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가 답답하고 깜깜한 터널을 벗어나는 건가? 6월부터 각종 행사가 열린다. 학교들은 닫혔던 문을 연다. 나라마다 내려졌던 봉쇄 조치가 완화된다. 국경이 개방되고 입국금지도 풀린다. 멈춰 섰던 공장이 다시 돌아간다. 야구, 축구, 골프 등 프로 스포츠 경기는 무관중으로 개최된다. 여름 휴가철 성수기를 앞두고 해외여행 예약도 조심스레 재개된다. 예식장과 백화점, 호텔은 충격을 딛고 기지개를 켠다. 기업마다 채용 활동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증시에선 낙관론이 고개를 든다.
사실 위기의 근원, 코로나19를 뿌리 뽑는 ‘킹핀’은 백신이다.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은 5월 17일 “미국 경제가 완전히 회복하려면 코로나19 백신이 개발돼야 한다”며 정곡을 찔렀다. 백신은 질병 감염 전 신체에 주입해 병원체에 대한 후천성 면역을 부여하는 의약품이다. 면역효과가 강력하고 부작용이 없는 백신을 대량 생산하는 게 과제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종식시킬 대박 중의 대박인 게임 체인저가 된다. 미국·중국·유럽 간 백신과 치료제 개발 경쟁이 치열하다. 각국 정부마다 막대한 돈을 쏟아 붓는다. 초국가적 속도전을 펼친다. 기대와 희망을 북돋는 낭보가 잇따른다. 미국 생명공학업체 모더나가 청신호를 가장 먼저 쏘아 올렸다. 모더나가 발굴한 코로나19 백신 후보물질(mRNA-1273)은 1차 임상시험에서 항체 형성이란 고무적인 결과를 냈다. 연내 백신 후보물질이 2·3차 임상시험까지 통과하면 내년 중 코로나19 백신이 출시될 수 있을 전망이다. SK바이오사이언스, 바이넥스 등 국내 업체가 임상시험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강한 골리앗들과 다윗의 힘겨운 싸움이다.
미·중 간 ‘코로나 신냉전’이 점입가경이다. WHO 총회에서 미국 대표는 “중국이 코로나19 발병을 은폐하려는 시도로 전 세계에 엄청난 희생을 가져왔다”며 중국 책임론을 제기하면서 독립적 조사를 촉구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손해배상 청구를 시사했다. 반도체 봉쇄를 통한 화웨이 고사작전에 나선 미국은 중국을 글로벌 공급망에서 배제하려 한다. ‘건강 실크로드’를 주창하는 중국의 총공세도 만만찮다. 글로벌 패권 경쟁의 승패는 코로나19 백신의 최초 개발에 따라 가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칫국부터 마실 일은 아니다. 개발에 성공하더라도 충분한 백신 생산과 배분까진 산 넘어 산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5월 18일 세계보건기구(WHO)가 주최한 세계보건총회(WHA) 화상회의에서 “백신과 치료제는 인류을 위한 공공재로서 전 세계에 공평하게 보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신 접근권은 평등해야 하며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는 원칙론에 반해 현실에선 자국이익 우선주의가 판친다. 국가 간 이해가 충돌하고 국제 공조는 금이 간다. 미국이 독일행 마스크를 가로채자 독일 정부는 ‘현대판 해적질’이라고 비판한 적도 있다. 프랑스 제약사 사노피의 폴 허드슨 CEO가 한 인터뷰에서 “개발비를 후원한 미국에 백신을 우선 공급하겠다”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백신 성공에 대한 신중론도 무시할 순 없다. 파월 Fed 의장은 “경제 회복과정이 내년 말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불확실성을 강조했다. 코로나19 확진 후 완쾌된 영국 보리스 존슨 총리는 5월 17일자 선데이메일 기고문에서 “백신을 개발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고 말했지만 갈 길이 아주 멀다”면서 “솔직히 말해 백신이 열매를 맺지 못할 수 있다”고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완전한 퇴치에 4~5년이 걸린다는 견해와 함께 코로나19가 사라지지 않는 풍토병(엔데믹)이 될 수 있다는 비관론도 나온다. 망가진 경제가 단숨에 원상회복하긴 힘들다. 포스트 코로나의 뉴노멀은 과거보다 ‘10% 부족한 경제’라는 냉엄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