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2년의 총선과 대선을 거치면서 여야가 한 목소리로 복지확대를 부르짖었다. 일각에서는 포퓰리즘이라 비판하지만, 한국의 복지수준이 워낙 낮기 때문에 복지를 늘리는 것 자체를 문제 삼긴 힘들다. 복지가 포퓰리즘이 되는 경우는 그리스나 스페인 등의 일부 남유럽 국가들에서 그랬던 것처럼 복지는 늘리면서 그에 맞는 국민부담은 얘기하지 않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대선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런 것 같은데, 우리 국민의 정서를 보면 기본적으로 증세를 용인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박근혜 진영의 복지공약이 다른 진영에 비해 좀 약해보었는데, 적어도 5년 동안 증세 없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예산을 맞추려고 애를 썼기 때문일 것이다.
세금도 마음대로 늘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가 중요시 하는 전략은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를 추구하는 것이다. 20세기의 과거형 복지국가는 주로 노인이나 실업자 등을 위주로 복지를 실시했다. 그러다가 저출산·고령화 등 새로운 사회적 위험이나 복지국가 재정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게 됐다. 한국형 복지전략은 이러한 전통적 복지국가의 함정을 넘어서서 장기적인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려는 목적에서 출발한다. 출산, 보육, 교육, 실업, 은퇴 등 생애 각 단계마다 누구나 겪는 문제를 추려내서 그룹별로 필요한 복지를 촘촘하게 제공하고자 하는 것이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의 요체다.
지속가능한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해 새 정부 복지전략이 지향하는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이다. 성장과 복지는 바로 연결되지 않고 고용으로 매개된다. 한국형 복지전략을 통해서 2017년까지 고용률 70%를 달성하게 되면, 성장률도 올리고 중산층도 늘릴 수 있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한국형’ 복지전략이란 대부분 유럽의 선진국들이 실시했던 20세기형 복지전략과 분명한 차별성을 지닌다. 유럽병을 유발했던 과거형 전략은 연금보험이나 실업보험 등 현금복지를 강화하는 것이었다. 반면 박근혜 복지전략에서는 같은 복지욕구에 대해서 가급적이면 서비스복지를 주는 것을 기조로 한다. 사회서비스로 복지를 주게 되면 자동적으로 이 분야의 고용이 늘게 된다. 고용이 늘게 되면 복지비는 줄면서 세금은 많이 걷히고 성장률은 올라가게 되는 선순환이 시작될 것이다.
고용률 70%를 위해서는 2017년까지 238만개의 일자리가 필요하다. 다른 선진국과 비교할 때 고용률이 심하게 떨어지는 부문이 청년, 여성이기에 이 부문에서의 일자리 확충을 복지지출과 연결시키는 게 핵심전략이 돼야 한다. 특히 여성고용률 제고가 중요할 것이다. 한국의 자본주의가 겪고 있는 문제가 가부장적 자본주의의 늙은 모습이라고 한다면, 남녀가 평등하게 일하고 일과 가정이 양립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본격적인 선진화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현재 우리나라는 대학교육까지는 남녀 똑같이 시키면서 여성들은 집에서 가사나 맡으라고 하는 현실이다. 대학교육까지 수억 원이 든다는데, 여성들에 대한 교육투자는 전혀 뽑아내지 못하고 있는 형국인 것이다.
교육받은 여성들이 빠진 자리를 그 보다 못한 남성이 채우는 ‘생산성 하락’이라는 부정적 효과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제 복지국가가 엄마 노릇을 대신해줘야 하며, 그렇게만 된다면 취약 여성을 위한 ‘돌봄 일자리’가 확대됨과 동시에 고학력 여성을 위한 자유로운 사회활동의 기반이 마련될 수 있다. 고용을 중심으로 하는 한국형 복지전략은 한국 자본주의의 체질을 개선해서 다음 100년의 성장을 새롭게 견인할 거라 기대된다. 한국에서 바야흐로 복지국가가 시작된 지금, 얼마나 내고 얼마나 받을지에 관한 모두의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안상훈 서울대 교수·사회정책학]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1호(2013년 04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