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遭遇). 우연히 만난다는 뜻이다. 서울 광화문 인근 신문로 안쪽에 자리를 잡은 이탤리언 레스토랑 ‘조우(JOWOO)’는 주택가 골목길에서 우연한 만남처럼 찾아온다. 오래된 주택을 개조해 만든 이곳은 아는 사람만 안다는, 단골손님들의 아지트 같은 곳이다. 2009년 서울 종로구 서촌마을의 작은 한옥에 처음 문을 열었을 때부터 찾아왔던 손님들이 10년이 넘은 지금까지 변함없이 찾아와 일상을 함께 채워나가고 있다. 파스타, 피자 같은 기본 메뉴들도 제철 식재료에 따라 조금씩 바뀌지만 코스 요리는 그날그날 수급되는 재료의 상태에 따라, 찾아오는 손님의 기호에 따라 수시로 변신을 한다.
이탈리아 북부 요리를 주로 선보이는 라 쿠치나 이탈리아나(‘이탤리언 키친’의 이태리어) 조우는 세계 3대 요리학교로 꼽히는 이탈리아의 ICIF(Italian Culinary Institute for Foreigners)를 졸업하고 일본의 다이닝 업계에서 경험을 쌓은 우효숙 오너셰프가 옛 동료와 함께 꾸민 공간이다. 지난 2019년 서촌에서 지금의 자리로 확장 이전했다. 2011년 합류한 음명희 수셰프도 일본 성심조리사전문학교를 나왔다. 그래서인지 조우는 이탈리아 정통 요리를 지향하면서도 다양한 해산물을 다루는 일식의 담백하고 정갈한 맛이 어우러진 것이 특징이다. 우 셰프는 “항상 손님들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다 보니 메뉴나 운영 측면에서 정형화 돼있는 게 없는 편”이라고 말했다.
조우에서 꼭 경험해봐야 하는 것은 디너 다이닝 코스다. 1인당 7만7000원으로 일반적인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지만, 실속 있는 메뉴들과 푸짐한 양으로 넉넉한 만찬을 하기에 제격이다. 우 셰프는 “프랑스에서 어느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 갔는데 접시 하나에 홍합 한 개가 나온 적이 있다. 저도 셰프지만 비주얼은 훌륭한데 그런 식으로 음식의 양이 너무 적게 나오는 게 진짜 싫었다”며 “그래서 더 넉넉하게 준비해 드리는 편이다. 예전보다 줄였는데도 여전히 손님들이 양이 많다고 하실 때가 있다”고 말했다. 런치와 디너 코스는 당일 들여온 식재료로 준비되는 만큼 사전 예약제로 운영된다.
디너 다이닝 코스는 샐러드를 포함한 전채 2종과 파스타, 소고기 스테이크 또는 생선 요리를 선택할 수 있는 메인, 디저트, 커피 또는 티로 진행된다. 런치 코스는 전채가 1종류로 줄어 좀 더 가벼운 코스로 진행된다. 파스타 중에는 ‘새우 엔초비 파스타’와 ‘새우 바케리 파스타’가 인기 메뉴로 꼽힌다. 특히 새우 엔초비 파스타의 경우 한국인 입맛에 맞게 엔초비를 갈아 만든 엔초비 소스로 감칠맛을 살리면서도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우 셰프는 “이탈리아 현지에서 먹는 파스타는 치즈가 훨씬 많이 들어가 짜게 느껴지는데 외국인들이나 손님들이 원하는 경우에는 치즈를 많이 넣어 드린다”고 말했다.
제철 생선회를 올린 샐러드 역시 조우의 또 다른 시그니처다. 당일 새벽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가져온 싱싱한 생선회를 소금과 후추, 올리브유로 밑간을 한 뒤 양상추, 오렌지 등 각종 과일과 채소에 양파 같은 시원한 감칠맛을 느낄 수 있는 이탤리언 에샬롯(작은 양파처럼 생긴 백합과 식물) 소스를 곁들였다. 농어, 광어 등 주로 담백한 종류의 생선회를 올려 회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쉽게 즐길 수 있다.
조우의 가지 샐러드는 단골손님들이 강력 추천하는 메뉴 중 하나다. 가지를 통째로 구운 다음 껍질을 벗겨낸 뒤 이탈리아 정통 토마토 파스타의 일종인 ‘푸타네스카 파스타’의 푸타네스카 소스를 올렸다. 푸타네스카는 진한 토마토 소스, 올리브와 케이퍼의 강렬하고 풍부한 맛이 특징이다. 푸타네스카 소스를 올린 구운 가지 위에 엔초비를 더해 감칠맛을 살렸다. 차갑게 먹는 샐러드로 화이트 와인이나 스파클링 와인과도 잘 어울리는 맛이다.
