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들에 처음 갔을 때 한국인들이 당혹감을 느끼는 것 중 하나가 일면식도 없는 외국인들이 씨익 웃어줄 때다. 길거리에서 처음 마주치는 외국인들이 웃음기 띤 얼굴을 보여주면 어떻게 응대해야 할지 순간 어쩔줄 몰라 하게 된다. 특히 미국인들은 지하철에서나 빌딩에서든 일단 눈이 마주치면 금방 얼굴에 환한 웃음을 짓는다. 총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라서 생겨난 에티켓이라는 해석을 나중에 들은 적이 있다. 서로 적대감이 없다는 걸 알려주려는 신호라는 거다.
유럽 여러 나라에서도 외국인을 상대로 비즈니스를 하는 이들은 미소를 보내는데 그리 인색하지 않다. 이웃 나라 일본에서는 과도한 친절에 오히려 거북함을 느낄 지경이다. 일본인들은 옷깃만 스쳐도 ‘스미마셍’을 소곤거린다. 막부시대 칼 차고 다니는 무사들이 길거리를 활보하던 나라여서 그런 문화가 생겼다는 말도 있다.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은 한국인들을 만났을 때 어떤 느낌을 가질까. 대체로 참 무뚝뚝하다는 인상을 받는다고 한다. 때로는 무언가에 화가 난 게 아닌가 오해를 사기도 한다. 우린 지하철에서 눈을 마주치면 불편하게 외면하고, 만원 버스 안에서 서로 밀치면서도 그냥 견디고 만다. 외국인들은 툭 치고 지나가는 사람이 아무 말을 하지 않는 게 기분 나쁜 경험이라고 한다. ‘쏘리’가 입에 익은 이들에게 한국인들은 상대에 대해 기본 예절이 부족한 사람들로 비춰진다. 초고속 성장을 해온 한국은 아직 벼락 부자의 나라, 졸부의 나라라는 이미지를 훌훌 털어내지 못했다. 돈 좀 벌었다고 뻐기지만 걸맞는 품위를 갖추지는 못했다는 뜻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매스컴이나 여행경험 영향 때문인지, 외국인들을 만나면 일부러 가서 말을 걸어보기도 한다. 딱히 외국인이라면 서양인, 특히 백인을 떠올리는 것도 아니다. 한국의 젊은 세대들은 미국이나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등 지역에 따라 큰 차이를 두지 않는다. 기성세대와 달리 2030세대는 흑인들이 스포츠 쪽에서 맹활약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다. 메이저리그의 강타자나 NBA 농구 스타,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축구 스타플레이어 중에는 흑인과 히스패닉이 많다. 미국에서 첫 흑인 대통령이 당선되고, 카톨릭 1200여 년 만에 처음으로 비유럽 지역에서 추기경이 교황으로 선출되는 세상이다.
한국에선 나이가 많을수록 외국인들에게 차갑게 대하는 편이다. 아마도 익숙하지 못한 탓이다. 50세를 넘어선 베이비부머들을 기준으로 더 나이든 세대들이 그들이다.
우리는 서로 모르는 처지라면 거의 적대감을 보일 정도로 냉랭하다. 반대로 조금이라고 아는 사이라면 강한 친밀감을 넘어 동질감을 보여준다. 친소 관계에 따라 극단적으로 다른 응대를 하는 것은 특유의 ‘연줄 문화’와 연계돼 있다. 혈연은 물론 지연 학연을 따져서 맞춰 보는 게 안면을 트는 방식이다. ‘치수는 재는 게 ’ 통과의례처럼 돼 있다. 같은 성씨라면 본관을 물어보고, 이어서 항렬과 촌수를 따져본다. 지연이라면 고향을 묻고, 학연이라면 고교를 묻고 대학 입학년도인 학번을 맞춰본다. 한국 사회에서 고교동문이라는 인연은 학연과 지연이 중첩되는 가장 핵심적인 연결고리다.
박근혜 정부의 골격이 짜여졌다.지역을 따져보고, 한편에서는 대통합에 미흡하다고 하고, 학교를 분류해서 신조어를 만들어낸다. 일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구시대의 잣대’일 수 있다. 달리 보면 모든 게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박 정부 들어 서울을 중심으로 경기 인천을 아우르는 ‘수도권 중심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인구 비중을 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한국의 베이비부머들은 고교 입시의 마지막 세대들이다. 경기고에 전국에서 수재들이 몰려들던 시절, 마지막 시험을 치른 연배가 76학번이고, 올해 만 56세가 됐다. 지방 5대도시 명문고는 77학번까지 입시를 치렀다. 박근혜 대통령 5년 사이에 고교 입시 마지막 세대들이 현대사의 중심을 지나 점차 퇴장의 길을 걷게 된다.
이후 일부 지방도시 고교에 우수 인재들이 몰렸지만 일시적이다. 외고와 과학고가 자리잡으면서, 그리고 수도권 인구가 급팽창하면서 명문고 학맥은 다양한 고교로 분산된다. 앞으로 5~10년이 지나면 출신고교 이름을 보고, 지역을 가를 수 있는 시절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40여 년 전 단행했던 고교 입시 개혁이 딸 박근혜 대통령 시대에 ‘세대 교체’라는 현실로 나타났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신세대는 글로벌 마인드를 가졌고, 연줄이 아닌 능력으로 평가받기를 원한다. ‘새로운 상식의 잣대’가 조용하지만 강하게 작동하기 시작했다고 하면 성급한 판단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