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 패러독스(time paradox)’란 한 인간이 시간을 여행할 때 발생 가능한 역설을 뜻하는 용어입니다. 과거로의 이동이 가능하다면 인간은 시간을 거슬러 과거를 바꿀 수 있지요. 과거가 변형되면 과거를 이루는 세부사항이 변화하는데 과거는 현재를 이루는 조건이 되므로 현재의 양태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그러면 ‘바뀐 현재’에서 과거로 돌아가는 일은 성립되지 못합니다.
이것이 시간의 역설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의 선형(線形)적 시간을 순차적으로 살아가는 인간은 도저히 경험이 불가능한 상상이지만 타임 패러독스는 심오한 철학적 질문을 건넵니다. 2002년 개봉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1956년 발표된 SF소설의 거장 필립 K. 딕의 동명 소설을 원작 삼은 작품입니다. 시간의 역설을 동시에 다룬 작품인데, 영화와 소설을 함께 읽으면 철학적 주제가 다소 상이합니다. 소설과 영화 모두 ‘SF의 고전’으로 자리잡은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들여다봅니다.
소설과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공통 소재는 예지를 통한 범죄예방 시스템입니다. 때는 2054년(소설에선 시기 미특정), 미국 워싱턴 D.C.는 ‘프리 크라임(precrime)’이란 이름의 범죄예방 시스템이 갖춰진 도시입니다. ‘돌연변이 예지자’ 3인의 초월적인 예지능력을 컴퓨터 기술과 접목해, 살인사건이 발생하기 전 예비 범죄자를 적발해 수용소에 구금하는 시스템입니다. 6년 전 도입된 이 시스템으로 도시에선 단 한 건의 살인사건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관객은 이런 줄거리를 기억하시겠지요. 주인공 앤더턴(톰 크루즈)은 ‘프리 크라임’ 범죄예방국 소속 간부로서 예지 영상을 분석해 예정된 살인을 막는 큰 공로를 세운 일등공신입니다. 아내의 불륜 현장을 목격한 한 예비 범죄자의 우발적 살인을 천재적인 분석력으로 막는 영화 첫 장면도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앤더턴은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이 살인을 저지를 것이란 예지를 접하고, 이를 누군가의 음모라고 확신합니다. 도망자 신세로 전락한 앤더턴은 자신에게 누명을 씌우려 했던 그를 찾는 여정을 떠나는데, 결국 마주하게 되는 건 더 거대한 은막의 진실들이었습니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윤리적 딜레마에 집중하는 작품입니다. 영화에서 거론되는 딜레마는 총 3가지입니다. 첫 번째 딜레마는 아직 실행되지 않은 예정 살인의 예비 범죄자를 공권력으로 처벌하는 일이 타당한가의 문제입니다. 인류사의 가장 강력한 범죄인 살인을 예방해 피해자를 발생시키지 않는다는 발상은 선하지만, 아직 위법을 저지르지 않은 일을 굳이 발각해 처벌하는 사회는 예지의 정확도가 높더라도 딜레마적입니다. 영화의 두 번째 딜레마는 도시 시민 다수의 이익을 위해 소수, 즉 예지자 3인을 강제로 희생시키는 일이 정당한가의 문제입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지향하는 공리주의 관점에선 다수의 안위를 위한 소수의 희생이 불가피하지만 예지자 3인은 자신들의 삶을 희생하는 일에 동의한 적이 없었으니까요. 세 번째 딜레마는 (스포일러입니다) 이 모든 사건의 주범인 범죄예방국장 버지스가 주인공 앤더턴을 죽이기 직전의 딜레마입니다. 버지스 국장이 앤더턴을 살해하지 않으면 프리 크라임의 치명적 오류를 드러내는 일이고(살인을 예지하지 못했으므로), 살해하면 시스템의 완전성은 증거하지만 시스템의 최고 수혜자인 자신이 체포될 수밖에 없습니다. 영화와 달리 소설 ‘마이너리티 리포트’에는 소수의 희생 등의 딜레마는 나오지 않습니다. 예지자가 결국 시스템에서 해방되고 개인적 행복을 추구하는 영화 속 마지막 장면도 소설에선 그려지지 않습니다. (소설에서 예지자의 별명은 ‘백치’입니다). 소설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이 글의 첫 부분에 기술한 ‘타임 패러독스’에 집중합니다. 영화에선 예지자 3인이 거의 동시간적으로 동일한 미래 환영(예지)을 보는 것으로 설정돼 있습니다. 그러나 소설에선 예지자 3인이 서로 다른 환영을 보며, 이때 3인의 예지에는 시간차가 있습니다. 도나, 제리, 마이크(영화에선 아가사, 아서, 대실)의 예지가 서로 조금씩 다른 이유입니다.
