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모의 미술동네 톺아보기] 포스트 코로나 대비해 증개축 나선 전 세계 미술관, 40여 년간 개보수 없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입력 : 2022.03.31 16:25:58
수정 : 2022.03.31 16:26:23
코로나19로 지구촌 모두가 패닉 상태에 빠져있는 지금 미술관들도 입장료와 기부금이 줄어 자구책 찾기에 여념이 없다. 하지만 이 어려운 지경에도 미술관은 공사판처럼 중장비가 들락거리고 기계음이 시끄럽다. 공사판이 된 미술관들은 의외로 많다. 그중 몇 곳은 경제가 어렵다고 하지만 미술관 증개축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정말 어렵다는 브라질 상파울루 미술관(MASP·Museu de Arte de São Paulo)은 현 소장품 1만1000여 점 중 단지 1%만 전시할 수 있는 전시장의 절대 부족을 해결하고자 현 미술관 옆에 14층짜리 건물을 짓고 있다. 전체 면적은 현재 면적 1만485m²(3177평)에 66%가 더해진 1만7680m²(5358평)로 늘어난다. 추정 예산은 약 430억원, 전액 기부금으로 충당한다. 공사는 2024년에 완공될 예정이다.
영국의 상징인 트라팔가 광장에 면한 런던 국립미술관(National Gallery)도 2021년 2월에 2024년 개관 200주년을 기념하는 일련의 공간 재생 프로그램인 ‘NG 200’을 발표했다. 1991년에 증축해 미술관 정문으로 사용해온 세인즈버리관(Sainsbury Wing)의 일부를 리모델링해 관람객 편의시설을 확충하고 새로운 연구 센터를 세우는 계획인데, 소요 예산은 약 400억~483억원이다. 파리의 퐁피두도 개보수를 위해 파리올림픽이 끝나는 2024년부터 약 4년간 문을 닫는다. 1977년 개관 이후 1998년부터 약 2년간 1188억원을 들여 보수공사를 한 이후 냉난방 등 공조, 에스컬레이터, 석면 철거 등 건물 성능 개선을 위해 다시 문을 닫는다. 공사에는 약 3000억원이 들어간다. 네덜란드의 컨테이너 항구도시 로테르담의 명물 보이만스 반 뵈닝겐 미술관(Museum Boijmans Van Beuningen)도 대대적인 보수 및 증개축을 시작해 지난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수장고형 미술관 디폿(De Pot)을 1차 개관했다. 구식 설비와 홍수로 인한 지하 수장고 침수 우려 등을 고려해 2017년 공사를 시작해 2026년 미술관 전체를 개관할 예정이다. 약 10년간의 공사를 위해 로테르담시는 시민모금액을 포함해 약 3017억원을 투입한다.
1928년 개관한 전형적인 백과사전형 미술관인 필라델피아 미술관(Philadelphia Museum of Art)은 개관 100주년을 계기로 관객들의 편의 제공과 현대미술, 미국 미술 전시장의 확대 등 시대에 걸맞은 미술관을 위해 2006년 코어 프로젝트를 수립, 책임건축가로 프랑크 게리를 선임해 2017년 공사를 시작했다. 올 5월에 개관한다. 뉴욕의 메트로폴리탄미술관(MET)도 약 6100억원을 들여 현대미술과 21세기 미술에 집중할 약 7430㎥(약 2250평) 규모의 새로운 현대미술관 증축을 계획해 지난 3월 멕시코 여성 건축가 프라디 에스코베도를 선임했다.
필라델피아 코아 프로젝트.
미술관 증개축, 확장에 호주도 빠질 수 없다. 시드니에 자리한 뉴 사우스 웨일스 미술관(Art Gallery of NSW)은 2015년에 시드니 모던 프로젝트라는 미술관 확장 계획을 세워 일본의 세지마 카즈요와 니시자와 류에의 산나(SANAA)를 건축가로 선정해 현재 공사 중이다. 올해 말 완공 예정인데, 공사비는 약 3068억원이다. 이에 질세라 수도 멜버른의 빅토리아 국립미술관(The National Gallery of Victoria)도 현대미술관 신축 계획을 올 3월에 발표했다. 약 1070억원을 들여 1만3006㎥(4000평) 규모의 건물을 신축하는데, 옥상정원에서 멜버른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올해 착공해 2028년 완공이 목표다. 미국의 덴버 미술관(DAM·Denver Art Museum)도 2016년 문을 닫고 관람객 편의시설 확충, 야외공간의 재구조화, 전시장 환경 개선을 위한 공사를 시작해서 올가을 개관 예정이다.
