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Inside] 공정위서 ‘33억 과징금’ 맞은 쿠팡, 물류센터 화재·노동환경 논란에 혁신 이미지 좀먹어
김병수 기자 기자
입력 : 2021.08.27 14:22:44
수정 : 2021.08.27 14:23:05
2021년 여름은 쿠팡과 김범석 전 이사회 의장에게는 잊히지 않는 계절로 기억될 것으로 보인다. 먼저 지난 6월 17일에 일어난 경기 이천 덕평 물류센터 화재는 안전관리 소홀 문제로 이어졌다. 이전에도 쿠팡은 열악한 노동환경, 배송기사들의 과로사망 등 관련 이슈가 끊이지 않았다. 게다가 화재 당일 김범석 창업자의 이사회의장 등기 이사직 사임 발표가 알려지면서 ‘책임 회피가 아니냐’는 비난이 비등했다.
논란이 커지며 쿠팡 앱 이용자들은 한동안 불매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모바일 빅데이터 솔루션 업체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쿠팡의 일일활성화사용자수(DAU)는 화재 발생 후 1000만 명대에서 800만 명 전후로 떨어졌다.
최근에는 ‘유통 공룡’ 쿠팡이 자사의 최저가 보장 정책으로 인한 손실을 줄이려고 납품업체에 갑질을 일삼은 사실이 드러나 공정거래위원회의 철퇴를 맞았다. 공정위는 공정거래법과 대규모유통업법을 위반한 쿠팡에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32억9700만원을 부과한다고 최근 밝혔다.
김범석 쿠팡 창업자
조사 결과 쿠팡은 2017년부터 지난해 9월까지 LG생활건강 등 101개 납품업자에게 일시 할인 판매 등으로 내려간 경쟁 온라인몰의 판매 가격을 올리라고 요구했다. 경쟁 온라인몰이 판매가를 낮추면 바로 자사 판매가도 최저가에 맞춰 판매하는 쿠팡의 ‘매칭 가격 정책’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경쟁사인 11번가가 판촉 행사를 통해 A제품 가격을 1만원에서 8000원으로 내리면 최저가 매칭 정책에 따라 쿠팡에서 파는 A제품 가격도 1만원에서 8000원으로 떨어진다. 이에 따라 A제품을 6000원에 납품받은 쿠팡의 마진은 4000원에서 2000원으로 떨어진다. 이게 싫은 쿠팡은 마진 회복을 위해 납품업자에게 11번가의 판매 가격을 올리라고 요구한 것이다. 납품업자가 이를 따르지 않으면 쿠팡은 상품을 빼버리거나 발주를 받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쿠팡이 지속적으로 관리한 납품업자의 상품은 총 360개였다.
쿠팡은 128개 납품업자에게 자신의 최저가 매칭 가격 정책에 따른 마진 손실을 보전받기 위해 213건의 광고 구매도 요구했다. 소비자 할인 혜택 행사를 하면서 참여 납품업자들에게 할인 비용 57억원을 전액 부담시켰다. 대규모유통업법에선 납품업자의 판매촉진비용 분담 비율이 50%를 넘지 못한다. 또 쿠팡은 직매입 거래 중인 330개 납품업자로부터 연간 거래 기본계약에 약정하지 않은 판매장려금 104억원을 받았다.
이번 사건에서 공정위가 쿠팡에 적용한 공정거래법 핵심 조항은 23조1항4호에 규정된 ‘거래상 지위 남용 행위’다. 거래 관계에서 발생하는 협상력의 차이를 이용한 갑질을 막기 위한 조항이다. 공정거래법 시행령에 따른 거래상 지위 남용 유형은 ▲구입 강제 ▲이익제공 강요 ▲판매목표 강제 ▲불이익제공 ▲경영간섭 등 5가지다. 공정위는 이 가운데 쿠팡의 행위가 ‘경영간섭’에 해당한다고 봤다. 즉 납품업체가 G마켓·11번가 등을 통해 판매하는 제품의 가격을 결정하는 과정에 쿠팡이 개입할 수 있었던 것은 쿠팡이 상대적으로 ‘갑’의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중소 납품업체에 대해선 쿠팡이 거래상 우월적 지위에 있다는 것이 비교적 쉽게 이해된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갑질을 당한 기업 명단에 이름을 올린 LG생활건강, 유한킴벌리, 한국P&G, 매일유업, 남양유업, 쿠첸, SK매직, 레고코리아 등이 모두 ‘을’이었다는 데 대해선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쿠팡 역시 공정위 심의에서 이런 점을 강력히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쿠팡은 행정소송 불사
실제 쿠팡 측은 “재벌 대기업 제조업체가 쿠팡과 같은 신유통 채널을 견제하기 위해 공급 가격을 차별한 게 본질”이라며 LG생활건강은 독점적 공급자 지위를 이용해 주요 상품을 높은 가격으로 오랜 기간 공급해 왔고, 이에 대해 공급 가격 인하를 요청한 게 사건의 발단이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정위는 공정거래법과 대규모유통업법의 관련 조항, 법원의 수많은 판례 등에 비춰 쿠팡의 거래상 우월적 지위를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거래상 우월적 지위 판단에 필요한 요건인 ‘계속적인 거래 관계’ ‘상당한 거래 의존도’ 등을 모두 충족한다고 본 것이다.
