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평론가 윤덕노의 음食經제] 기념일에는 왜 케이크를 먹을까? 그리스 로마 시대에 신에게 바치던 제물에서 유래
입력 : 2019.12.10 10:08:36
수정 : 2019.12.10 11:37:48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 연말이 가까워지면 이래저래 케이크 먹을 일이 많이 생긴다. 종교를 떠나서 크리스마스를 케이크로 기념하는 사람도 적지 않고 12월에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이 있어도 케이크를 챙길 수 있다. 연말은 인사철이고 입시철이니 승진이나 합격 소식에 축하 케이크가 빠질 수 없고, 하다못해 디저트로라도 케이크를 한 번쯤 먹을 일이 생긴다. 그런데 왜 특별한 날을 케이크로 기념할까? 성탄절 케이크만 해도 우리나라나 미국, 일본은 주로 크림 케이크, 프랑스는 장작 형태의 부쉬 드 노엘, 독일은 눈 덮인 모양의 빵 슈톨렌 등 나라마다 모양과 이름은 달라도 많은 나라에서 케이크를 먹는다.
크리스마스를 케이크로 기념하는 이유로 12월 25일은 예수가 태어난 날이니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의미, 즉 생일 축하 케이크라는 뻔한 대답을 떠올렸다면 반만 맞고 반은 틀렸다. 혹 양력 달력이 예수가 태어난 해를 기점으로 삼고 있으니 아기 예수의 탄생은 2019년 전의 일이고 크리스마스는 유럽에서 오랜 역사를 지닌 최대 명절인 만큼 크리스마스 케이크도 그만큼 역사가 깊을 것이라는 도식적 대답 역시 정확하지 않다.
성탄절 케이크 풍속이 생겨난 것은 늦게는 19세기, 빨라봐야 14세기 이후부터다. 무려 시차가 500년이니 범위를 너무 넓게 잡는 것 같지만 이유가 있다. 크리스마스 역사가 뜻밖이기 때문인데, 그런 만큼 내용을 자세히 알면 미처 생각지 못했던 다양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먼저 크리스마스 케이크가 예수가 세상에 온 것을 축하하는 음식인 것은 분명하지만 생일 기념은 아니었다. 그게 그 말 아니냐 싶지만 미묘하면서 심오한 차이가 있다. 자세한 의미는 크리스마스의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현대 이전까지만 해도 아기 예수가 탄생한 날인 크리스마스는 중요한 축일(Holiday)이 아니었다. 가톨릭은 물론이고 개신교와 그리스, 러시아 정교를 포함한 범기독교에서 모두 마찬가지였다. 따지고 보면 크리스마스의 역사는 파란만장하다. 예수가 태어난 날만 해도 성경에는 정확한 날짜가 나오지 않는다. 우리가 지금 기념하는 12월 25일은 서기 336년, 교황 율리우스 1세가 예수 탄생일로 정해 선포한 날짜다. 그리고 이때 이후에도 1000년 동안 이 날은 그저 예수가 태어난 날이었을 뿐이다. 14세기가 돼서야 비로소 교회에서 크리스마스를 공식적인 축일(Holiday)로 제도화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중세는 물론 근대까지도 교회에서는 크리스마스보다 부활절, 그리고 지금 일반인은 잘 모르는 1월 6일, 주현절을 더 크게 기념했다. 특히나 교리에 엄격한 청교도는 크리스마스를 오히려 배척했다. 때문에 17세기 영국의 청교도 혁명 시기에는 크리스마스를 휴일로 인정하지 않았고, 심지어 청교도인들이 정착해 만든 초기 미국 사회에서는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면 5실링의 벌금을 부과했을 정도였다.
미국 연방정부가 크리스마스를 정식 공휴일로 정한 것도 미국 개척이 이뤄진 한참 뒤인 1870년이다. 이처럼 유럽과 미국에서는 19세기 이후에야 주현절보다 크리스마스를 보다 중요한 휴일로 기념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예수 탄생을 기리는 크리스마스 기념 케이크는 이때 갑자기 생겨난 풍속일까? 그렇지는 않다. 케이크는 이전까지 중요시됐던 주현절 축하 음식이었는데 이후 주현절보다는 성탄절이 강조되면서 크리스마스 케이크로 다시 자리매김한 것으로 본다. 이쯤에서 주현절이 무엇인지 궁금해지는데, 쉽게 말해 세 명의 동방박사가 아기 예수를 경배한 날, 예수가 세례를 받은 날 또는 예수가 최초로 기적을 보여준 날이다.
주현절(主顯節=Epiphany)이라는 명칭도 주님이 현신했다는 뜻이니 예수가 인간이 아닌 하느님의 아들, 메시아로서 공식적으로 나타난 날이다. 정리하면 크리스마스는 인간 예수의 탄생에, 주현절은 하느님의 아들로서 예수가 드러난 날에 초점을 맞췄다. 모두 성인 탄생의 뜻이 있다. 그러니 주현절에서 성탄절로 이어진 크리스마스 케이크의 의미는 하나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
크리스마스 케이크의 역사는 그렇다지만 각종 기념일에 굳이 케이크를 챙겨 먹는 이유는 무엇일까? 서양에서 오래 전부터 이어져 내려 온 풍속이고 전통이니까 별 생각 없이 따라할 뿐이기는 하지만 특별한 날을 케이크로 기념하는 데는 나름의 역사와 이유가 있다.