또 정식 메뉴에는 없지만 필로(종이처럼 반죽을 아주 얇게 해 만든 페스트리 같은 빵)에 싼 아스파라거스는 조우의 시그니처 메뉴로 자리잡았다. 이름 그대로 필로에 아스파라거스를 겹겹이 싸서 오븐에 구워낸 요리다. 겉보기엔 뭉뚝한 파니니처럼 보이지만 한입 베어 물면 얇은 빵이 부드럽게 씹히면서 버터의 고소함이 촉촉하게 입안을 감싼다. 한 겹 한 겹 버터를 바르면서 싼 덕분이다. 아스파라거스의 단맛과 버터의 짠맛이 어우러진 ‘단짠’ 조합으로 입맛을 돋운다. 특히 봄에는 아스파라거스가 가장 달고 맛있는 시기라 손님들이 더 많이 찾는다는 설명이다.
프랑스의 달팽이 요리인 ‘에스카르고 버터’를 재해석한 뿔소라 요리도 인기 메뉴다. 제주에서 공수해온 활뿔소라의 내장을 제거한 뒤 그 안에 프랑스 이즈니 버터와 각종 다진 채소를 함께 넣고 오븐에 구워낸 요리다. 뿔소라의 쫀득한 식감과 버터의 부드러움이 자칫 느끼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허브와 양파, 마늘이 이를 잡아준다. 우 셰프는 “처음엔 달팽이로 요리를 했었는데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식감이 아니어서 뿔소라로 대체해 봤더니 반응이 훨씬 좋았다”고 설명했다.
평일에만 운영하는 런치 타임에는 오늘의 파스타 또는 리소토를 빵과 샐러드, 커피 또는 주스와 함께 제공하는 런치 세트를 주문하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알리오올리오, 까르보나라, 바질크림 링귀네, 먹물 리소토 등 다양하게 고를 수 있다. 조우에서는 신선 재료를 제외한 대부분의 식재료를 이탈리아산으로 사용하고 있다. 요리에 넣는 버터와 소금도 프랑스의 이즈니 버터와 게랑드 소금을 고집한다.
조우는 일반 주택을 개조한 공간으로 작은 안뜰을 지나 건물에 들어가면 1, 2층의 다이닝 공간이 나온다. 프라이빗 룸은 최소 4인에서 최대 8인까지 이용할 수 있다. 2층에는 창밖으로 테라스 공간이 있고 삼면으로 창이 나 있어 낮 시간에는 따스한 햇살과 어우러진 아늑한 공간이 된다. 화이트톤으로 깨끗하게 비워진 공간은 다이닝과 대화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도록 해 준다. 1, 2층을 합하면 최대 65명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어 대관 행사도 자주 있는 편이다. 서촌에 있을 때부터 인근 대사관이나 외교부, 외신 등에 입소문이 나 외국인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다. 우 셰프가 일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덕분에 일본인 손님도 상당히 많은 편이다. 본래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던 우 셰프는 요리를 업으로 삼고 싶다는 생각에 20대 중반이었던 2002년 이탈리아로 떠나 이탈리아 북부에서 정통 이탤리언 요리를 배웠다. 이후 ICIF에서 만난 일본인 친구와의 인연으로 2004년부터 3년간은 일본에 머물면서 게이오프라자호텔 다이닝을 비롯해 다양한 레스토랑을 거치며 실력을 쌓았다. 그러다 2007년 한국의 와인 수입사인 와인나라의 VIP 식음료(F&B) 전담 셰프로 일하면서 와인 페어링 경험을 쌓았고, 2009년 조우를 열게 됐다.
처음부터 조우가 잘됐던 것은 아니다. 시행착오가 많았다. 우 셰프는 “초창기에는 가게에 손님이 워낙 없다 보니 단골손님들을 위한 출장 케이터링을 나가기도 했다”며 “그때 초등학생이었던 손님이 지금은 다 큰 성인이 되어 지금도 찾아와주신다. 당시 버틸 수 있었던 것도 단골손님들 덕분”이라고 말했다. 현재도 조우는 자주 찾아오는 손님들의 기호에 맞춘 메뉴 구성으로 계속해서 변화와 성장을 거듭해나가는 중이다. 프랑스 출신 제빵사가 이끄는 ‘에꼴 듀빵’이라는 베이커리 마스터 클래스에서 제빵을 배우고 있다는 우 셰프는 올해 안에 새로운 베이커리 카페 오픈을 준비하고 있다. 현재 조우에서 제공되는 모든 요리와 디저트에 들어가는 빵도 우 셰프가 직접 손으로 만든 것들이다. 우 셰프는 “프랑스의 ‘르방’이라는 천연 발효기법을 이용해 만든 건강빵을 선보이고자 한다”며 “손님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음식으로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조우(JOWOO)
장르 이탤리언
위치 서울 종로구 경희궁1길 10-1
오너셰프 우효숙 셰프
영업시간 월~금 11:30~22:00(14:30~17:30 브레이크 타임), 토 17:00~21:00, 매주 일 정기휴무
가격대 단품 1만6000~3만원, 런치 코스 5만7000원, 디너 코스 7만7000원
프라이빗 룸 2개(4~8인 이용 가능)
전화번호 02-732-1383
주차 불가(인근 유료주차장 이용)
[송경은 기자 · 사진 류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3호 (2024년 4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