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와 정치권이 어떻게 대응하는가를 보면 그 나라의 미래를 알 수 있다. 성장률이 떨어지면 가장 먼저 나타나는 현상이 일자리 감소다. 그것도 일용·임시직 등 한계선상에 있는 일자리가 먼저 줄어 서민들의 삶을 힘들게 한다. 이때 어떻게 해서든지 일자리를 만들어 주려고 노력하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권력유지나 집권만을 위해 어려워진 서민들을 달콤한 사탕으로 선동하는 나라도 있다.
1990년대 중북유럽과 남유럽이 좋은 예다. 1992년 유럽은 환율안정 매커니즘 위기로 영국이 매커니즘에서 탈퇴하고 스웨덴이 금융위기를 겪었다. 독일도 막대한 통일비용의 지출로 어려움을 겪는 등 유럽전역이 홍역을 앓았다. 이때 남유럽 좌파정당들은 나라 빚의 증가는 아랑곳 하지 않고 복지지출 확대라는 포퓰리즘으로 집권에만 혈안이 돼 있었다. 자연히 재정사정은 악화일로로 치달았고 훗날 재정위기의 싹을 키웠다.
반면 독일 스웨덴 등 중북 유럽국가들은 정부지출을 줄이고 세금을 낮춰 민간투자 활성화로 일자리를 창출하는 정책을 선택했다.
특히 독일에서는 1992년 유럽통합으로 예상되던 과도한 기업 해외진출을 우려하는 ‘산업입지담론’이 1994년 대두되면서 산업입지경쟁력 강화대책을 대대적으로 추진했다. 1995년에는 실업보다는 비정규직이라도 일자리가 중요하다는 ‘고용담론’의 대두로 비정규직 일자리를 허용하는 고용촉진법을 개정하는 등 노동시장개혁을 단행했다. 이처럼 중북유럽의 사민당들은 전통적인 분배위주 정책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제환경 변화에 부응해 ‘제3의 길’을 모색하는 등 남유럽 좌파정당들과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그 결과 1995~2011년 평균 GDP 국가부채 대비 비율이 중북유럽은 56%인데 비해 남유럽은 81%로 큰 차이를 나타냈다.
우리나라도 지금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잠재성장률은 계속 하락해 전체 경제활동인구 2500만명 중 실업자가 90만명, 전체 임금근로자 1700만명 중 임시·일용직이 700만명에 이르고 있다. 자영업자 560만명 중 약 300만명 정도가 월 수입 100만원 미만의 영세자영업자라는 조사도 나오고 있다. 실업자 임시·일용직 영세자영업자 등 약 1000만명 정도가 생계유지에 곤란을 겪고 있다.
이들이 쓰고 있는 부동산담보대출이 약 400조원, 영세자영업자 대출이 300조원 정도다. 수입이 적어 대출부실화율도 증가하고 있어 폭발직전의 뇌관이다. 이는 성장률 하락과 부동산경기 침체 지속 → 일자리 축소와 하우스푸어 증가 → 고용불안과 영세자영업 증가 → 가계대출 증가의 악순환이 지속된 결과다. 이제 곧 금융부실과 재정부실로 이어질 순서만 남아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기업 규제로 투자를 더욱 위축시키고 반(反)부자 정서를 부추겨 부동산경기를 더욱 냉각시키는 정책은 한계선상의 1000만명을 길거리로 내모는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들이 살아야 양극화도 해소되고 경제가 선순환할 수 있다. 좌절하고 있는 1000만명이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도록 1000만 희망프로젝트가 추진돼야 한다. 악순환의 출발점이 성장률 하락과 부동산경기 침체다. 해외진출 기업을 위한 다양한 혜택부여, 투자를 옭매고 있는 각종 규제의 제로베이스 검토, 서비스 선진화를 위한 획기적인 규제완화 등 성장률 제고를 통한 좋은 일자리 창출이 급선무다. 부동산경기 진작을 위한 발상전환적인 효과적인 대책도 시급하다.
세계 최강 독일도 산업입지경쟁력 강화와 고용촉진 대책을 강구했다. 경제민주화라는 정치적 미명하에 재벌규제와 부자증세 등 거꾸로 가서는 안 된다. 경제가 이처럼 어려운 때에 성장담론이나 고용담론이 아닌 경제민주화라는 개념도 실체도 불분명한 담론으로 세상을 어지럽게 한 나라는 찾아볼래야 찾아 볼 수가 없다. 세계경제를 강타하고 있는 위기의 진원지인 남유럽에서도 복지담론 정도였지 경제민주화라는 용어는 찾아보기 힘들다. 하루 빨리 1000만 희망프로젝트로 한계선상에서 좌절하고 있는 1000만 서민들에게 진정한 희망을 주는 정책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오정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한국국제금융학회장]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23호(2012년 08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