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역사에서 위대한 군주로 꼽히는 청나라 강희제(康熙帝).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안민(安民)을 최고 덕목으로 삼은 군주다. 서로 으르렁대기에 바빠 민생은 나몰라라 하는 요즘 우리 정치권에 국민들이 가장 바라는 롤모델이다. 강희제는 여덟살 때인 1661년 왕위에 올라 무려 61년간 중국을 다스리며 강희-옹정-건륭으로 이어지는 태평성대, 즉 강건성세(康乾盛世)의 막을 열었다. 만주족과 몽골족, 한족의 피를 두루 받은 강희제는 다민족 통합의 리더십, 민생 우선의 정치, 철저한 공직 윤리 등 덕목을 고루 갖춰 현재까지도 중국인으로부터 칭송을 받고 있다.
이런 강희제에겐 현대 사회에도 통하는 혜안이 있었다. 파란 눈의 선교사를 등용하면서까지 서양의 과학기술을 과감하게 수용한 점이다. 홍수 예방을 위한 치수(治水)를 몸소 진두지휘하면서는 치수, 천문, 지리, 산술, 기계 등 한 가지 분야에만 능통해도 관리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 치수에 꼭 필요한 장인이 정규 과거제를 통과하기란 애시당초 불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과학기술은 국가 경쟁력의 핵심 변수 중 하나로 꼽힌다. 미국 독립선언문 기초위원이자 3대 대통령인 토머스 제퍼슨은 온갖 반대를 무릅쓰고 과학계 투자를 대폭 확대해 미국을 과학기술 대국 반열에 올려놓았다. 반면에 영국 빅토리아 여왕은 행정가와 정치가 양성을 위한 엘리트 교육을 중시하고 과학기술을 등한시한 결과 20세기 초 영국의 산업기반 약화를 재촉했다. 빅토리아 여왕은 “과학기술은 신사의 품위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을 남겼다.
박정희 대통령은 독재 비판에도 불구하고 한국 과학기술의 토대를 마련한 지도자라는 점을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미국이 월남 파병 대가로 한국 정부에 지원을 약속하자 당장 먹고 살기 위해 식량을 수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누르고 과학기술의 산실이 된 KIST 설립을 관철시켰다.
바야흐로 입시철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고장 난 레코드판처럼 이공계 위기론이 나오고 있다. 디지털시대엔 한 명의 인재가 10만명을 먹여 살린다는 데 ‘최고 인재’의 의대 쏠림 현상은 여전하다. 2014년 입시 배치 자료를 들여다보니 서울대 공대는 의과대학 꽁무니를 좇기 바쁘다. 최상위권에선 1점에 희비가 엇갈리는 상황에서 서울대 공과대학 가운데 가장 인기 높은 화학생물공학부는 서울 소재 의예과보다 무려 5점이나 뒤지고, 웬만한 지방대 의대보다 낮은 점수에 지원이 가능한 것으로 나와 있다. 기계항공, 물리천문, 전기정보학부는 가장 낮은 지방 의대와 비슷하거나 아래로 평가받고 있다. 1970~80년대 ‘수재들이 찾던 물리, 화학과’는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의대 진학에 관심없던 수험생마저 수능성적이 대박나면 의대로 발걸음을 옮기는 상황이니 의대 커트라인은 계속 올라갈 수밖에 없는 추세다.
‘이공계 위기’는 이공계 졸업자는 넘쳐나지만 극상위부분 인재의 층이 얇아 나온 얘기다. 국내 유수의 공대 수석졸업생마저 교수의 권유를 뿌리치고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하고, 의전원 입학에 조금이라도 유리한 학과로 학생이 몰리는 현상도 같은 맥락이다.
저출산은 대입 구조를 송두리째 바꿔놓을 뿐 아니라 인재수급에도 영향을 미칠 판이다. 올해 첫 입시를 치른 1995년 출생자수는 모두 71만명에 이르지만 10년 뒤인 2005년생은 43만명에 불과하다. 무려 28만명, 40%나 줄어드는 셈이다. 대학 입학이 쉬워진다며 박수치는 이가 있을 수는 있겠다. 하지만 인재풀은 적어지는데 최고급 인재의 이공계 기피 현상이 심해진다면 삼성 갤럭시와 현대자동차 명맥은 누가 이어갈 것인가.
2001년께부터 걱정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이공계 기피 현상은 1997년 외환위기 영향이 컸다. 실험실과 연구소 연구원들이 당장의 수익에 기여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구조조정의 칼날을 먼저 맞았다는 피해의식이 깔려 있다. 이공계 출신이 주류를 이룬 벤처 실험이 거품 붕괴로 마무리된 것도 무관치 않다.
의학도의 길을 선택한 이유가 의술을 천직으로 삼고 바이오산업에서 꿈을 펼치겠다는 것이라면 백번 장려돼야 마땅하다. 선진 의료기술로 외국 환자를 유치하고 국부도 키우는 의료산업 글로벌화가 이뤄진다면 금상첨화다. 하지만 의대에 줄서는 동기가 단지 팍팍한 삶을 피해가기 위한 것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공계 출신의 공직 진출 기회 확대, 연구환경 개선, 엔지니어에 대한 사회경제적 보상 등이 충분한지 우리 사회의 시스템을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