈리아의 소설가이자 평론가인 이탈로 칼비노의 <왜 고전을 읽는가>(이소연 옮김, 민음사 펴냄)란 책 맨 처음에 나오는 고전의 정의의 14가지 항목 중 첫 번째 항목이다.
동사 ‘읽다’ 앞에 붙은 ‘다시’라는 말이 당연히 읽었어야만 할 저작을 읽지 않아서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의 ‘궁색한 위선’을 나타낸다고 했다.
<비극의 비밀>(강대진 지음, 문학동네 펴냄)의 저자는 궁색한 위선을 꾸밀 필요가 없다며 다음과 같은 말로 독자들을 토닥이며 대표적인 고전이랄 수 있는 희랍 비극으로의 여정을 시작한다. “사실 ‘고전’이란 말은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부담스럽다. 이 단어가 대개의 독자에게 뜻하는 것은 ‘꼭 읽어야만 한다고 생각하지만 엄두가 나지 않는 작품’이거나, ‘시작은 했지만 마치지 못한 미완의 프로젝트’거나, 아니면 ‘겨우 다 읽기는 했지만 왜 좋은지는 확신이 서지 않는 작품’이기 쉽다.”
희랍 비극을 제대로 읽은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비극의 비밀>의 저자에 의하면 국내 유수한 어떤 대학의 매우 이름 높은 모 과 대학원생들에게 희랍의 3대 비극 작가를 아는지 물었더니, 소포클레스 한 사람의 이름이 겨우 나왔다고 한다. 그런 이들을 희랍 비극의 세계로 인도할 때 이런 고전을 읽지 않았냐고 윽박지르는 것보다는 이렇게 많은 이들이 고전에 대해서 느끼는 솔직한 심정을 얘기하며 다독거리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이런 뛰어난 성능의 제품을 쓰지 않느냐는 식으로 고객을 압박하는 광고들이 너무 많다.
자존심을 건드려라
“위험천만한 여행에 참가할 사람 모집. 임금은 많지 않음. 혹독한 추위, 수개월 계속되는 칠흑 같은 어둠, 끊임없이 다가오는 위험, 그리고 무사 귀환이 의심스러운 여행임. 물론 성공할 경우에는 커다란 명예와 인정을 받을 수 있음.”
어니스트 섀클턴이라는 영국의 탐험가가 있다. <섀클턴의 위대한 항해>(알프레드 랜싱 지음, 유혜경 옮김, 뜨인돌 펴냄)라는 책으로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남극대륙 횡단탐험에 나서려 배를 타고 가다가 얼음조각에 2년 가까이 갇혀 있게 된다. 그는 27명의 대원들을 조직하고 격려해 한 명의 희생도 없이 모두 무사히 데리고 귀환하는 데 성공한다. 그래서 리더십의 귀감으로 자기계발 강사들이 즐겨 인용하는 인물이 된다.
위의 인용문은 그가 탐험을 떠날 대원을 모집하며 낸 구인광고이다. 달콤하고 화려한 것을 보장하는 광고와는 반대로 접근했다. 지원할 사람들을 내쫓을 것만 같다. 이 구인광고는 단 세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도 이야기와 같은 흐름이 있다.
맨 처음은 이 광고를 하는 목적, 팔려는 것이 무엇인지 얘기한다.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위험천만한 여행’이라는 것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당긴다. 그리고 보통의 구인광고와 마찬가지로 ‘임금’을 얘기하는데, 높다면서 사람을 꾀는 게 아니라, 많지 않다고 솔직하다면 솔직하고, 괜스레 그런 얘기를 하는 듯 엉뚱하게 까발린다. 이 광고를 본 사람들이 ‘아니, 이 친구들이 무슨 얘기를 하는 거지?’하면서 더 깊숙이 끌려들어갔을 것이다.
점입가경이라고 사람을 쫓아내는 듯한 내용들이 이어진다. 춥고, 어둡고, 위험해서 무사히 돌아올 지조차도 장담할 수 없는 여행이란다. 그러면서 살짝 방향을 틀어 ‘성공할 경우에는 커다란 명예와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살짝이지만 앞서 한 무시무시한 얘기들이 있어서 급격한 반전의 느낌을 준다. 여운이 남는다. 마치 ‘그렇지만 너무 위험하고 열악한 환경이라 당신 같은 사람은 못할 거야’ 식으로 은근히 자존심을 건드리는 듯하다.
스토리텔링을 운운할 때 ‘기승전결’의 흐름이 있어야 한다고 하는데 마지막 문장에서 ‘전(轉)’과 ‘결(結)’이 함축적으로 함께 이루어진다. 장밋빛 환상을 심어준 광고는 기대 수준을 높여서 실제 상황에서 곧바로 실망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2년간 얼음섬 사이에 묶여서도 끝내 이겨낼 수 있는 원동력이 바로 이 광고에 담겨져 있지 않은가 생각된다. 엄청난 고생을 할 거라고 이미 알고 감수할 태세를 갖추고 합류를 했을 테니까. 실제로 그들은 탐험 자체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무사히 귀환해 명예와 인정을 받았다. 사람들이 알아준 것보다 자신의 결정과 성취에 스스로들 자부심을 갖지 않았을까 싶다.
업종에만 국한된 의미를 전달하는 광고 카피의 세계를 넘어서야 한다. 부러 의도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의미가 확대 해석될 수 있는 가능성은 언제나 있다. 그것을 어떻게 수용하고 활용할 것인지 준비를 해놓아야 한다. 자신을 화려하게 내세우기보다는 상대를 높이거나 터닝 포인트를 마련해 극적인 효과를 높이는 것은 모든 마케팅 활동의 기획에서 고려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