김형배 한국공정거래조정원장(전 공정위 상임위원)은 그의 저서 <공정거래법의 이론과 실제>에서 “상대방의 거래 활동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거래상 지위가 존재하려면 계속적인 거래관계가 존재해야 하며, 일방의 타방에 대한 거래 의존도가 상당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조홍선 공정위 유통정책관은 “옛날에는 제조업체가 유통업체에 비해 우위에 있었다고 볼 수 있겠지만 (현재는) 이미 우위가 유통업체로 넘어갔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쿠팡은 공정위의 지적에 대해 행정소송을 통해 법원의 판단을 받겠다고 밝혔다. 공정위의 제재 내용을 인정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쿠팡은 “이번 사건의 본질은 재벌 대기업 제조업체가 쿠팡과 같은 신유통 채널을 견제하기 위해 공급 가격을 차별한 것”이라며 “문제가 됐던 2017~ 2018년 쿠팡은 온라인 시장 3위였고 전체 소매시장 점유율은 2%에 불과한 반면 LG생활건강은 생활용품 시장 등에서 점유율 1위의 대기업이었다”고 항변했다.
▶논란에도 성장… 흑자 전환은 요원
사건 사고와 논란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실적은 상승세다. 덕평 물류센터 화재와 불매운동에도 불구하고 2분기 매출 5조1812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대비 71%나 증가한 수치다. 상반기 전체 매출은 9조 8159억원으로 10조원을 눈앞에 뒀다. 성장세만 놓고 보면 압도적이다. 분기 매출 규모로는 오프라인 강자인 이마트를 바짝 뒤쫓고 있다. 문제는 여전한 적자구조다.
쿠팡의 2분기 영업적자는 5957억원이다. 덕평 물류센터 화재 손실 3413억원이 선반영된 수치지만 이를 제외하고도 영업손실은 2544억원에 달한다. 전년 동기 대비 119%나 악화된 수치다. 쿠팡 측은 이에 대해 로켓프레시(신선식품), 쿠팡이츠(배달), OTT(쿠팡플레이) 등 신사업 투자가 원인이라고 설명한다. 고객숫자와 객단가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도 덧붙인다. 실제 쿠팡의 2분기 활성고객(기간 내 1회 이상 구매고객)은 1702만 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100만 명이 늘었다. 구매 금액 역시 30만4000원으로 1분기 대비 1만원 상승했다.
하지만 시장에선 의구심을 표시한다. 로켓프레시 등 신규사업이 실적을 낼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점과 대만 일본 등지에서의 해외사업도 성공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그 이유다. 실제 쿠팡이 신규사업을 삼은 신선식품, 배달, OTT 등은 이미 시장에 강자들이 위치해 있다. 마켓컬리, 배달의민족, 넷플릭스 등이다. 과거 쿠팡과 같이 단기간에 매출을 높이기 쉽지 않은 구조다. 이커머스 역시 네이버, 카카오, 이베이를 품에 안은 신세계 등 비슷한 모델의 경쟁사가 계속 등장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적자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성장마저 멈추면 진짜 위기가 올 수 있다”면서 “수익성 개선에 대한 청사진을 내놓지 못한다면 쿠팡에 대한 의구심은 지속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로켓배송 서비스로 로켓 성장한 쿠팡과 이 회사를 설립해 자수성가한 한국의 신흥부자 김범석 창업자가 최근 수많은 논란에 휩싸였다고 미국 블룸버그 통신이 전했다. 기존의 재벌과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만, 연달은 논란으로 기대감이 실망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김범석 창업자는 지난 3월 쿠팡의 뉴욕 증시 상장 이후 한때 재산이 89억달러까지 늘면서 신흥 부유층이 됐다. 특히 상장을 통해 배송직원인 ‘쿠팡친구(옛 쿠팡맨)’들에게 최대 1000억원(약 9000만달러) 규모의 주식을 제공하는 등 사회환원적인 모습을 보이며 대중에게 쿠팡이 기존의 재벌 기업들과는 다르다는 느낌을 줬다. 하지만 블룸버그는 불과 몇 달 만에 일련의 논란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김 창업자와 쿠팡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변화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