댈러스 부호들의 작품 기증으로 1984년 개관한 댈러스 미술관(Dallas Museum of Art)도 2018년부터 공사를 시작' 지난해 10월 개관했다. 공사비는 약 2141억원. 2011년 아칸소에 개관한 크리스털 브리지 미술관(Crystal Bridges Museum of American Art)은 월마트 상속녀 앨리스 왈튼이 세운 것으로 유명하다. 미술관은 현재 1만8580㎥(약 5630평)의 면적에 9290㎥(2815평)을 더하는 증축 계획을 발표했다. 올 초 착공해 2024년에 개관할 예정이다. 이 미술관은 지난 2020년 2월 미술관 인근에 현대 미술만 다루는 현대미술 전문관인 모멘터리(Momentary·5852㎥)를 개관했다.
이렇게 최근 미술관 증축의 경향과 이유는 뉴욕의 현대미술관(MoMA)에서 찾을 수 있다. 시대의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며 시대를 선도해온 미술관의 역사가 반증하듯 MoMA는 지난 세기 동안 약 9회에 걸쳐 개보수 확장한 변화무쌍한 공간이었다. 1929년 핵셔 빌딩 12층에서 개관한 MoMA는 1932년 현재의 53번가로 이전했다. 1937년 미술관 신축을 위해 잠시 이전했다가 1939년 6층짜리 신축 건물을 완공해 자리를 잡았다. 1953년 필립 존슨이 조각공원을 재조성한 후 1964년 동관을 신축하고 20여 년 후인 1984년 세자르 펠리의 설계로 서관을 증개축, 2000년 PS1과 협업 형태의 분관을, 2001~2004년 임시로 퀸즈에 미술관을 이전하고 대대적인 증개축 확장 공사를 실시했다. 다니구치(Yoshio Taniguchi)의 설계로 미술관 역사상 최대의 증개축 공사였다. 실제 공사기간은 만 2년으로 미술관 면적이 2배로 늘었는데 공사비만 약 1조원 이상 들었다. 2006년에는 미술관 동쪽에 8층 규모의 교육 및 연구센터를 신축했고, 2019년 장 누벨의 설계로 77층짜리 타워 베레(Tower Verre)가 완공되었다. 2016년 2월에 시작된 동관개축공사를 완료하면서 3층 높이의 넓은 2개의 갤러리를 만들었고, 그 후 나머지 공사를 위해 2017년부터 문을 닫고 공사해 2019년 완공 재개관했다. 이 프로젝트의 예산은 신축비 4900억원, 리노베이션에 613억원이 들어 총 5500억원이 투입되었다.
이들 미술관이 천문학적인 예산을 어렵게 모금하고 기부를 받아 증개축을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는 오미크론 이후 엔데믹의 조짐이 보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역시 팬데믹 이후를 대비하려는 정책적, 전략적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에겐 부럽기만 한 세계적인 미술관들이 새로운 환경과 확장된 공간에서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관객을 맞을 채비를 하는 것이다. 이는 인류의 문화적 자산이자 문명적 증거인 미술품의 수집과 보존이 주목적이었던 미술관이 시대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좋은 미술관 하나가 나라의 국격이자 문화적 척도인 동시의 단순한 전문문화시설이 아닌 범사회적인 교육 시설로의 기능을 시대와 세계로부터 요구받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시대가 변화하면서 기증자들의 뜻에 따라 소장품을 루브르 박물관처럼 분산시킬 수 없는 백과사전식 미술관들은 각각의 전시관을 하나의 미술관으로 다루고 있다. 또 대형미술관들이 중점적으로 다루었던 유럽과 미국 미술에서 벗어나 최근에는 여성 미술, 제3세계 미술, 미디어 등을 특화해서 다양화하는 것이 특징이다. 교육 기능을 확충해 도시의 학교, 교실 밖 교실을 지향하며 팬데믹 이후 비대면을 위한 스마트 미술관으로의 전환을 대비하는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미술관의 본래 기능인 연구센터로서의 기능도 강화해나가고 있다.
그럼 우리는 어떨까. 4년 뒤면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도 개관 40년을 맞는다. 청계산 골짜기에 자리해 웅장해 보이지만 40년간 변변한 보수공사 없이 지금까지 버텨왔다. 미술관의 필수시설인 어린이 미술관, 교육센터, 연구센터 등의 확충이 불가피하다. 또 10분 이상 비상도로를 타고 들어가는 진입로도 그대로이고 주차장도 변변치 않아 관람객이 몰리면 길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형편이다. 위기 때 얼마나 멀리 보고 대비했느냐가 그 나라를 선진국으로 또는 후진국으로 만드는 조건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알고 있다. 알면서 움직이지 않으면 후손들이 후진국에 살게 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