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가 있는 38개 대기업집단 총수 일가의 계열사 지분율은 4.3%에 불과하다. 이와 같이 극히 적은 지분으로 총수 일가가 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는 것은 순환출자 때문이다. 외환위기 이후 재벌의 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계열기업 간 상호출자를 금지했다. 그러나 동 규제를 사실상 우회할 수 있는 순환출자는 금지하지 않아 이를 통해 총수 일가는 추가적인 자본 투입 없이도 지배력을 쉽게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글로벌 경제하에서 규모와 범위의 경제를 얻기 위해 기업집단의 대형화를 억제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극히 적은 지분을 가진 총수 일가가 독단적 판단으로 인해 경영에 실패할 경우 그 폐해는 매우 크다. 총수 일가의 책임은 그들이 가진 지분에 한정되지만 대부분의 손실은 결국 국민들의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시 상당수 대기업집단들의 도산이나 사업 실패로 엄청난 공적자금이 투입된 바 있다. 순환출자는 또한 2세에게 기업승계를 용이하게 한다. 적은 지분을 증여·상속하더라도 순환출자를 통해 기업집단 전체에 대한 지배력을 쉽게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2세에 의한 경영승계 그 자체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경영능력만 검증되면 2세(descendent CEO)에 의한 경영승계가 더 효과적이라는 실증분석 결과도 있다. 문제는 상속이나 증여 과정에서 정당한 세금을 내지 않고 편법적인 수단을 동원하거나 경영능력이 부족한데도 기업을 사유재산으로 간주해 가족에게 승계시키는 행태이다. 정부는 편법적인 상속·증여를 통한 부의 이전을 억제하기 위해 2003년 ‘상속세 및 증여세법’을 개정해 완전포괄주의를 도입했다. 완전포괄주의란 법률에 별도의 면세 규정을 두지 않는 한 사실상 재산의 무상이전으로 볼 수 있는 모든 거래에 대해 상속 또는 증여세를 과세하는 제도로 미국, 독일 등 선진국에서 도입하고 있다. 그러나 계열기업 간의 내부거래, 일감몰아주기 등을 통해 아직도 편법적 상속·증여 행위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재벌의 지배구조 개혁을 위해 도입한 중요한 제도 중의 하나가 지주회사이다. 이전에는 재벌의 문어발식 계열기업 확장을 막는다는 이유로 이를 법으로 금지했었다. 그러나 소유지배구조의 투명성과 계열기업 간의 위험의 전이를 차단하기 위해서는 동제도의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여론에 따라 외환위기를 계기로 이를 도입하고 지원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힘입어 현재 38개 대기업 집단 중 13개가 지주회사 체제로 이행했다. 그러나 재벌 총수 일가의 입장에서 보면 자회사에 대한 수직적 출자만 가능하고 자회사 간 출자는 금지되는 등의 규제로 인해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은 상대적으로 많은 자본의 투입이 필요하다. 이러한 부담으로 인해 삼성그룹을 위시한 일부 대기업집단은 아직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지 못하고 있다.
기업이 어떤 형식의 지배구조를 선택하던 간에 투명하고 책임성 있는 경영을 위해서는 이사회가 제 기능을 해야 한다. 이사회가 지배주주의 부당한 경영간섭이나 경영진의 독단적인 경영을 감시·견제할 수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사외이사의 독립성과 책임성이 매우 중요하다.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그 선임 절차가 중요하나 아직까지도 지배주주나 경영진과의 연고, 또는 권력기관이나 주요 거래처의 로비스트로 사외이사가 선임되는 관행이 적지 않다. 사외이사의 책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사외이사를 평가하고 감시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사외이사에 대한 내부 평가와 함께 이사회에서의 발언 내용 공시 등을 통해 사외이사에 대한 시장의 평판에 의한 규율이 이루어지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