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모의 미술동네 톺아보기] 2022년 주목해야 할 국내외 전시회… 초현실적인 세상, 대세가 된 초현실주의 미술전
입력 : 2022.01.04 15:37:13
수정 : 2022.01.04 15:37:25
당연했던 일상을 잃어버린 초현실적인 삶을 살아온 지난 2년의 삶은 초현실이 현실로 다가온 혼동의 시기다. 이런 미증유의 세상과 삶이 사람들의 인지능력을 뒤바꿔놓은 탓인지 모르겠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언제 미술관이 셧다운될지 모르는 상황에도 유난히 초현실주의 미술전이 대세다.
2021년 1월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서 개막한 <경계를 넘은 초현실주의>는 새해 1월 30일 전시를 마치면 런던 테이트모던으로 건너가 2월 말부터 8월 말까지 이어진다. 1924년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선언 이후 전 세계를 풍미한 초자연, 초자아의 세계를 담은 전 세계의 초현실주의 회화가 총망라되어 단순하게 하나의 사조가 아니라 모든 인간의 저변에 자리 잡은 하나의 현상으로 초현실주의의 면모를 보여준다. 변영원(1921~1988) 등 우리나라 작가도 참여하고 있다.
이렇게 인간의 힘과 이성으로 어찌할 수 없는 속수무책의 초현실적 세계는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초현실주의 거장들: 로테르담 보이만스 반 뵈닝겐 걸작전>(~3월 6일)에서도 펼쳐진다.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자리한 미술관의 초현실주의 컬렉션으로 이뤄진 전시다.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는 돈에 환장한 ‘아비다 달러’라고 비난 받았지만 ‘자신 자체가 초현실주의자’라고 주장했던 <살바도르 달리: 상상과 현실>이 3월 22일까지 열린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의 메리 코스(1945~ )의 빛이 주제인 전시도 압권이다. 미니멀한 작품에서 내뿜는 서정적인 터치와 인간적인 화면의 일렁임은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그림’이 주는 회화의 힘을 느끼게 하면서 글에서 본 ‘스탕달 신드롬’이 무엇인지 실감하게 해준다. 전시는 2월 22일까지 계속된다.
새롭게 활동을 재개한 리움의 <인간; 7개의 질문>도 연휴 서울 전시를 마치고 지방 미술관 순회 전시에 나선다. 새로운 삼성의 나눔, 상생의 철학이 문화와 예술의 나눔을 통해 구현된다. 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는, 중국 정부에 미운털이 박혀 유럽을 전전하는 방랑객 신세의 <아이웨이웨이: 인간미래>전(~4월 17일)도 빠뜨려서는 안 될 전시다. 그의 진면목을 보여주기에는 일정 한계가 있지만, 현대미술이 무엇에 천착하고 어디에 집중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해 준다.
2022년 6월 개관 예정인 노르웨이 국립미술관 @Borre Hostland
사실 2022년 전시 일정은 매우 불명확하다. 예측할 수 없는 팬데믹 상황이라고 핑계를 댈 수도 있지만,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해 시도의 공립미술관 중 어느 곳도 연말이나 2022년 전시 계획을 분명하게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는 직무유기다. 코로나19로 인해 해외여행이 우주여행만큼이나 어렵지만 그래도 2022년 열릴 해외 미술관들의 전시나 국제적인 미술 행사를 떠올려보면, 그나마 답답함이 좀 가신다.
가장 기대가 되는 국제적인 미술 행사는 인구 20만 명이 안 되는 독일의 작은 도시 카셀에서 열리는 ‘카셀 도큐멘타’일 것이다. 5년마다 열리는 카셀 도큐멘타는 현대미술의 가장 뜨거운 이슈를 담아내는 가장 흥미로운 전시이자 향후 5년의 미술계 동향을 가늠할 수 있는 풍향계로 유명하다. 이번 카셀 도큐멘타는 1955년 시작된 이래 인도네시아의 작가 10명이 결성한 컬렉티브 ‘루앙루파’를 감독으로 선정했는데, 카셀 역사상 최초의 아시아 감독이자 개인이 아닌 집단이 감독을 맡아 이미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2022년 15회를 맞는 카셀 도큐멘타는 6월 18일부터 9월 25일까지 열린다.
대개 많은 미술동네 노마드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현대미술의 순례길에 오르는데, 올 4월 23일 개막하는 제59회 베니스 비엔날레가 유혹한다. 이번 베니스의 감독을 맡은 세실리아 알레마니(1977~ )는 주제를 초현실주의 화가 캐링턴(1917~2011)의 환상적인 글과 삽화를 통해 거칠면서 어둡지만 웃기는 동화책의 제목 ‘꿈의 우유(The Milk of Dreams)’로 정하고 ‘암울한 전 지구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대안적 우주론과 실존의 새로운 조건을 창조할 수 있는 예술의 가능성을 기념하는 낙관적 전시’를 만들 것이라는데, 글쎄 그것은 가서 보아야 알 노릇이다. 참고로 예술의 전당 초현실주의전에서 캐링턴의 초현실적인 작품을 볼 수 있다.
