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영의 영화로 보는 유럽사] (21) 인류 최대의 전쟁 ‘제2차 세계대전’ <덩케르크> <다키스트 아워>로 본 됭케르크 철수작전
입력 : 2021.08.31 14:44:48
수정 : 2021.08.31 14:45:24
제2차 세계대전은 인류 역사상 최대, 최악의 전쟁으로 꼽힌다. 동원 병력이 1억1000만 명, 전사자가 2700만 명에 이르고, 2500만 명 이상의 민간인이 희생된 전쟁이다. 투입 군인과 사망자 수에서 단일전쟁으로는 사상 최대인 독소전쟁과 최장의 전선을 형성한 태평양전쟁, 최대 규모의 다이나모 철수 작전(됭케르크 철수작전)과 노르망디 상륙작전 등은 세계 전사(戰史)에 남는 기록이다.
<덩케르크> (2017)
이 가운데 프랑스 북부 됭케르크(Dunkerque) 철수작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 <덩케르크>와 <다키스트 아워>를 중심으로 2차 세계대전 속으로 들어가 본다. 됭케르크 철수작전은 1940년 5월 28일부터 6월 4일까지 독일군에 의해 퇴로를 차단당한 채 프랑스 북부 해안에 고립되어 있던 40만 명의 연합군을 영국 본토로 철수시키는 작전이다. 당시 탈출해야 할 병사에 비해 배가 크게 부족했으나 수많은 민간 선박과 귀족들의 호화 요트, 어선과 통통배까지 수백 척의 선박이 됭케르크 해안으로 자발적으로 몰려와 33만 명 이상의 연합군을 실어 날랐다. 짧은 시간과 독일 공군의 끊임없는 공격 속에서도 많은 인원을 구출해 기적의 작전으로도 불린다.
영화 <덩케르크>(2017)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전쟁 영화로 됭케르크 철수작전이 이루어졌던 처절한 현장을 전쟁터에 나간 병사들과 이들을 실어 나른 일반인(민간 선박)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반면 <다키스트 아워>(2017)는 런던의 국회의사당을 배경으로 이 작전을 수립한 윈스턴 처칠을 중심으로 긴박했던 작전 수립 과정을 실감나게 묘사한다.
<다키스트 아워> (2017)
▶됭케르크 작전이 수행된 처절한 현장과 이면을 다룬 영화
<덩케르크>는 독일군에 포위되어 해안가로 밀려나는 젊은 영국군들의 공포에 사로잡힌 뒷모습으로 영화를 시작한다. ‘너희들은 포위됐으니 항복하라’는 전단지가 허공을 뒤덮고 갑자기 날아온 총탄에 병사가 하나둘 쓰러진다. 한 명의 젊은 병사만 날아드는 총알 속에서 우연히 살아남는다. 삶과 죽음에 그 어떤 이유도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놀란 감독은 전쟁이 진행되는 육지(해변가), 바다, 하늘의 긴박한 세 공간을 시간이라는 변수로 새롭게 조명한다. 사람마다 체감온도가 다르듯이 체감시간이 다르다. 하늘을 나는 영국 전투기 ‘스핏 파이어’ 파일럿들에게 1분 1초가 다급하지만, 포탄이 비 오듯 떨어지는 육지 영국 병사들에게는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진다. 놀란 감독은 이렇게 서로 다른 속도로 흐르는 체감 시간을 육지(해변) 군인들의 일주일, 바다 위 민간인 보트의 하루, 하늘 위 파일럿의 한 시간으로 각각 다르게 구현해내며, 각 시점에서의 절박하고 고립된 상황을 잘 드러낸다.
“어른들이 일으킨 전쟁에 왜 젊은이들이 총알받이가 되는가”라는 영화 속 도슨 선장의 질문은 반전영화로서의 주제도 선명하게 드러낸다. 마지막 장면은 됭케르크 철수작전에 대한 영국 처칠 총리의 국회 연설 내용이 한 병사의 입을 통해 내레이션으로 흘러나오며 끝을 맺는다. “이번 철수 작전은 패배가 아닌 명백한 승리입니다. 그러나 절대로 프랑스와 벨기에에서의 군사적 재앙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적의 침공에 즉시 대비해야 합니다. 우린 끝까지 싸울 겁니다.”
윈스턴 처칠은 나치 독일군에 대해 유화정책으로 일관했던 네빌 체임벌린 총리의 사임 후 총리직을 이어받는데, 취임일인 5월 10일부터 됭케르크 철수작전을 수립하기까지의 힘겨운 시간을 그린 영화가 <다키스트 아워>이다. 영화는 한 나라의 운명을 책임져야 하는 지도자의 고뇌와 탁월한 리더십을 중심으로 긴박하고 힘겨웠던 작전 수립과정을 잘 묘사한다.