케이크가 평범한 날이 아닌 특별한 날에 먹는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기념 케이크의 종류마다 각각 다르기는 하지만 대부분 기원과 유래의 실마리를 고대 그리스 로마 문헌에서 찾는다. 기원전 2세기, 로마의 정치가이자 학자였던 카토는 저서 <농업론>에서 로마에서는 종교적인 이유로 다양한 케이크를 만든다고 기록했다. 케이크가 로마의 축제 음식이었다는 것인데, 이 무렵 축제는 신화에 나오는 신들을 경배하는 페스티벌이었고, 이때 먹었던 음식인 케이크 역시 신에게 바치는 제물이었다. 다른 문헌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서기 2세기 그리스 출신의 철학자이며 웅변가였던 아데나이오스가 쓴 <현자의 식탁>에서 술의 신이며 풍요의 신인 디오니소스 축제 때 보리로 만든 케이크를 제물로 준비했다고 나온다. 현대의 저명한 인류학자인 J. G. 프레이저도 그의 저서 <황금가지(the Golden Bough)>에서 그리스 사람들은 가을 축제 때 곡식의 여신 페르세포네에게 케이크를 바치며 곡식의 여신이 겨울을 무사히 넘기고 봄에 다시 부활하기를 기도했다고 설명했다.
동양에서 떡과 만두가 명절 때 하늘과 조상님께 바치는 제물이었던 것처럼 서양에서 케이크는 신에게 바치는 성스러운 음식이었다. 케이크의 유래를 그리스 로마 축제의 제물에서 찾는다면 생일 케이크는 누구에게 바치는 제물이었을까? 여러 설이 있지만 그중 하나는 그리스 신화의 여신, 아르테미스에게 바치는 제물이었다는 것이다. 아르테미스는 달의 여신이면서 사냥의 여신이지만 동시에 출산을 돕는 산파의 여신이며 아이의 수호신이다. 때문에 고대 그리스인들은 아이가 태어나면 무사히 출산한 데 대한 감사와 함께 아이의 건강을 빌며 달처럼 둥근 케이크를 만들어 아르테미스 신전에 바쳤다. 우리 조상님들이 아이를 점지해 보내 준 삼신할머니에게 미역국으로 삼신상을 차려 빌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렇게 아르테미스 여신에게 제물로 바쳤던 케이크가 생일 축하 케이크로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것은 로마 시대부터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서기 1세기 때의 극작가 오비디우스의 <트리스타(Trista)>라는 작품에 처음으로 생일에 케이크를 차렸다는 기록이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때도 지금과 같은 케이크를 먹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당시 케이크는 빵에다 꿀을 바르고 건포도나 호두 같은 견과를 올려 먹는 형태였다. 지금처럼 크림이 발라진 케이크는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약 2000년에 걸쳐 경제가 발달하고 풍요로워지면서 생겨난 결과물이다. 예컨대 빵에 크림을 입힌 것을 아이싱이라고 하는데, 18세기까지만 해도 유럽 귀족들 아니면 이런 케이크는 구경도 못했다. 크림 아이싱을 만들려면 계란, 치즈와 함께 설탕이 필수인데 당시만 해도 설탕이 엄청나게 비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무렵 유럽에서는 설탕을 약으로 먹었는데 지금까지 남아 있는 흔적이 약에다 설탕을 코팅해 놓은 당의정(糖衣錠)이다. 결혼식 때 준비하는 웨딩 케이크 역시 종교적 산물이고 뿌리 또한 로마 시대에서 찾는다. 로마의 사제 계급은 사제의 자녀끼리만 결혼했다. 이때 케이크를 자르고 나누며 한 가족이 되었음을 축하하는 의식(Confarreation)이 있었다. 이 전통이 웨딩 케이크로 발전했다는 것인데 이때 케이크는 참석자들이 모두 골고루 나누어 먹는 것이 전통이었다. 케이크에 다산과 장수의 소원을 담았기 때문으로 하객들이 케이크 조각을 나누어 먹으며 그 조각만큼이나 아들, 딸 많이 낳아 오래 살기를 기원했다는 것이다. 하객이 많이 참석해 케이크를 먹으면 먹을수록 아이를 많이 낳는다고 했으니 웨딩 케이크에는 다복(多福)의 소망이 담겨있다. 기념일 케이크에는 이렇듯 나름의 유래와 이유가 있다. 그리고 케이크에 담긴 진정한 의미는 결국 감사의 마음이다. 그런 만큼 연말에 케이크 먹을 일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다.
[윤덕노 음식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