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고뉴(Bourgogne)는 보르도와 함께 오늘날 프랑스 명품 와인 시장을 이끌어가는 양대 생산지 중 하나다. 북쪽 경계선은 파리에서 남동쪽으로 약 150㎞ 떨어져 있으며 동쪽으로는 스위스 국경에 맞닿아 있는 내륙의 요충지다. 부르고뉴라는 이름은 게르만족의 일파인 부르군트족에서 유래하였으며, 중세시대에는 강한 군사력으로 유럽 내륙의 봉건 영주들을 두렵게 하던 강력한 제후국이었다. 특히 10세기 무렵 프랑스 카페 왕가의 일원이 되면서, 부르고뉴 공국은 프랑스 국왕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가 되었다. 그 전성기에는 오늘날의 네덜란드와 벨기에, 스위스와 알자스 일부를 지배하에 두어 오히려 파리의 프랑스 국왕을 위협할 정도였다. 부르고뉴의 와인이 발전할 수 있었던 역사적 배경으로 유럽 내륙의 무역 루트를 장악한 부르고뉴의 군사력 그리고 부르고뉴 공작들이 프랑스 국왕과 형제 혹은 사촌 관계였던 특별한 관계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14세기 프랑스 왕가와의 밀월 관계가 끝나고, 프랑스 국왕령으로 완전히 복속되기 전까지 약 100년의 기간 동안, 부르고뉴는 프랑스 왕뿐만 아니라 이웃 영주들과의 전쟁에 국력을 소비하여 황폐해졌다. 이후 부르고뉴의 정치적, 군사적 영향력은 크게 후퇴하였으나 그 와인만큼은 품질과 명성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그 배경에는 부르고뉴 와인 발전의 역사적 한 축인 가톨릭 수도승들이 있다. 부르고뉴 공국의 행정 능력이 일종의 인프라스트럭처를 만들었다면, 그 뒤에서 실제로 와인을 만들고 품질을 발전시킨 것은 부르고뉴의 작은 마을들인 클뤼니(Cluny)나 시토(Citeaux) 등에 자리 잡은 수도승들이었다. 부르고뉴의 권력자들은 수도원에 포도밭을 기부하였고, 수도승들은 이곳에서 포도를 재배하며 자신들이 만드는 와인을 그리스도의 피만큼 성스럽게 여기며 품질의 발전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098년 부르고뉴 공작이 뫼르소(Meursault)의 작은 포도밭을 시토 수도회에 기부한 것을 시작으로 400년 가까이 이어온 협력 관계와 그 협력 관계의 한 축인 부르고뉴 공작이 몰락한 이후에도 또다시 500년 동안 번영해온 부르고뉴 와인의 역사가 부럽고 흥미롭다.
부르고뉴 와인은 단일 포도품종과 단일 포도밭이라는 독특한 특징으로 유럽의 다른 생산지들과 구분된다. 단일 포도품종이라는 말은 와인을 만들 때 하나의 포도품종만을 사용한다는 뜻이다. 부르고뉴에는 법적으로 허용되는 여러 가지 와인들이 있으나, 대체로 적포도주를 만들 때는 피노누아(Pinot Noir), 백포도주를 만들 때는 샤르도네(Chardonnay) 한 가지의 포도품종을 사용한다. 와인을 만드는 포도품종은 우리가 먹는 일반 포도와 구분된다. 와인용 포도는 또다시 적포도의 경우 카베르네 소비뇽이나 피노누아, 청포도의 경우 샤르도네나 소비뇽 블랑 같은 서로 다른 품종으로 구분된다. 처음 와인을 만들었던 원시인들의 포도밭에는 다양한 포도품종들이 모여 있었으나 원시인들은 그 차이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 점차 포도재배 기술이 발전하면서 서로 다른 포도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의도적으로 하나의 포도밭에서 한 종류의 포도품종을 재배하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물론 지금도 하나의 포도밭에서 서로 다른 포도를 재배하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 이유는 포도밭에 따라 다른 품종의 포도를 재배하려면 따로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포도품종들은 와인을 만들었을 때 그 맛과 향이 각각 다르기도 하지만, 재배하는 측면에서 볼 때에는 포도가 익는 시점도 다르다. 최고의 품질을 지닌 와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품질의 포도를 사용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좋은 품질의 포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포도가 가장 잘 익었을 때 수확하는 것이 기본이다. 만약 여러 종류의 포도 품종을 동시에 재배한다면, 포도가 익는 날짜 역시 다를 수밖에 없다. 냉장 기술이 발달한 지금은 먼저 딴 포도를 냉장 보관하여 포도가 변질되는 것을 막을 수 있으나, 과거에는 그렇지 못했다. 물론 과거에도 서로 다른 포도를 사용했을 때 생길 수 있는 문제를 극복하는 여러 방법들이 있었다. 가령 서로 다른 포도품종을 블렌딩해 와인을 만드는 보르도에선 빠르게 자라는 포도는 차가운 토양, 느리게 자라는 포도는 따뜻한 토양에서 재배해 두 포도의 최적한 수확날짜를 비슷하게 맞출 수 있었다. 아마도 부르고뉴에서 단 하나의 품종만 사용해 와인을 만들게 된 것에는 가장 적합한 하나의 포도만 사용해 최상의 포도 품질을 유지하기 위한 게 아니었을까 짐작된다.
