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서울의 지하철을 타본 것은 43년 전의 일이었다. 그때 나는 강릉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학생이었고, 서울에 무슨 시험을 보러 올라와 친구들과 또 우리를 인솔하는 선생님과 함께 동대문에서 시청 앞까지 그것을 타보았다.
그때는 말 그대로 시골에서 처음 서울에 올라온 촌놈이어서 표도 선생님이 단체로 끊어서 그것을 개찰할 때 천공가위(명칭이 정확한지 모르겠다)로 구멍을 뚫어야 하니까 우리에게 한 장씩 나누어주었다. 나는 그때 개찰구 앞에 역무원이 들고 서 있는 천공가위를 우리 집에 있는 나무 전지가위와 참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전지가위는 나무를 자르는 날이 있고, 천공가위는 전철표의 구멍을 뚫는 것이라 날이 없는데도 그 두 가지가 참 비슷하게 보였다.
내가 사는 강릉에서 남쪽으로 정동진, 옥계, 묵호, 삼척으로 나가는 기찻길의 터널은 산을 통과할 때 굴을 뚫었다. 그런데 서울 지하철은 이 굴 속 위에 자동차가 다니는 길이 있고, 집이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애석하게도 선생님이 단체로 끊어 우리에게 한 장씩 나누어준 표의 전철요금이 얼마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학생 표는 성인 요금의 반쯤 할인이 되지 않았나 싶은데, 그때 거기에 금액이 적혀 있었을 텐데 혹시 그걸 잃어버리면 어떻게 하나 싶어 표를 받자마자 손안에 땀이 배도록 꼭 쥐고 있었던 기억만 난다.
그런 촌사람이 본격적으로 지하철을 생활의 한 부분으로 이용하기 시작한 것은 지방에서 대학을 다닌 다음 나중에 결혼해 서울에 와서 살 때였다. 첫 직장은 유행가 가사 속에도 나오는 마포종점 부근이었고, 살고 있는 전셋집은 1호선을 타고 청량리를 지나 지금 광운대역(그때는 성북역) 부근이었다. 그때는 한 달 정기권을 끊어 매일 아침 성북역에서 서울역까지 전철을 타고 거기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만리재 넘어 공덕동 회사로 갔다.
직장을 다니며 신인작가로 막 등단한 시절이었는데, 그때에도 읽어야 할 책이 참 많았다. 한국문단에 막 들어온 신인작가로 매달, 또 매 계절 발표되는 각종 문예잡지의 신작 중·단편소설을 한 편도 빼놓지 않고 읽던 시절이었다. 광운대역에서 서울역까지의 거리는 원고지 100매 정도(A4용지로 인쇄했을 때 12매 정도) 읽을 수 있는 거리와 시간이었다.
왕복하면 하루에 두 편, 토요일까지 근무하던 시간이니까 한 달 전철 안에서 내가 읽는 중단편 소설은 50편 정도라는 계산이 나오는데, 실제 매달 50편의 중·단편 소설이 발표되는 게 아니어서 그 무렵 나는 우리나라 작가들이 발표하는 모든 중·단편소설을 전철 안에서 읽은 셈이었다.
아주 이따금은 신문을 읽기도 했다. 그것은 출근할 때보다 퇴근할 때의 일인데, 지금은 대부분의 신문들이 조간으로 발행되지만, 그때는 조간보다 석간이 더 많던 시절이었고, 지하철에서 신문을 파는 사람들도 그냥 신문을 파는 것이 아니라 신문을 자기들 나름으로 편집해서 팔았다.
이렇게 말하면 얼른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5공 군사독재정권 치하였다. 독재정권은 일차적으로 언론과 학원을 통제했고, 그래서 대부분의 신문이 이 신문이 저 신문 같고 저 신문이 이 신문 같은 시절이었다.
이른바 ‘보도지침’이라는 것도 있어 거의 같은 내용의 신문이 신문사 이름만 다르게 인쇄되어 나온 듯한 모습이었다.
그런 시절 정작 신문에 날 만큼 중요한 정치적 사건이나 일들은 신문 앞머리에 오르지 못하고 한 귀퉁이에 밀려 아주 조그맣게 있는 듯 없는 듯이 났다.
그러면 지하철에서 신문을 파는 판매원들이 1면의 톱뉴스 대신 조그만 그 기사를 빨간색 사인펜으로 테두리를 쳐서 ‘오늘 신문에 이렇게 중요한 것이 났다’는 식으로 신문을 팔았던 것이다.
아무튼 광운대에서 서울역까지 7년간 전철로 통근을 하던 시절, 전철은 나에게 땅속을 달리는 도서실이었다. 전철 안에서의 독서 분량만 해도 한 달에 다섯 권은 족히 넘었던 것이다. 광운대역 부근에 살다가 은평구 신사동(그때 그곳엔 아직 전철이 들어오지 않았다)으로 잠시 이사를 했을 때 내가 가장 아쉬워했던 것도 교통편 그 자체가 아니라 오가며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에 대해서였다.
지금 살고 있는 곳은 신도시 일산이다. 이곳에 들어온 지 24년이 되었다. 직장을 그만 두고 오직 글만 쓰고 사는 전업 작가가 되면서 일산으로 들어왔는데,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이나 두 번은 이런 저런 일로 서울로 나가게 된다. 그때 이용하는 것이 전철이다.
서울에서 일산 신도시로 이사를 와 사는 동안 내가 내 자동차를 끌고 서울로 나갔던 적은 열 번이 채 되지 않을 것이다. 그것도 예전에 이따금 방송국에 나가야 할 일이 있을 때 그때 여의도에 아직 전철이 들어오지 않아서 내 자동차를 끌고 간 것이지, 여의도에도 전철이 들어온 다음엔 단 한 번도 자동차를 가지고 서울에 나가본 적이 없다. 언제나 전철이다.
어떤 사람들은 전철을 타면 거리 표정을 살필 수 없어 지겹기도 하다는데 나는 손에 읽을 것만 들면 전철보다 더 편한 교통수단이 없다. 내 자동차로 움직이면 목적지까지 도착하는 동안 내가 하는 일은 운전밖에 없지만 전철을 타면 그 시간 동안 책을 볼 수 있어서 아무리 먼 거리라도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 지인들의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받게 되는데, 장례식장이 강남삼성의료원일 경우 일산에서 가자면 짧은 거리가 아니다. 중간에 갈아타지 않고 3호선 한 노선으로 달려가도 전철 안에서 보내는 시간만 85분이다. 한 시간 반을 전철을 타고 가는 것이다. 이럴 때 사람들은 지겹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손에 읽을 것만 들면 그다지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지하철 안에서 내가 가장 난감해 하는 상황은 손에 읽을 것 없이 그냥 탔을 때이다. 그동안 지하철 안에서 읽은 책만 따져도 작은 서재 하나 분량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느라 함께 지하철을 탄 사람들을 살피지 못한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지만, 책을 읽는 일 또한 세상을 살피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 요즘엔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사람이 거의 없다. 신문을 읽는 사람은 더더욱 없다. 책을 읽어도 종이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핸드폰으로 책을 읽고 신문을 읽는다. 세상이 이렇게 변해간다. 10년쯤 후엔 또 그 자리를 어떤 물건이 대신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