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은 행복의 근원이다. 무병장수(無病長壽)는 많은 이의 소망이다. 제아무리 돈과 재산이 많은 사람이더라도 불치병에 걸리면 아무 소용이 없다. 현대 의료의 초점은 발병 후 치료에서 건강 유지와 사전 예방으로 옮겨간다. 바이오·제약·헬스케어는 성장성이 높다. 고령화 시대에 질병 예방과 치료는 유망산업으로 각광받는다. 돈 냄새를 맡은 구글·애플·아마존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대기업이 인공지능(AI)을 활용한 헬스케어 서비스에 본격 나섰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은 헬스케어 서비스 ‘아마존케어’를 선보인다. 우선 시애틀 본사 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시범사업에서 모바일 앱을 통해 다양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몸이 아픈 사람은 환자들로 가득 찬 병원 대기실에서 기다릴 필요가 없다. 집이나 사무실에서 의사와 영상 채팅으로 원격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원격의료를 통해 약 처방전을 받는 것도 가능하다. 아마존은 미국 주요 주에서 의료기기 배송, 의약품 도매업 면허를 보유하고 있다. 아마존은 지난해 온라인 약국 스타트업을 인수해 의약품 배달업에 진출했다.
구글도 바이오 헬스케어 사업에 일찍이 눈독을 들였다. 인공지능, 클라우드 기술을 접목해 글로벌 제약사들과 협업, 신약·의료기기를 공동개발하고 있다. 구글이 투자한 벤처기업들은 유전자 분석, 빅데이터, AI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새로운 치료제를 연구하는 데 몰두한다. 개인 맞춤형 암 면역치료 백신을 개발하고 유전자가위 기술을 활용한 치료법에도 역량을 집중한다. 구글은 바이오산업의 핵심이 보건의료 및 생명공학에서 의료 데이터 분석과 예측으로 넘어가는 추세에서 길목을 선점하겠다는 전략이다.
의료 산업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빠르게 전환한다. IT 기술의 발달로 의사와 환자를 새로운 방식으로 연결해주는 플랫폼이 등장한다. 환자가 소지한 스마트폰이나 팔찌형 모니터와 같은 센서로 생리적 데이터를 분석·집적하는 기술이 진화한다. 모든 감지 기술이 하나로 모아지면 가상공간에 병원이 존재하면서 네트워크와 소프트웨어로 의사와 환자관리가 통합될 수 있다. 데이터 주도 의료시스템은 개인 맞춤형 진료를 가능케 한다. 환자가 병에 걸리고 나서 병원에 가는 것이 아니라 몸에 이상 징후가 발생할 때 정확한 진단을 통해 개인의 유전자 구성에 맞는 최적의 약을 처방받을 수 있는 것이다.
아직도 건강관리 부문에는 많은 낭비와 비효율이 널려있다. 수많은 의사가 서로 연결되고 진료 경험과 정보 교환이 원활해지면 환자들은 보다 나은 진료를 받을 수 있다. 폐쇄된 의료시스템 공간을 열고 개방형 협업으로 이행해야 사회적 효용이 더 커진다. 의료계의 전문성이 향상돼 정확한 처방이 가능해지며 오진이 줄어든다. 의료 서비스 제공과 관련된 인력난이 해소되며 고비용 문제도 해결 가능하다.
우리나라 현실은 어떤가. 원격의료 도입을 골자로 한 의료법 개정안이 물 건너갔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7월과 올해 4월 도입을 언급했던 원격의료는 군부대 및 섬, 산골 마을 환자를 온라인으로 의사와 연결하는 사업이다. 당초 여당은 서비스산업발전 기본법에 보건·의료분야를 제외하는 대신 의료법을 고치는 핀셋입법을 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시민단체와 이해계층의 반발을 의식해 여당이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하지 않으면서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치게 된 셈이다.
선진국 기업은 저만큼 앞서가고 있는데 한국은 시범사업만 반복하며 시간만 허비하고 말았다. 세계 최고수준의 IT 기술을 원격의료에 접목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사라지게 된 것이다. 참다못한 원격의료 업체들은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해법은 이제라도 서비스산업발전 기본법에 보건·의료분야를 포함시켜 국회에서 통과시키는 것뿐이다. 조국 사태로 3달 가깝게 정국이 경색되며 모든 입법 활동이 올스톱되고 말았다. 경제활성화를 외면한 역사상 최악의 국회로 평가되지 않으려면 20대 국회는 이제라도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야 한다. 한국 의료의 어두운 미래가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