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2년 미국의 소설가 존 스타인벡은 이탈리아 로마에서 무더운 여름을 보내던 중, 이탈리아 친구이자 소설가인 알베르토 모라비아로부터 여름 휴양지로 유명한 아말피 해안으로 여행을 떠나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바람처럼 세상을 떠돌며 길 위에서 스승을 만나길 좋아한 그는 주저 없이 차를 타고 지중해가 손짓하는 이탈리아 남부 해안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자동차 바퀴가 뜨거운 공기를 가르며 몇 시간 달리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푸른 지중해가 눈앞에 펼쳐졌다. 구절양장으로 휘어진 163번 해안도로와 오른쪽 차창을 통해 사정없이 파고드는 지중해 햇살은 존 스타인벡의 마음을 훔치기에 충분했다. 나폴리와 소렌토를 지나자 발아래로 탁 트인 바다와 깎아지른 수직 절벽을 따라 들어선 집들이 살포시 눈에 들어왔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을 만큼 아주 작은 어촌이지만, 존 스타인벡은 무언가에 홀린 듯 바다를 향해 비좁은 골목길 계단을 따라 조심스럽게 한 걸음 한 걸음 내려갔다.
쉴 새 없이 파도가 휘몰아치는 해변에는 고운 모래 대신 모양이 제각각인 자갈들이 세월을 정면으로 맞서며 모두가 동그랗게 닳아 있었다. 밀물과 썰물이 교차할 때마다 자갈에서 나오는 선율은 나폴리 민요만큼이나 구성지고 아름다웠다. 잠시 후 바다에서 마을로 눈을 돌리는 순간 라타리(Lattari) 산기슭을 따라 계단식으로 들어선 집, 호텔, 별장, 성당 등이 한 폭의 수채화처럼 그려졌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낯설고 묘한 기운들이 자꾸 존 스타인벡의 마음과 영혼을 끌어당겼다.
마침내 존 스타인벡은 1951년에 문을 열어 지금까지도 성업 중인 ‘르 세레누스 호텔’에 짐을 풀고 며칠간 머물렀다.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호텔에서 바라다본 지중해의 풍경과 마을 그리고 친절한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글로 써 내려갔고, 1953년 5월 미국의 여성 잡지 ‘하퍼스 바자르(Harper's Bazaar)’에 <포지타노>라는 에세이 한 편을 기고했다. 이 글을 통해 포지타노는 미국을 비롯해 영어권 국가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현재 르 세레누스 호텔에서는 모든 객실마다 존 스타인벡의 책을 비치하고 있다.
‘아말피 해안의 진주’라고 불리는 포지타노는 한 편의 서정시가 그려지는 환상적인 곳이다. 존 스타인벡은 이 마을을 처음 본 순간 “포지타노가 나를 깊숙이 물었고, 호텔 방 작은 발코니에 서면 푸른 바다 너머로 전설의 인어가 감미롭게 노래를 부르는 사이렌 섬이 보인다”라고 했다. 그의 글처럼 포지타노는 높은 산을 뒤로하고 마을 앞으로 ‘리 갈리(Li Galli)’라고 불리는 3개의 섬이 자리한다. 아주 오래전부터 마을 사람들은 그 섬에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인어, 사이렌(Siren)이 산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 믿음에 변함이 없다.
바람 소리, 파도 소리 이외에는 그 어떤 것도 들리지 않을 만큼 고요한 포지타노에서 존 스타인벡은 모처럼 한가롭게 휴가들을 즐겼다. 1939년 장편소설 <분노의 포도>를 발표한 뒤 퓰리처상을 수상했고, 1948년에는 할리우드에서 만난 사진작가 로버트 카파와 러시아를 여행한 후 <러시아 기행>을 발표했다. 또한 1952년에는 제임스 딘이 주연한 영화의 원작인 <에덴의 동쪽>을 펴내면서 심신이 쇠약해졌다. 단순히 몸과 마음만 지친 것이 아니라 글을 써 내려갈 문학적 감성이 고갈되었다. 모든 것을 내려놔야 하는 시기에 우연히 머물게 된 포지타노는 존 스타인벡에게 몸과 마음을 추스르게 했고, 메말랐던 감성의 바다에 문학적 영감들이 다시 고이기 시작하였다. 이를 계기로 글쓰기에 혼신의 힘을 다한 그는 196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물론 이탈리아 남부의 작은 마을, 포지타노가 존 스타인벡의 에세이 한 편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것은 아니다. 이미 독일 괴테와 바그너, 영국 바이런과 버지니아 울프, 파블로 피카소, 토스카니니 등 예술가 사이에서 은밀하고 비밀스럽고 생경한 뮤즈를 만날 것 같은 예술의 도시로 입소문이 자자했다. 그중에서도 1901년부터 1932년까지 여섯 차례나 이탈리아를 여행한 초현실주의 화가 파울 클레는 1902년 두 번째 여행 때 포지타노를 찾아왔고, “가로축이 아닌 수직축으로 형성된 세계 유일의 장소”라며 극찬했다.
존 스타인벡 '포지타노'
예술가들 영감의 원천이 된 포지타노는 과연 어떤 매력을 가진 도시일까? 우선 도시의 이름인 ‘포지타노’와 관련된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는데, 그중에서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관련이 있다는 의견과 로마 시대 때 부자였던 캄파니아 가문의 별장 이름인 ‘포지데스 스파도(Posides Spado)’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또한 도시의 역사는 고대 로마인들이 포지타노 해안에 수많은 호화 빌라를 지으면서 시작되었고, 그 유적들은 마을 중심에 있는 산타 마리아 아순타 성당 부근에서 볼 수 있다.
이처럼 신화와 역사가 복잡하게 얽힌 포지타노에서 존 스타인벡은 이른 아침이면 마리나 그란데 해변에서 산책을 즐겼고, 해가 중천으로 떠오르면 그늘이 드리워진 골목길, 아기자기한 기념품점, 작은 갤러리 등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해 질 무렵이면 해변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진한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글을 쓰거나 책을 읽으며 유유자적한 시간을 보냈다.
짧은 시간 동안 포지타노에 깊게 물린 존 스타인벡은 <포지타노>에 “나는 항상 포지타노만큼 아름다운 곳을 발견하면 그것을 숨기고 싶은 충동이 든다”라고 썼지만, 그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오히려 잡지에 실린 ‘비현실적인 꿈의 장소’라는 기사를 읽고 그를 좋아하는 팬들과 여행자들이 작은 어촌마을, 포지타노를 찾아와 자신들만의 소중한 추억의 장소이자 꿈의 장소로 만들었다. 이곳에 머물다 간 사람들은 모두 존 스타인벡처럼 포지타노로부터 깊게 물렸고, 이상하게도 심신이 지칠 때마다 물린 상처에서 새로운 꿈과 희망이 몇 줌씩 자란다.
[이태훈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