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티잉 구역에서 연습스윙(가라스윙)을 없앴다. 진행 시간을 절약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심플한 루틴이 멋있게 보였기 때문이다. 처음엔 어색하게 느껴졌는데 지금은 편하다.
대신 티 높이에는 굉장히 예민하다. 조금만 낮게 꽂아도 푸시 샷이나 깎여서 슬라이스를 내기 십상이다.
소재도 잘 부러지는 나무보다 플라스틱 재질로 길고 머리 부분이 넓어 공을 잘 얹을 수 있는 티를 선호한다. 예전과는 달리 티에 집착하는 편이다.
얼마 전 티샷을 끝낸 동반자가 티를 찾느라 시간을 끌었다. 친한 사이여서 그냥 가자고 일행들이 다그쳤다. 못내 아쉬운 듯 주변과 뒤를 두리번거리다가 카트에 올라탔다.
“미국에서 누가 선물로 사온 예쁜 색상인데 아껴서 잘 쓰다가 첫 홀부터 잃어버려 속이 쓰려. 도대체 어디로 갔지?”
골프에서 티는 첫 출발에 사용되는 중요한 도구다. 구질과 비거리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여서 소중하게 다뤄야 할 장비이다. 티를 꽂는 높이와 장소에 따라 다른 결과가 초래된다. 너무 높으면 하늘로 치솟는 스카이볼(뽕샷)로연결되고 낮으면 토핑 우려가 있다.
규칙상 티 높이는 4인치(101.6㎜) 이하다. 잔디 위로 1.5인치(38.1㎜) 올라오게 꽂도록 권장된다. 아마추어에겐 약간 낮게 여겨질 수 있다.
티잉 구역에서 드라이버를 티 옆에 놓았을 때 공의 절반이 헤드 페이스 위로 올라오게 꽂는 높이다. 물론 플레이어 구질과 스윙에 따라 티 높이를 다르게 한다.
보통 티를 높게 꽂으면 왼쪽으로 감기는 훅이 많이 나오고 낮으면 페이드나 슬라이스 가능성이 높다. 이를 감안해 티 높낮이를 조절한다.
하지만 거리를 많이 내는 데 유리한 드로 구질을 구사하려면 약간 높게 한다. 어퍼 블로를 구사하는 사람도 티를 약간 높인다. 본인 구질을 의식해 예상외로 티를 매우 높게 꽂는 지인도 있다.
파3 짧은 홀에서는 공을 티 위에 올려놓는 것과 그냥 잔디에서 치는 차이도 있다. 골프 아카데미 연구에 따르면 티를 꽂지 않았을 때보다 티 위에 공을 올려놓고 치면 평균 12야드 멀리 나간다.
핸디캡이 높은 골퍼의 경우 18야드까지 증가한다. 티를 꽂아야 공기저항을 덜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체로 티를 꽂는 게 유리하다는 분석이다.
티를 꽂을 때 기울기 방향도 구질에 영향을 미친다. 타깃방향으로 기울이면 탄도가 낮아져 페이드, 타깃 반대 방향으로 기울이면 드로 구질이 나온다.
티를 꽂는 장소도 매우 중요하다. 페어웨이 오른쪽이 불편하거나 OB구역이라면 티잉 구역 오른쪽에 티를 꽂고 전방 왼쪽 페어웨이를 향해 공을 날린다.
반대의 경우 왼쪽에 티를 꽂고 오른쪽 대각선으로 향하도록 한다. 말하자면 오른쪽이 무섭다면 오른쪽, 왼쪽이 무섭다면 왼쪽에 티를 꽂고 대각선 방향으로 공을 날린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티잉 구역의 평평한 곳을 찾아 티를 꽂아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무시하고 생각없이 발 앞쪽이 낮은 경사면에 티를 꽂으면 바로 슬라이스를 낸다. 거꾸로 발 앞쪽이 조금이라도 높은 곳에 티를 꽂고 치면 훅으로 연결된다. 그만큼 경사에 민감하다.
티 마크 선상에 평평한 곳이 없다면 약간 뒤에서 평평한 곳을 찾는다. 규칙상 뒤로 두 클럽 이내 면적에 티를 꽂으면 된다.
