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빨간 옷. 그리고 우울한 편지.’ 열성적인 씨네필이 아니더라도 ‘비 오는 날, 빨간 옷, 그리고 우울한 편지’가 그 영화 속 살인의 조건이었음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겁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에 나오는 설정이지요.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라디오에서 유재하의 노래 <우울한 편지>가 들려오면 붉은 계열의 옷을 입은 여성들이 성범죄 후 살해되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영화 <살인의 추억>의 원작은 김광림 작가의 희곡 <날 보러 와요>입니다. <날 보러 와요>를 봉준호 감독이 시나리오를 다시 써서 영화화했습니다. 두 작품은 여러 변주가 있습니다만 경기도 화성에서 일어나는 연쇄 강간살인 사건을 다룬다는 설정은 영화와 원작 희곡이 동일합니다. 또 끔찍한 성범죄를 저지른 악인을 형사들이 검거하는 데 실패한다는 점에서도 두 작품은 서사가 공통적입니다. 오늘은 <날 보러 와요>와 <살인의 추억>에 대한 이야기를 깊이 들여다보려 합니다.
<살인의 추억>은 미궁을 해매는 인간들, 그러나 실패하고야 마는 인간에 관한 서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강간살인이 연달아 벌어지자 특별수사본부가 꾸려지고 이곳엔 박두만 형사(배우 송강호)와 서태윤 경장(배우 김상경)이 핵심 인물입니다. 박 형사와 서 경장은 지능이 떨어지는 동네 천치 백광호, 성도착증 환자인 노동자 조병순, 말끔한 외모의 냉철한 회사원 박현규를 차례대로 용의자로 지목해 검거하지만 이들은 진짜 범인이 아닌 것으로 드러납니다. <날 보러 와요>도 미궁에 관한 서사라는 점은 같은데 인물구도가 다소 상이합니다. 중심인물은 박달호 형사(박두만의 원형 인물)와 김인중 형사(서태윤의 원형 인물)이고, 이들은 이영철, 남현태, 정인규를 차례대로 용의자로 지목해 검거하지만 진실을 확인하지 못하고 실패하고 맙니다. 인물관계도나 일어나는 일들은 영화와 희곡이 엇비슷합니다. 하지만 희곡을 읽어보면 봉준호 감독이 <날 보러 와요>를 변주해 영화 시나리오로 집필하면서 변화를 일으킨 부분이 상당히 많습니다. 연극 상연을 목적으로 하는 희곡 특성과 이를 영화로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선택했어야 했을 각색도 발견되지요.
첫 번째 변화는 바로 ‘세 명의 용의자’들에게서 발견됩니다. 우선 <날 보러 와요>를 자세히 살펴볼까요.
희곡 속 첫 번째 용의자는 ‘이영철’입니다. 이영철은 정신이상자로, 화성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오산정신병원에서 탈출했다가 잡힌 인물입니다, 그는 혈액형 ‘AB형’을 ‘BA형’으로 잘못 말할 정도로 인지능력이 떨어지고 심리상태도 불안정합니다. 그는 영화 속 백광호처럼 강간살인 현장의 유일한 목격자였는데, 두 형사가 그를 목격자라고 확신했을 때 스스로 열차에 뛰어들어 사망하게 됩니다.
희곡 속 두 번째 용의자는 ‘남현태’로, 그는 회사에선 아주 모범적이라고 평가되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남현태의 부인은 그를 “술주정뱅이에 섹스광”이라고 폄하하지요. 영화 속 조병순이 교회를 열심히 다녀 성도들의 지지를 받으면서도 범죄가 발생한 산속에서 자위행위를 하는 성도착증환자라는 이중성이 내재된 것과 비슷합니다. 세 번째 용의자는 ‘정인규’로, 영화에서 배우 박해일이 연기했던 바로 그 인물입니다. 정인규는 라디오에 자신이 좋아하는 곡인 <모차르트의 레퀴엠 1번>을 자주 신청했고, 이 레퀴엠 선율이 라디오에 흐르면 어김없이 여성들이 살해됐습니다(영화에선 <우울한 편지>). 그러나 그의 모근과 사건 피해자의 옷가지에서 나온 정액의 DNA가 일치하지 않았지요.
희곡 <날 보러 와요>을 자세히 읽어보면 아주 흥미로운 변화 하나가 발견됩니다. 바로 ‘상연 조건’입니다. 희곡은 연극 상연을 전제로 집필되는 글인데, 희곡에는 작가가 연극무대를 상상하면서 사전정보를 지시해두는 ‘무대 지시문’이란 게 있습니다. 쉽게 말해 “연출자와 배우들은 이런 저런 조건을 따라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흥미롭게도 <날 보러 와요>의 원작자 김광림 작가는 <날 보러 와요>에 이런 지시문을 남겼습니다.
‘[장면 10] 남현태가 취조실 의자에 앉아 있다. 장면 4 이영철과 같은 인물이다. 아이러니-형사들은 이 사실을 모른다.’(84쪽)
‘[장면 17] 김인중 형사가 정인규를 앞세우고 취조실로 들어온다. 정인규는 지난번 용의자(이영철, 남현태)와 같은 배우이다.’(128쪽)
무슨 의미인지 파악하셨을까요. <날 보러와요>에서는 용의자 3인 이영철, 남현태, 정인규를 연기하는 배우가 ‘같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1인 3역’이란 의미입니다. 동일한 배우가 3역(4역)을 연기한다는 희곡과, 이 조건이 생략된 영화는 큰 의미차를 형성합니다. 더 깊게 들어가 보겠습니다.
