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골프 동반자 가운데 3가지 흡연 유형이 있다.
라운드를 도는 중에는 삼가고 시작 전이나 그늘집, 골프 종료 후에 피우는 사람이 가장 많다. 다음으로 티샷하기 전 기다리는 동안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몰래 피우고 돌아오는 유형이다.
가장 힘든 상대는 카트를 타고 가거나, 페어웨이를 걸어가면서 흡연하는 부류이다. 잔디나 티 마크 위에 연기 나는 담배를 올려놓고 티샷하는 동반자를 만나면 정말 괴롭다. 어느 날 앞 팀을 기다리며 티샷을 대기하던 중 동반자가 순간 사라졌다가 돌아왔다. 티잉 구역(Teeing area)에서 동반자 눈에 띄지 않게 잽싸게 흡연하고 온 것 같았다. 동료들 시선과 후각을 자극하지 않고 골프 진행에도 문제가 없었다. 평소 행동과 매너를 보아 담배 꽁초도 잘 처리했을 것이다.
간혹 티잉 구역에 올라오면 담배 꽁초와 부러진 티들이 널부러진 현장을 목격한다. 캐디와 함께 모두 제거하고 경기를 진행한 적도 있다. 아직도 연기가 허공에 배어 더운 날씨에 숨이 팍팍 막힌 것을 보아 앞 팀 소행이 확실했다. 티잉 구역은 산악인들에겐 전의를 다지는 베이스 캠프와 같은 곳이다. 페어웨이를 바라보고 호흡을 가다듬고 전략을 구상하면서 텐션을 끌어올린다.
첫 홀 티잉 구역에선 그 날 가장 긴장하는 순간이다. 중간 홀 티잉 구역은 패자로선 반전을 노리고 승자에겐 기세를 다지는 교두보이다. 골퍼에겐 엄숙하고 정결한 기지이다. 이런 이유로 티잉 구역과 그린(Green)은 골프장에서 가장 중요하게 관리된다. 이런 성지가 담배꽁초 같은 쓰레기로 훼손되면 매너 이전에 골프에 대한 모독이다.
골프장들은 대체로 금연을 권장하지만 이용객들을 강제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흡연 골퍼들이 동반자와 캐디, 그리고 다른 팀에 영향을 주면 곤란하다.
앞서 말한 매너남처럼 동반자들에게 냄새를 남기지 않고 경기 진행에도 지장 없는 빠른 처신이라면 아무런 시빗거리도 아니다. 자욱한 담배 연기와 꽁초를 남기고 사라진 앞 팀과 대조된다.
티샷 하는 바로 뒤에서 한 동반자가 담배를 입에 물고 연습스윙을 하는 최악의 장면을 본 적도 있다. 동반자가 스윙하는 도중 움직임, 흡연, 흡연+연습스윙을 합해 골프 매너에 삼중 위배되는 행위이다.
시가를 입에 문 벤 호건, 아놀드 파머, 샘 스니드, 잭 니클라우스의 낭만적인 장면도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다. 치기 어린 존 댈리의 골프 도중 음주와 흡연, 시가를 물고 페어웨이를 걸어가던 마이클 조던 모습도 옛날이다. 정말 버거운 상대는 순서를 맞아 피우다 만 담배를 잔디 위에 올려놓고 티샷을 하는 골퍼이다. 향불을 피운다고 말하는데 쾌적한 녹색 자연을 온통 냄새로 오염시킨다.
동반자 흡연에 별 내색을 않는 필자도 여기에선 임계점에 도달한다. 한여름 찌는 날씨에 담배 연기까지 가세하면 어질어질하다.
플레이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티를 꽂으려는 순간 눈에 꽂히는 담배 꽁초가 시선을 잡는다. 이게 무슨 매너인가 싶어 몰입을 방해한다.
클럽을 휘두르고 나서 담배를 물고 잔디 위를 걸어가거나 이동하는 카트에서 흡연하면 정말 괴롭다. 공기 좋고 아름다운 청정구역에서 흡연은 고급 청자 잔으로 폭탄주를 만드는 행위나 다름 없다.
한국프로골프(KPGA) 규정에도 금연 조항은 없다. 그대신 많은 갤러리와 시청자가 지켜보는 방송에 흡연 장면이 노출되면 안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미디어 대응 가이드가 있다. 만약 금연구역이 지정된 곳에서 흡연 장면이 방송에 노출되면 투어 등급에 따라 각각 30만원, 20만원, 10만원을 벌금으로 문다. 벌금 100만원을 부과한다는 징계 양형 규정도 있다. 세계 여자 골프 랭킹 11위 찰리 헐(29)이 지난해 US여자오픈에서 담배를 물고 갤러리에게 사인해 구설에 올랐다. 비판도 받았으나 이색 장면으로 인스타그램 팔로우가 7만 명 이상 늘어나기도 했다.
헐은 담배를 물고 연습하러 가는데 느닷없는 사인 요청에 생각없이 해줬는데 소문으로 번졌다고 해명했다. 어릴 때 담배 피우는 아버지가 싫었는데 스트레스를 받으면 자신도 담배를 피우는데 곧 끊고 싶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말 파리올림픽에선 골프장 전체가 금연구역으로 묶여 흡연할 수 없었다.
파3 골프장에선 간혹 앞 팀이 남기고 간 티 잔해가 꽁초와 뒤섞여 쓰레기 하치장을 방불케 한다. 그대로 꽂혀 있거나 머리 부문이 잘려 나간 티, 시체처럼 나뒹구는 티로 인해 흡사 금방 치른 전쟁터와 같다.
빨강 노랑 파랑 주황 하양 검정 티가 여기 저기 꼿꼿이 서서 나 좀 뽑아가라며 눈을 부릅뜨고 있다. 클럽을 휘두르고 나서 날아가는 공만 쳐다보지 말고 자기 티를 수거하는 것도 매너이다.
여기에다 티잉 구역 곳곳에 웅덩이처럼 패인 디벗 자국들이 더해지면 정작 티 꽂을 자리를 찾기도 여의치 않다. 연습스윙으로 동반자가 커다란 디벗 자국까지 내면 불편하다. 샷 직후 디벗 자국을 내는 건 어쩔 수 없다. 매너에 어긋나지 아니고 오히려 프로 선수는 찍어치기(다운 블로)로 디벗 자국을 낸다.
하지만 연습스윙 도중 습관적으로 디벗을 내면 곤란하다. 정작 실제 스윙에서는 디벗 자국을 내지 않거나 오히려 토핑(Topping)을 하면 잔디를 훼손하려고 골프장에 왔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훼손된 잔디 때문에 인조 매트나 멍석 위에 티 꽂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흡연도 굳이 말릴 생각은 없지만 동반자를 배려하면 좋겠다. 건조한 날씨가 계속되면서 흡연은 자칫 골프장 화재로 연결될 수도 있다. 지난해 인천의 한 골프장에서 실제 이런 일이 발생했다.
“금연만큼 쉬운 것도 없다. 난 수백 번도 넘게 금연해 봤으니까” (마크 트웨인).
담배 끊는 사람보다 피우는 사람이 더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
정현권 골프 칼럼니스트
매일경제신문에서 스포츠레저부장으로 근무하며 골프와 연을 맺었다. <주말골퍼 10타 줄이기>를 펴내 많은 호응을 얻었다. 매경LUXMEN과 매일경제 프리미엄 뉴스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