보통 티는 공과 함께 앞으로 날아가지만 후방으로 향하기도 한다. 간혹 티잉 구역 측면으로도 날아간다.
프로선수나 고수들의 티는 후방으로 날아가고 일반 골퍼의 티는 전방으로 떨어진다는 것으로 종종 얘기된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통계적으로 프로선수가 티샷을 하면 티는 그 자리에 있거나 위로 살짝 치솟았다가 제자리에 떨어집니다. 멀리 가야 반경 30㎝ 이내에 떨어지죠.”
박영민 한국체대 골프부 지도교수는 “샷이 부정확해 클럽으로 공을 내려찍거나 퍼올리면 티가 부러지거나 앞쪽 좌우로 멀리 달아난다”고 설명한다.
간혹 뒤로도 날아간다. 드라이버로 아이언처럼 다운 블로를 구사하면 공이 티 머리 부분을 누르면서 비스듬히 타격하고 그 탄성으로 티가 뒤로 달아난다. 이 때 드라이버로 친 공은 크루즈 미사일처럼 완만한 궤도를 그리다가 위로 치솟아 멀리 날아간다. 공 궤적을 보면 티가 어느 방향으로 튀었는지 대충 안다.
정확한 임팩트와 어퍼 블로를 구사하면 티에 가해지는 클럽 헤드의 힘이 크지 않아 앞쪽으로 살짝 기울거나 솟구쳤다 제자리에 떨어진다.
골프 티는 예전에 신발로 잔디를 파서 적당히 높여 공을 올려놓고 쳤다. 거구의 장타자 로라 데이비스(61)는 최근까지 이 방식을 고수했다.
2018년 US시니어여자오픈에서 웨지로 티잉 구역을 찍은 뒤 불룩 올라온 잔디와 흙으로 티를 만들어 티샷을 날려 눈길을 끌었다.
다음으로 모래를 뾰족하게 쌓아 만든 샌드티가 나왔다. 이를 위해 티잉 구역 옆에 젖은 모래를 보관하는 자루를 준비했다. 오늘날 골프 티는 1925년 미국 치과의사 윌리엄 로웰 박사가 공을 올릴 수 있도록 머리 부분을 오목하게 만들어 대중화했다. 그 티가 특허를 받아 현재까지 이어진다.
재질에 따른 선호도도 다르다. 프로선수들은 보통 나무 티를 좋아한다. 저항이 적고 클럽 페이스에도 손상을 적게 주기 때문이다.
클럽으로 내려친 공에 의해 타격을 받은 티가 부러져야 저항이 덜해 공이 멀리 나간다. 티가 공의 충격에 버티면 조금이라도 비거리가 짧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무 티는 플라스틱이나 우레탄 티보다 내구력이 약해 잘 부러진다. 플라스틱 티는 내구성은 좋지만 나무 티보다 저항감은 크다.
티 규정에 따르면 플레이어의 타구 방향에 도움을 주는 선을 표시하는 디자인은 안된다. 줄이 달린 티로 얼라인먼트를 하거나 목표 방향을 잡아주고 구질 변화를 보조하는 기능성 티는 규정 위반이다.
골프 볼 움직임에 과도한 영향을 주거나 스트로크를 하는데 도움을 주는 티도 사용을 금한다. 이런 규정에 위반되지 않으면 삼발이 티도 괜찮다. 티는 골프 장비 중에서 가장 억울하다. 잃어버려도 애써 찾지 않으려 하고 캐디나 동반자가 부담 없이 내미는 싸구려로 취급된다.
장갑이나 신발 없이도 골프를 할 수 있다. 그러나 티 없이 드라이버나 파3홀에서 우드, 아이언을 제대로 날리지 못한다. 골프장비 가운데 중요성에 비해 가장 저평가 돼 있다.
정현권 골프 칼럼니스트
매일경제신문에서 스포츠레저부장으로 근무하며 골프와 연을 맺었다. <주말골퍼 10타 줄이기>를 펴내 많은 호응을 얻었다. 매경LUXMEN과 매일경제 프리미엄 뉴스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