세 번째 용의자 정인규의 DNA 감정은 실패합니다. <날 보러 와요>에는 절망하는 김인중 형사에게 ‘진짜 범인’이 말을 거는 몽환적인 장면이 하나 나옵니다. 일종의 환상인데, 자신의 확신이 무너져 괴로워하는 김인중 형사에게 진짜 범인이 캐비닛 문 안에서 나타납니다. 희곡 속 이 장면의 무대지시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역시 먼젓번 용의자와 같은 배우이다.’(139쪽) 이로써 1인 3역의 배우가 아니라 ‘1인 4역’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살인의 추억>에선 용의자 3인을 전부 다른 배우들이 연기했습니다.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기억하시겠지만 <살인의 추억>에서 박두만 형사와 서태윤 경장은 사건을 수사하는 내내 갈등하고 충돌했습니다. 서태윤 경장은 “서류는 절대 거짓말 안 하거든요”라며 과학적 추론에 의한 진실찾기를 추구하고 (이성과 합리), 그 옆의 박두만 형사는 “옛말에 대한민국 형사들은 두 발로 수사를 한다 이런 말이 있어 이 새끼야. 너(서 경장)처럼 잔대가리 굴리는 새끼는 저 미국 가 새끼야”라며 본능과 촉에 따른 진실찾기를 추구합니다(직관과 영감). 두 형사의 이러한 세계관은 시간이 흐를수록 이성과 합리에서 직관과 영감으로(서 경장), 또 직관과 영감에서 이성과 합리로(박 형사) 변화되다 결국 전부 실패하지만 말이지요. 영화는 두 사람이 실패에 이르기까지 선택했던 ‘두 가지 확신’을 흡인력 있게 보여줍니다.
반면, <날 보러 와요>는 이성과 합리, 직관과 영감 사이의 이분법이 희석돼 있습니다. 김인중 형사(영화의 서태윤 경장)의 독특한 경력 때문입니다. 그는 서울대 영문과 출신에, 심지어 시인입니다. 김인중 형사는 틈틈히 습작 노트에 시를 쓰는 감성적인 인물인데, 그러면서도 과학적인 수사 방식을 선호합니다. ‘사건이 터지는 날에 하나같이 비가 왔다’는 단서를 가장 먼저 포착한 것도, ‘’라디오에서 같은 노래가 나올 때마다 사건이 터졌다’는 단서를 먼저 발견한 것도 그였지만 말이지요. 박달호 형사(영화의 박두만 형사)가 본능과 촉으로 수사한다는 내용도 희곡에는 자세히 나오지 않습니다. 즉, 희곡의 주제는 ‘눈앞의 진실조차 알아채지 못하는 무력한 인간의 고통’에 가깝습니다. 1인 3역(진짜 범인까지 합치면 1인 4역)의 배우가 동일한데도 무대 위 배우들은 이걸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으니 그들은 불분명한 진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인간, 진실의 미궁에 갇힌 인간을 상징해냅니다. 반면 <살인의 추억>은 1인 3역(4역)이란 원작자의 무대 지시문 조건이 생략된 채로 박 형사와 서 경장의 대립이 전면에 드러나므로 ‘진실을 찾으려는 인간의 두 가지 시도 사이의 갈등과 대립’이 작품 주제가 됩니다. 이성과 합리, 본능과 촉이라는 두 가지 길로도 인간은 결코 진실에 가닿지 못한다는 점도 영화는 이야기합니다.
희곡에만 나오는, 김인중 형사의 습작 시도 역시 ‘희미하고 불분명한 진실’을 주제 삼았습니다. 연 구분 없이 소개하면 그의 시는 이렇습니다.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에 화들짝 놀람은 그 잎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담배 연기는 허공에 삶을 배설하고 허파는 그을음으로 얼룩진다. 나 내일은 종로 네 거리에 나가 물어볼 테다. 우리는 흘러 어디로 가는 것인지 누구라도 붙잡고 한번 물어볼 테다.’(희곡 <날 보러 와요>에서 김인중 형사의 시 ‘가을1’)
‘모두 잠시 지나가는 환각일 뿐 오늘같이 추운 밤엔 별도 달도 뜨지 않는다.’(시 <가을2>)
여기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잎’은 인간이 도저히 알기 어려운 진실을 이야기합니다. 희곡의 주제와 정확히 맞아 떨어집니다. ‘모든 것이 잠시 지나가는 환각일 뿐’이란 시구도 인간이 다다르지 못하는 한계점을 노정합니다.
위 글에서 잠시 언급했습니다만 <날 보러 와요>에서 진짜 범인이 여성을 살해하기 전 라디오에서 방송됐던 음악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레퀴엠 1번>이었습니다. 이 곡은 모차르트가 1791년 작곡했지만 완성하지 못했던 미완성 클래식곡입니다. 김광림 작가가 <날 보러 와요>에 언급한 레퀴엠도, 진실을 파악할 수 없었던 두 형사의 진실찾기도, 미완성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김유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