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시총의 68%에 불과한 한국 증시의 저평가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올 들어 코스피 상승률은 2.05%로 주요 10개국 중 꼴찌이고 국내 상장사 10곳 가운데 4곳은 시가총액이 상장사가 보유한 자산가치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인공지능(AI)발 기술 혁신과 금리 인하 기대감, 기업들의 실적이 맞물린 덕분에 미국, 유럽 등 전 세계 주요국 증시가 활황 중이지만 한국 증시만 유독 랠리에서 비껴나 있다. 고질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증시 저평가)를 개선하기 위해 정부는 ‘기업가치 제고(밸류업) 계획 가이드라인’을 최근 발표했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1400만명에 달하는 국내 투자자들은 밸류업 가이드라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국내 증시에서 이탈해 미국, 일본 등 해외 증시로 환승 중이다. 한국 주식은 여전히 박스권에 갇혀 있고 이를 개선할 밸류업 가이드라인은 기대에 못 미치기 때문이다.
PBR(주가순자산비율) 개선 작업이 주가 상승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시장에 임팩트를 줄 실효성 있는 정책이 필수다. 일례로, 일본은 PBR 1 미만 기업은 주가 부양 계획을 공시하도록 하고 이를 개선하지 않는 기업은 상장폐지하는 강경책을 시행 중이다. 중국은 상장기업에 이익의 30% 이상을 배당케 하고 배당이 적은 기업을 특별관리 종목으로 지정하는 정책(新국9조)을 내놨다.
하지만, 우리의 밸류업 정책은 매년 기업가치 개선 계획과 목표를 자율공시하도록 기업들의 자율성에 맡겨 실효성이 떨어진다. 기업들의 자발적 참여로 밸류업 정책을 시행하려면 유인책이 필요한데, 눈에 띄는 인센티브가 없으니 ‘알맹이 없는 맹탕 정책’이란 비판이 잇따른다. 배당소득 분리과세로 대주주가 배당을 늘릴 유인을 제공하거나 자사주 소각 기업에 세제 혜택을 주는 등 실효성 있는 인센티브 도입을 고려해볼 만하다.
정부의 기업 밸류업 가이드라인의 핵심은 주주가치 보호이지만, 사실 진정한 기업 밸류업은 지속적인 성장으로 지속적인 이익을 창출하는 것이다. 주주가치 환원을 위해 배당률을 높이고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하는 것도 중요하나, 기업가치 성장이라는 본질에 앞설 순 없다. 기업이 잘돼야, 주주가치 환원도 가능하다.
MZ 투자자들은 최근 매일경제 설문조사에서 한국 증시의 저평가 이유에 대해 ‘배당, 자사주 매입 등 주주환원이 부족해서’라든가, ‘물적분할과 유상증자 등 주식가치를 낮추는 행위가 빈번해서’라는 이유를 들었지만, 가장 많은 응답자는 ‘한국경제 성장동력의 부족’이라고 답했다. 실제로, 최근 전 세계 각종 조사에서 ‘한강의 기적이 끝나가고 있다(FT)’ ‘개구리 한국경제(맥킨지 보고서)’ 등 한국경제에 위기의 경고음이 잇따르고 있다. 암울한 한국경제 전망 속에서 ‘밸류업’이라는 이름으로 기업에 또 하나의 규제를 더하기보다는 기업을 옥죄는 낡은 규제들은 철폐하고, 적절한 동기부여를 통해 밸류업을 이룰 수 있도록 정책적 보완이 시급하다. 한국 자본시장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정부 정책은 기업 할 맛 나는 환경 조성에 있다. 그래야 기업이 성장하고 기업 밸류업은 자동으로 따라온다.
[김주영 월간국장 매경LUXMEN 편집인]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5호 (2024년 6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