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출범 1년이 되어서도 아직 명쾌하지 않은 게 창조경제다. 해석이 제각각이지만 창조경제는 경쟁력있는 벤처창업과 IT를 중심으로 한 융합산업 육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이번 2월호에 만난 친환경 제조업체 제이알의 이진화 사장은 창조경제를 꿈꾸는 한국의 거친 맨살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이 회사의 주력 아이템은 마늘의 끈적끈적한 성분을 활용한 접착제다. 세계 첫 상품이라는 점에서 창조성 그 자체다. 천장에 거꾸로 달라붙어 있는 도마뱀 발바닥의 아주 작은 털(시테)에 착안해 만들어진 강력한 접착제를 연상케 한다. 천연재료를 활용한 만큼 친환경적이다. 어린 아이들이 접착제를 갖고 놀다가 먹더라도 안전하도록 주성분은 마늘이다.
창업 5년째를 맞았으니 이제 벤처기업을 갓 벗어난 수준이다. 공장 두 개를 짓는데 40억원 남짓 투자한 이 사장의 요즘 최대 관심사는 마케팅이다. 그는 은행과 기금 등을 열심히 찾아다니며 마케팅자금 지원을 요청했으나 매출을 넘어서는 지원은 불가능하다는 얘기만 들었다. 기술력은 인정하지만 기술 가치 평가 기준은 매출 밖에 없지 않느냐는 요지였다. 외형을 키운 다음 대출을 신청하라는 조언과 함께…. 이같은 현장 실태는 중소기업 기술을 담보로 한 대출 건수가 새 정부 출범 초기 반짝 늘었을 뿐 제자리 걸음인 데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벤처기업 설립이 늘었다고 한다. 묘목이 쓸 만한 재목으로 자라려면 제대로 가꿔야 한다. 창조경제 바람을 타고 늘어난 벤처기업이 싹도 제대로 틔워보지 못한 채 시들해진다면 구호만 그럴 듯한 ‘짝퉁 경제’로 전락할 뿐이다.
국가 간에도 짝퉁은 있다. 전 세계 IT산업의 메카 실리콘밸리를 본 딴 무슨무슨 밸리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남쪽 3900평방㎢ 면적에 인구 230만명, 일자리가 120만개에 이르는 실리콘밸리.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스탠포드와 UC버클리라는 거대한 연구대학이 인력과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인구의 4분의 1이 외국 태생일 정도로 개방성이 특출나고 전 세계 두뇌들이 집결해 있다. 정부가 산업 초기단계에서 스폰서와 주요 수요처 역할을 맡고, 벤처캐피털은 창업기업의 대부(代父)로 중요한 시점마다 경험있는 경영자를 지원하는 등 네트워킹을 주도하고 있다.
스톡옵션으로 대박의 꿈을 이룰 수 있다. 특이한 점은 창업기업에서 실패해도 벤처캐피털이나 헤드헌터를 통해 전직이 자유롭고 휴렛팩커드(HP)와 같은 거대기업에서 신생기업으로 이직도 활발하다. 참여자들 간의 상호 작용이 활력을 불어넣는 생산적인 구조다. 그 덕분에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혁신 생태계가 생겨났다.
경제를 일으켜 세우는데 온통 관심을 갖는 국가들이 이를 보고만 있을 리 없다. 실리콘밸리를 벤치마킹한 사례는 허다하다. 한국도 그렇지만 ‘밸리’ 한두 군데 없는 나라도 없을 성싶다. 하지만 성공스토리는 쓴 곳은 드물다. 왜 그럴까.
실리콘밸리에서 성공적으로 운영되는 제도를 베낄 수는 있지만 토양 차이가 가장 큰 요인이다.
우리에겐 독보적인 기업 삼성전자가 있어 한국 IT 생태계의 중심을 잡고 있다. 세계 시장점유율 1~3위 한국 업체를 들여다보면 삼성전자 납품업체가 절반이다. 그러나 삼성전자 혼자서 언제까지나 생태계를 끌고 갈수는 없다.
유학간 최고 두뇌는 미국에 머물기를 선호하고 정부는 충분한 스폰서 역할을 못하며 벤처캐피털은 사실상 대부업체로 전락한 지 오래다. 스톡옵션은 세금제도 때문에 의미가 반감되고 한 번의 사업 실패땐 재기불능으로 주저앉기 십상이다. 전도유망한 대학생은 대기업에만 줄서 있고 창업은 취직이 안 될 때 최후의 선택안이 되고 있다.
이제 입주가 코 앞에 닥친 혁신도시는 IT분야 혁신을 주도해온 실리콘밸리를 연상시킨다. 공공기관 이전으로 생겨나는 전국 10개 혁신도시는 세종시와 마찬가지로 가족들에겐 고통을 수반하겠지만 기대되는 역할은 지역발전을 위한 성장동력이다.
이스라엘을 모델로 한 창조경제가 잉태한 벤처기업이 초보단계를 벗어나지 못해 쭉정이가 되는 ‘짝퉁 경제’로 전락하지 않고, 실리콘밸리가 태평양을 건너오면서 이름만 비슷한 ‘짝퉁 밸리’가 되지 않으려면 절실한 노력이 필요하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귤화위지, 橘化爲枳)”라는 말이 지금 우리에게 되풀이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