▶1차 대전의 참호전과는 양상이 다른 2차 대전의 속도전
2차 세계대전은 1939년 독일의 폴란드 침공과 이에 대한 영국과 프랑스의 대독일 선전포고로 시작된다. 이로부터 1년도 채 안 된 1940년 5월 연합군은 됭케르크 지역에 포위돼 고립되고, 유럽 대부분 지역은 독일군에 의해 허무하게 무너진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당시 연합군의 군사력은 독일에 비해 뒤지지 않았다. 프랑스는 강력한 육군을 보유하였고 영국도 세계 최강의 해군력을 자랑했다. 더군다나 프랑스는 독·불 국경을 따라 건설된 마지노선(Maginot Line)으로 최고의 철통 방어벽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자만심이 문제였다. 수비 중심의 철통 방어에 안주했던 연합군의 전략이 독일군의 새로운 패러다임 전략 속에서 무용지물이 되었던 것이다.
마지노선은 독·불 국경을 거대한 장벽으로 완전히 차단한 방어선. 1927년부터 국방장관 마지노의 주도로 건설되기 시작됐다. 1차 대전 당시 4년간의 참호전이 치러졌던 서부전선 지역에 철통같은 방어시스템을 구축한다는 군사전략은 대중의 지지를 받았고 1936년 프랑스와 독일의 국경 일대에 150여 개의 요새와 300개 이상의 포대, 수천 개의 벙커를 촘촘히 설치한 350㎞의 방어선이 완공됐다. 이 방어선은 웬만한 포격이나 폭격을 거뜬히 막아낼 정도로 탄탄하게 축성됐다.
<덩케르크>
이 마지노선이 있는 한 독일군이 프랑스 국경을 넘어올 수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연합군은 독일군이 벨기에를 통과해 프랑스로 진격할 것으로 보고 이에 대비해 벨기에 국경 쪽으로 육군을 집중 배치했다.
하지만 독일은 예상과 달리 1940년 5월 10일 네덜란드와 벨기에로 진격하면서 동시에 전혀 예상도 못한 마지노선의 북쪽 끝인 아르덴숲 고원 지대로 대규모 기갑부대를 통과시켰다. 출격한 지 4일 만인 5월 14일 독일군은 프랑스 방어선을 무너뜨렸고, 5월 15일 네덜란드의 항복을 받아냈으며, 20일에는 대서양인 도버해협에 도달했다. 기갑부대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아르덴 숲을 통과하는 속도전으로 마지노선은 무용지물이 된 것이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성공의 디딤돌이 되다
이로서 연합군은 퇴로가 막히고 사방에서 포위당하는 신세가 된다. 독일 전략의 승리이며 연합군의 완벽한 패배였다. 이 포위망을 빠져나가려면 독일군을 독파하거나 영국해협을 건너야 했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등장한 작전이 됭케르크 철수작전이다. 9일간의 철수작전에서 860척의 선박들이 영국으로 실어 나른 인원은 총 33만 명으로 영국군이 19만 명, 프랑스군이 14만 명이었다. 됭케르크 철수작전은 성공했지만, 그해 6월 10일 노르웨이가 함락되고 14일 프랑스 파리가 무너진다. 7월에는 프랑스에 비시 정부가 수립된다. 그러나 됭케르크 철수작전의 성공은 영국 국민들의 사기를 높이고 독일과의 일전을 불사하게 만들었다. 4년이 지난 1944년 6월 서부전선에서 역사상 최대 규모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개시된다. 됭케르크 철수작전에서 구출된 많은 영국군들은 이 작전에서 영국 육군의 핵심을 담당한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연합군은 그해 8월 파리를 탈환하였고, 이 작전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이 승리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새 시대에 맞는 사고 전환의 필요성
새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익숙한 것들과 결별하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구시대적 사고방식에서 과감하게 벗어나야 한다는 뜻이다. 1, 2차 대전의 역사도 예외는 아니다.
프랑스는 1차 대전의 전쟁 양상이었던 참호전의 프레임에 갇혀 신속한 기동과 기습으로 일거에 적진을 돌파하는 독일군의 ‘전격전’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방어가 최고라는 믿음에서 구축된 ‘마지노선’은 우습게도 전혀 다른 패러다임의 전략 속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다. 이러한 구시대적 사고가 2차 대전을 키웠다고도 볼 수 있다.
2차 세계대전이 낳은 불세출의 영웅인 처칠의 리더십에 대한 평가도 주목할 만하다. 처칠은 전시에 강력한 리더십으로 빛을 발했고 감동적인 방송 연설로 영국민에게 용기를 불어넣었지만, 전쟁이 끝난 1945년 7월 총선에서 처칠의 보수당은 패했다. 유권자들은 충분한 고용 기회와 보건 서비스 확충 등 복지 국가를 약속하는 노동당에 오히려 공감했기 때문이다. 영국 국민은 전시의 영웅적 리더십이 평화 시기에도 적합하리라고 보지 않았고, 새로운 리더십을 갈망했던 것이다.
새 시대에 맞는 사고가 무엇인지를 인식하고 미래지향적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과거와 현재의 관행과 행태를 냉정하게 분석해보고 중장기적인 관점에서도 사고하려는 노력을 통해 시대에 뒤처지지 말아야 하는 것은 국가뿐 아니라 개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