항공권이 비교적 저렴한 연결편을 이용한다면 훨씬 더 많은 안복을 누릴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코로나19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관람객을 모으던 루브르나 프라도, 런던의 영국박물관, 내셔널갤러리, 테이트모던의 관람객이 4분의 1 이상 감소했고, 2021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상태지만 야심차게 2022년 전시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독일은 ‘위기는 기회’라는 우리말을 아는지 2000년 들어 장기적으로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해 통일 독일의 수도 베를린을 문화도시로 바꾸는 계획을 실천에 옮겼다. 2012년부터 공사에 착수해 베를린의 박물관섬(Museumsinsel)에 있는 5개의 박물관, 미술관의 공사를 마쳐 이미 3개소를 개관했다. 그리고 2021년 말 아시아·아프리카 박물관인 베를린의 훔볼트 포럼을 열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건축물 신국립미술관도 영국의 데이비드 치퍼필드(1953~ )에 의해 6년간의 공사 끝에 지난 10월 개관했다. 1968년 미스 반 데어 로에(1886~1969)가 완성한 검은색 강철지붕과 유리 홀, 화강암 바닥은 살리면서 구조와 공조시스템을 개량하는 재구조화를 통해 건물의 수명을 연장했다. 이곳에선 개관전인 리하터의 전시에 이어 바바라 크루거전(4월 22일~8월 28일)이 열린다. 건물지하로 연결되는 20세기 미술관은 헤르조그&뮤롱의 설계로 공사 중인데 2026년에 개관 예정이다.
2022년 열리는 베를린 비엔날레(6월 11일~9월 18일)는 다양한 배경과 비판적 관점으로 비엔날레의 주제인 탈식민지 개념에 관한 독특한 관점을 제시할 것이다. 베를린 구 국립미술관은 <폴 고갱-왜 화났어?>(3월 25일~7월 10일)를, 보데박물관에서는 <호크니의 사계>(4월 9일~7월 24일), 트로이를 발견한 고고학자 슐리만의 탄생 200주년을 맞아 <슐리만의 세계>(3월 13일~11월 6일)가 6년에 걸칠 개보수 끝에 2009년 재개관한 노이에스 박물관에서 열린다. 또 <도나텔로. 르네상스의 창시자>가 9월 22일부터 2023년 1월 8일까지 열린다.
영국 런던은 어떨까. 2018년 보수공사를 위해 문을 닫았던 르네상스와 인상파 회화로 유명한 보석 같은 런던의 코톨드갤러리도 지난 11월 문을 열었다. 780억원을 들여 3년간의 공사 끝에 개관해 2022년에는 고흐의 자화상 15점을 모은 전시(2월 3일~5월 8일), 이어 뭉크의 전시(5월 27일~9월 5일)를 개최한다. 런던의 국립미술관은 불과 20년의 짧은 생애에 르네상스의 3대 거장이 된 라파엘의 전시(4월 9일~7월 31일)에 이어 불안한 시선 처리로 유명한 루시앙 프로이드의 전시(10월 1일~2023년 1월 22일)를 연다.
로열아카데미는 ‘인간과 야수’라는 제목의 베이컨의 전시(1월 29일~4월 17일)를, 루이스 부르주아의 전시(2월 9일~5월 15일)가 헤이워드 갤러리에서, 테이트모던은 사과로 파리를 놀라게 한 세잔느전(10월 6일~2023년 3월 12일)이 노마드들의 발걸음을 불러 모은다. 파리도 빠질 수는 없다. 퐁피두는 찰스 레이의 전시(2월 16일~6월 20일)가, 오르세는 사랑과 삶과 죽음의 시를 그린 뭉크의 전시(9월 20일~2023년 1월 22일)가, 프티팔레에서는 조반니 볼디니(3월 29일~7월 24일)가 ‘인어의 노래’처럼 우리를 유혹한다.
팬데믹 와중에 새롭게 문을 연 미술관도 순례 대상이다. 예술의 전당 초현실주의전의 본향인 보이만스 반 뵈닝엔 미술관은 마치 큰 냄비를 연상시키는 수장고(DePOT)를 개관했다. 일반 관객이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15만1000점의 소장 작품을 마음껏 볼 수 있는 새로운 실험장이다. 오슬로에 문을 연 뭉크미술관과 6월 개관 예정인 국립미술관은 노르웨이에 가야 할 이유다. 지난 5월 문 연 파리의 증권거래소를 개조한 피노컬렉션, 고흐의 마을 아를에 문 연 프랑크 게리의 루마 아를 콤플렉스도 발길을 이끈다. 세상은 넓고 갈 곳도, 볼 것도 많다. 새해에는 모두 코로나를 훨훨 털어내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