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운명을 만든다.’ 20세기 말 만인의 첫사랑이었던 소피 마르소가 중년의 사랑으로 돌아온 영화 ‘어떤 만남(Une Rencontre, 2014)’의 홍보 문구다. 그러고 보면, 파리만큼 사랑과 운명에 어울리는 도시도 없다.
극 중 유명 작가인 엘자(소피 마르소)는 프랑스 브르타뉴의 도시 렌느(Rennes)에서 열린 도서전에서 우연히 변호사 피에르(프랑수아 클루제)를 만나고, 둘은 서로에게 끌리지만 연락처도 주고받지 않은 채 헤어진다. 가정이 있는 피에르와 유부남만은 만나지 않겠다는 엘자가 그들 사랑의 한계를 인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다시 운명처럼 파리에서 마주치고 만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사는 할머니를 만나고 파리로 돌아가는 소르본느 대학생 셀린(줄리 델피)은 우연히 미국인 청년 제시(에단 호크)를 만나 단 하루의 짧은 사랑에 빠지고, 9년 만에 다시 재회하게 되는데 그 장소도 파리다. ‘비포 선라이즈(1995)’의 청년 제시는 ‘비포 선셋(2004)’에서는 유명 작가로 성장하고, 9년 만의 우연한 만남은 파리의 유명한 서점,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에서 이뤄진다.
약혼녀와 그녀의 부유한 부모와 함께 파리를 방문한 길(오언 윌슨) 또한 소설가로의 전향을 꿈꾸는 할리우드의 각본가다. 그는 파리의 화려함만을 찾는 약혼녀와 달리 자신의 소설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매일 밤 12시 생 에티엔 뒤 몽(Saint-E‘ tienne-du-mont) 성당의 종소리는 그를 1920년의 파리로 초대한다. 그곳에서 길은 이른바 ‘잃어버린 세대(ge’ ne‘ ration perdue)’로 불리는 당시 파리에 체류하던 장차 미국 문학계의 거장으로 성장할 거투르드 스타인, 어니스트 헤밍웨이, 스콧 피츠제럴드를 만나고 피카소의 연인 아드리아나에게 반한다. 하지만 길이 선택한 진정한 사랑은 다시 현실로 돌아와 약혼녀와의 관계를 끝내고 만난, 레코드 가게의 점원 가브리엘이다. “사실, 파리는 비가 올 때 가장 아름다워요”라는 가브리엘의 대사와 함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2011)’는 파리를 다시 한번 사랑과 운명의 도시로 각인시킨다.
‘어떤 만남’ ‘비포 선셋’ 그리고 ‘미드나잇 인 파리’, 이 세 편의 영화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주인공이 작가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들의 사랑은 파리라는 공간에서 운명적으로 연결된다. 우리가 사랑하는 파리의 느낌이 이 영화들에 공통으로 흐르고 있다. 우연일까?
(매우 주관적인 평가지만) 의외의 해답은 한 사람을 향한다. 바로 ‘어니스트 헤밍웨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노인과 바다’ 등 20세기를 대표하는 이 대문호는 캐나다 토론토의 한 신문사 특파원 자격으로 1921년 파리로 건너와 7년 간 체류하며, 첫 장편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파리에서 집필한다.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해들리와의 신혼 생활. 파리라는 새로운 공간이 주는 자유. 그리고 파리를 사랑한 당시 예술계 대가들과의 만남. 헤밍웨이는 파리를 통해 자신의 문학세계를 완성할 수 있었다. ‘아무리 가난해도 잘 살 수 있고 글도 쓸 수 있었던 파리 같은 도시에서 느긋하게 책을 볼 수 있는 시간과 더불어 이 모든 새로운 문학 작품의 세계를 발견했다는 건 엄청난 보물을 선물로 받은 것과 같았다.’ 헤밍웨이가 그의 말년, 파리를 회고하며 남긴 말이다. 우리는 지금 헤밍웨이의 마음으로 파리를 사랑하고 있다. 세 편의 영화가 공통점을 가진 이유도 파리를 사랑했던 작가 헤밍웨이를 오마주(hommage) 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매일 많은 여행자가 헤밍웨이의 발자취를 따라 파리 라틴지구를 걸으며, 운명처럼 파리를 만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헤밍웨이는 미국을 떠나 파리를 만나 헤밍웨이가 되었다. 이처럼 예술가들에게 운명의 공간을 만날 수 있게 도와주는 프로그램이 있어 소개해 본다. 바로 예술 체류(Arts en Re‘ sidence) 프로그램이다. 예술가들이 특정 지역에서 일정 기간(통상 3개월에서 1년 사이) 체류하며, 예술적 영감을 얻고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다. 프랑스만의 독특한 제도는 아니고, 영국, 미국 등 많은 국가에서 다양한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운영 중에 있다. 하지만 프랑스의 특징은 예술작가들이 이 프로그램을 하나의 권리처럼 주장하며, 지방단체를 상대로 협상을 통해 종합적인 프로그램 개설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헤밍웨이로 인해 파리시가 얻어 들이는 관광 수입을 생각할 때, 지방자치단체로서도 결코 손해 보는 투자가 아닐 수 있다. 2023년 기준, 프랑스에는 233개의 예술 체류(Arts en Re’ sidence) 프로그램이 운영 중이다. 옛 정신병원을 작가들의 주거 공간으로 활용한 ‘3 bis f’, 지역 유리세공 장인들과의 협업으로 유명한 마르세유의 CIRVA(International Center of Glass and Plastic Arts), 애니메이션을 전문으로 하는 아미앵의 Frac Picardie 등 특징적인 프로그램들이 주목받고 있고, 지역적으로도 알프스 산악지대 꺄푸신에서부터, 동부 알자스 로렌 지방의 자연공원까지 프랑스 전역에 퍼져 있다.
이 프로그램 안에서 작가들은 주거와 생활비 일부를 제공받고, 활동 기간 동안 다른 작가들과의 워크숍, 발표회 등을 통해 자신의 작품 세계를 발전시키게 된다. 헤밍웨이가 ‘잃어버린 세대’ 작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자신의 작품을 완성해 나간 방법과 유사하다. 특히 서로 다른 분야의 예술가들을 한데 모은 프로그램까지 등장하며, 새로운 형태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거두고 있기도 하다. 앞으로 우리는 더 많은 프랑스 지방 도시를 파리처럼 사랑하게 될지 모른다. 타히티를 찾은 고갱, 친구 베를렌과 유럽 전역을 떠돌았던 랭보, 노르웨이에서 태어나 베를린에서 체류하며 ‘절규’를 남긴 뭉크.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공간은 어쩌면 숙명인지 모른다. 새로운 공간이 주는 영감을 작가들에게 체계적으로 제공한다면 각박한 현대인의 삶을 치유할 화해의 공간으로서, 한국도 가능성이 충분해 보인다. 세계인이 즐기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는 우리다. 20세기 초 프랑스가 그랬던 것처럼, 세계의 작가들에게 우리의 저력을 경험할 기회를 다양하게 제공하면 어떨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운명을 만든다고 자랑하는 프랑스를 대체할 21세기 새로운 파리가 우리나라에서 충분히 가능하리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