부르고뉴 와인의 독특한 특징 중 하나는 포도밭에 따라 와인을 따로 만들며, 와인의 이름에도 포도밭 이름을 자주 사용한다는 점이다. 이런 와인들은 보통 ‘싱글빈야드(Single Vineyard) 와인’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종종 와이너리의 모습을 상상할 때 양조장 건물과 그 앞에 펼쳐진 포도밭을 떠올리지만 실제로 와이너리가 가진 포도밭들은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각 포도밭의 위치에 따라 ‘떼루와’라고 부르는 재배 환경이 다른데, 설령 같은 포도밭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 포도밭이 몹시 크다면 포도나무의 위치에 따라 재배 환경이 다르게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특히 부르고뉴에는 작은 구릉들이 발달해 있어 작은 위치의 차이에도 큰 기후의 차이를 내기도 한다. 대부분의 와인 생산지역에서는 서로 다른 환경의 포도밭에서 재배된 포도를 양조장으로 가져와 모두 섞어 한두 가지 정도의 와인을 만든다. 그 이유는 포도밭에 따라 서로 다른 와인을 만드는 데 매우 섬세한 작업과 추가적인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르고뉴에선 오래전부터 환경이 다른 포도밭에 따라 서로 다른 와인을 만들어 왔다. 이는 부르고뉴 와인이 대중적인 와인보다 주로 고급 와인으로 만들어져 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부르고뉴의 싱글 빈야드 와인들 중에서도 가장 재미있는 와인은 ‘몽라셰(Montrachet)’다. 부르고뉴의 복잡한 포도밭 이름들이 어떻게 생겼을지 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상상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몽라셰는 퓔리니(Puligny)와 샤사뉴(Chassagne) 두 마을에 걸쳐져 있는 세계 최고의 화이트 와인을 만드는 포도밭이다. 원래는 단 하나의 포도밭이었으나 18세기 무렵 르 몽라셰, 슈발리에 몽라셰, 바타 몽라셰, 비앙브뉘-바타-몽라셰, 크리오-바타-몽라셰 등 5개의 포도밭으로 나누어졌다. 언덕 위에 있는 슈발리에 몽라셰는 철분이 많고, 마을 쪽에 가까운 3개의 바타 몽라셰는 진흙이 많다. 전설에 의하면 오래전 퓔리니 마을의 영주에게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십자군 전쟁에 기사로 참여해 전사했다. 그를 기려 기사를 의미하는 슈발리에 몽라셰라는 이름이 생겼다. 영주는 아들이 전쟁에 나가 있는 동안 마을의 젊은 여인과의 사이에서 사생아를 낳았는데, 사생아를 뜻하는 바타 몽라셰란 이름의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5개의 싱글 빈야드에서 만드는 몽라셰 와인들은 또다시 포도밭을 공동 소유하고 있는 많은 생산자에 의해 수십 가지 이상의 와인이 만들어져서, 와인을 처음 시작하는 초심자들을 골치 아프게 한다. 부르고뉴의 고급 와인들은 우아하지만 너무 많은 이름 때문에 어렵게 느껴진다. 하지만 각 포도밭이 만들어진 과정을 이해하면 오히려 그 매력에 마니아처럼 빠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