소설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첫 번째 예지는 ‘앤더턴이 살인을 저지른다’였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예지는 ‘첫 예지를 들은 앤더턴이 살인을 저지르지 않는다’입니다. 첫 예지가 다음 예지에 개입함으로써 미래 앤더턴의 선택을 변화시켜 버린 겁니다. 그런데 세 번째 예지는 ‘첫 예지와 두 번째 예지를 알게 된 앤터턴이 결국 자의(自意)로 살인을 저지른다’입니다. 이미 변화한 미래(두 번째 예지의 시점, 즉 살인하지 않음)를 뒤틀어 버리는 건 앤더턴의 의지로 일어난 일이었지요. “도나의 예언은 제리의 예언에 변수로 작용되는데, 도나가 예언한 시간의 길은 이미 제리의 예언에 의해 차단되었다.”(122쪽) 반면,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는 시차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설정되며, 세 명이 동시간적인 예지를 보는 것으로 나옵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와 영화의 다른 또 다른 차이점은 정치철학적인 영역입니다. 이 작품의 제목이 ‘마이너리티 리포트(Minority Report)’인 이유는 예지자 3인의 예지 가운데 1인의 소수의견을 마이너리티 리포트로 지칭하기 때문입니다. 2인의 예지는 다수의견으로서 메이저리티 리포트(Majority Report)로 채택되며 범죄예방에 활용됩니다. 3인의 예지는 시차가 있더라도 거의 같은데, 3인의 예지가 늘 동일한 건 아니었습니다. 3인 중 2인의 예지가 같아 다수의견을 이루더라도 1인의 소수의견은 폐기됩니다. 소설에서 도나와 마이크의 예지는 ‘앤더턴이 살인을 한다’는 같은 결과를 냈고, 제리의 예지는 ‘앤더턴이 살인을 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도출하는데, 앤더턴은 자신이 살인을 하지 않는다고 예지했지만 폐기됐던 예지자 제리의 소수의견, 즉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찾는 여정을 그립니다. 다수의견과 소수의견, 이는 민주적 절차의 정당성에 대한 정치철학적 질문과 같습니다. 다수가 같은 의견을 갖더라도 그것이 틀렸을 수 있으며 소수의견에 진실이 숨겨져 있을 수 있음을 소설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이야기합니다. 소설의 중심 문장은 이렇습니다. “다수 의견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필연적으로 그에 상응하는 소수 의견 또한 존재함을 함축한다(The existence of a majority logically implies a corresponding minority).” 그런데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는 메이저리티 리포트라는 단어가 언급되지 않습니다. 다수의견과 소수의견을 대비시킨 소설과 달리 영화는 이에 대한 사유가 부족합니다. 영화에서 예지자의 폐기된 의견, 즉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주인공 앤더턴의 무죄를 입증할 도구에 그칩니다.
소설에서도 영화에서도, 앤더턴은 결국 방아쇠를 당깁니다. 앤더턴이 살해하는 대상 인물은 두 작품에서 전혀 다른데 ‘앤더턴이 총으로 사람을 쏴 죽인다’는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지요. 그런데 앤더턴이 결국 살인을 저지른 이유는 두 작품에서 전혀 다르게 그려집니다. 소설 속 앤더턴은 범죄예방 시스템의 위신이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살인을 결심하고 감행합니다. 그래야만 자신이 창조한 범죄를 예방하는 시스템의 허점이 세간에 노출되지 않을 거라는 자기만의 확신이었습니다. ‘모든 걸 알면서도 살인을 저지른다’는 세 번째 예지에 순응합니다. 그러나 영화 속 앤더턴은 시스템을 옹호할 이유가 없습니다. 소설 속 앤더턴이 범죄예방 시스템의 실질적인 창조자로 그려지는데 반해, 영화 속 ‘프리 크라임’의 창조자는 앤더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앤더턴은 살인이 예지됐던 시각이 ‘지나서’ 총을 쏩니다. 자신이 총을 쏘지 않음으로써 예지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 부분은 의미심장합니다. ‘나는 그 시각에 살인을 하게 되어 있다’는 미래 결정론, 즉 운명을 뒤엎으니까요. 영화가 소설보다 뛰어난 부분을 꼽는다면 바로 이 지점입니다. 인간은 자유의지로 결정론적인 운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교훈 말이지요. ‘미래는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운명의 주인이며 스스로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시각을 영화는 보여줍니다. 이것이 소설의 영화적 각색이 성취 가능한 최대의 묘미일 겁니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미래사회 신기술의 전시장과 같습니다. 2020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익숙한 자율주행차, 음성인식 IoT, 투명스크린, 3D 홀로그램, 홍채인식, 블루투스 이어폰이 영화 곳곳에 등장합니다. 영화가 개봉했던 2002년에는 대부분이 꿈같은 일들이었겠지만 개봉 후 22년이 지난 지금 영화를 다시 봐도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주인공 배역의 톰 크루즈가 모션인식 인터페이스를 활용해 살인의 단서를 추출하는 장면이 유명합니다. 우아한 손동작이 돋보이지요. 이때 스크린에 흐르는 배경음악은 ‘슈베르트 교향곡 제8번 미완성 b단조’입니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주제가 ‘운명 결정론의 부정’과 ‘인간 자유의지에의 찬사’란 점을 기억해볼 때 작품의 가장 상징적인 장면에 흐르는 곡이 ‘미완성’이란 사실은 영화의 깊이를 더해줍니다.
[김유태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3호 (2024년 4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