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라, 이곳은 죽음의 제국이다(Arrete! C’est ici l’empire de la mort).’ 600만 구의 유골이 안치된 세계에서 제일 큰 납골당, 단테의 지옥문이 실재한다는 지하무덤, 파리 카타콤(Catacombes). 당신은 지금 파리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어둡고 슬픈 공간으로 들어선다. 단테가 베르길리우스를 따라 들어간 지옥문에 새겨진 문구가 떠오른다.
‘여기에 들어오는 자여, 모든 희망을 버려라.’
파리 동남부 교통 요지 덩페흐 호슈호(Denfert-Rochereau)역, 오를리 공항으로 가는 공항버스가 출발하고, 광역전철 RER B선과 파리 지하철 4, 6호선이 교차한다. 이 역 근처 초록색 목조 건물, 바로 파리 지하 세계로 내려가는 입구다. 카타콤은 로마의 지하무덤을 말하는데,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인들이 핍박을 피해 숨어 들어가 예배를 드린 곳으로 더 알려져 있다. 게임 디아블로에서 던전을 지나, ‘죽음의 냄새가 나를 감싸는군’이라는 말과 함께 진입하는 곳이 카타콤이다. 파리의 카타콤도 지하무덤이다. 하지만, 독특하고 슬픈 역사를 가진 곳으로 유명하다.
파리 카타콤의 출발은 채석장이다. 기원전부터 돌을 캐냈다는 기록이 있지만, 본격적인 개발은 노트르담 대성당과 같은 대규모 건축물이 들어서기 시작하는 11세기다. 파리의 토양은 석회암으로, 땅속에서는 부드럽지만 외부에서 물에 닿으면 강화되는 특징이 있어, 당시 건축용 석재로 널리 사용되었다. 특히 파리가 유럽의 중심 도시로 성장하며 석재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채석장은 더 깊이 그리고 더 멀리 지하로 파고들어 가게 된다. 이처럼, 이 지하터널은 수세기에 걸쳐 마구잡이로 만들어져 미로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고, 건물 7층에 해당하는 깊이 30m, 총연장은 300㎞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파리시 도로 총연장이 1200㎞라고 하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연구에 따르면, 당시 채굴공은 휴일 없이 일하며 매월 월급날 하루만 쉴 수 있었다고 한다. 지하에서 장시간 일하다 밖에 나와 실명하는 사례가 부지기수였고, 빈번한 갱도 붕괴까지 더해, 이들의 평균 수명은 30년을 넘지 못했다고 한다. 세계인이 사랑하는 파리의 아름다움이 완성되는 과정에 많은 이들이 지하에서 절박하게 희생되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불편해진다. 파리의 채석장은 18세기 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콘크리트의 개발로 석회암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기 시작했고, 1774년 도로와 주택들이 폭삭 내려앉는 엄청난 규모의 지반 붕괴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요즘 표현으로 싱크홀에 해당하는 이런 사고가 1776년까지 연이어 이어지며 파리지앵들은 두려움에 떤다. 언제 어디서 붕괴 사고가 일어날지 몰랐기 때문이다. 이에 루이 16세는 1777년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채석장의 현황 파악과 붕괴 예방 조치를 지시하는데, 이때부터 폐채석장에 대한 활용 방안 마련이 화두가 된다.
한편, 18세기 말 파리에는 또 다른 골칫거리가 있었다. 바로 무덤 부족 현상이다. 죽어서 천국에 가기 위해 교회 근처 묘지에 묻히기를 바라는 사람들로 당시 교회 주위는 거대한 무덤의 산을 이뤘다. 파리가 커질수록 묘지의 규모도 도시의 기능을 마비시킬 정도로 커졌다. 지하는 석재 채굴로 파헤쳐지고, 지상은 시체가 쌓여가는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왕립 아카데미는 쌓여가는 시체들에 의한 전염병 창궐을 경고했는데, 마침내 1780년 매장된 시체들과 접촉한 사람의 손이 썩는 질병까지 발생한다. 흑사병의 데자뷔에 놀란 파리시는 파리에서의 모든 매장을 금지하기에 이른다.
이때 파리 경찰 르느와르(Lenoir)가 유골을 비어 있는 채석장 갱도에 매립하는 방안을 제안하고, 루이 16세가 이를 허가해 1785년부터 1814년까지 총 600만 구의 유골이 이장된다. 역사상 가장 큰 묘지의 탄생이다. 현재 파리시 인구가 250만 명이니, 도대체 600만 구는 어디서 온 것일까? 이는 흑사병부터 프랑스대혁명 시기에 사망한 사람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파리지앵의 중세 이후 역사가 고스란히 다시 지하로 돌아간 셈이다. 도시를 키우기 위해 땅을 파 돌을 캐고 그 빈자리를 다시 도시에서 살다 간 사람들의 유골로 채우는, 역사의 아이러니라 할 만하다. 2차대전 당시 저항군의 비밀기지로 사용된 이후, 역사적 관심에서 사라져 가던 이곳은 망자의 한이 서린 끝없는 지하 세계로 악명을 떨치며, 모험을 즐기는 마니아들을 시작으로 세상의 주목을 다시금 받고 있다. 파리시에서는 광대한 이 지하 세계에서 실종 사건이 자주 발생하자 구간 대부분을 출입 금지 구역으로 지정하고, 지금은 전체의 0.6%인 1.6㎞ 구간만을 박물관으로 조성해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파리의 유명한 지하 세계는 또 있다. 총연장 2400㎞의 파리 하수도. 빅토르 위고가 소설 <레 미제라블>에서 무려 100페이지에 걸쳐 자세하게 묘사한 이곳은 한때 도시 하수 처리의 모범 사례로 꼽히기도 했지만, 현재 세계 다른 도시들의 신기술 방식에 비해 뒤처져 있다. 파리 지하철은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맞추어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도입되었다. 아르 데코 양식의 철제 지하철 입구로 예술적 감각을 더했다지만, 지금은 더럽고 악취가 풍기는 공간으로 악명이 높다. 모두 도시에 필수적인 역할을 하면서도, 지상의 파리만큼 주목받거나 아름답지는 않다. 파리의 지하는 아직 과거에 머물러 있는 느낌이다.
반전을 하나 소개한다. 파리에서 가장 럭셔리한 곳, 방돔(Vendome) 광장. 유명 럭셔리 브랜드 보석 매장이 밀집한 이 광장의 지하에는 공용 주차장이 있다. 여느 파리의 지하주차장처럼 이곳도 지저분하고 어둡다. 그런데, 이 지하주차장 4층에는 매우 특별한 공간이 있다. 페라리, 애스턴 마틴, 뷰가티는 물론, 포뮬러 1 경주차까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슈퍼카 200여 대가 모여 있다. 프랑스 청년 사업가가 전 세계 부자들의 슈퍼카를 관리해주는 스타트업 ‘The Collection Paris’를 지하에서 운영하며, 파리의 지하 이미지를 바꾸고 있다. 변화의 시작일까? 서울이 계획하는 경부고속도로 지하화와 같은 도시 공간 프로젝트가 새로운 가능성으로 성장하여, 파리에 한 수 가르쳐주기를 기대해본다.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2호 (2024년 3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