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소송은 기본적으로 납세자가 번 돈에 부과된 세금을 다투는 것이다. 납세자에게 수십억원의 세금이 부과되었어도 납세자가 번 돈은 그보다 많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납세자에게 부과된 세금을 그대로 납부하라는 패소 판결을 선고하더라도 마음이 괴로울 일은 많지 않다. 하지만 명의신탁 증여의제 사건을 재판할 때면 그렇지 않을 때가 있다. 명의신탁이 국가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라도 명의신탁에 고액의 증여세를 부과하는 것은 가혹하다고 보이는 사건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명의신탁이란 권리의 이전이나 행사에 등기 등을 요하는 재산에 있어서 실제 소유자와 명의자가 다른 경우를 의미한다. A가 1가구 2주택의 규제를 피하기 위해 친구인 B명의로 아파트의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쳤다고 생각해 보자. A, B 모두 A가 아파트의 소유자라고 생각하고 있고, 아파트의 실제 사용·관리를 모두 A가 하고 있다면, 비록 등기부등본에는 B가 소유자라고 기재되어 있더라도 A를 아파트의 실제 소유자로 볼 수 있다. 이런 경우를 명의신탁이라고 한다. 명의신탁 증여의제 규정이란 위와 같은 명의신탁을 증여로 의제하여 증여세를 부과하는 내용의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증세법) 규정이다.
과거 과세관청은 명의신탁에 양도소득세나 증여세를 부과하려 한 적이 있었다. 위 사례에서 A에게는 양도소득세를, B에게는 증여세를 부과하려 하였으나 대법원에서 모두 패소하였다. 등기부 기재에도 불구하고 A가 실질적인 소유자인 이상 A가 B로부터 대가를 받고 아파트를 양도했다거나, B가 무상으로 아파트를 취득하였다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과세관청은 명의신탁을 규제하기 위해 A가 B에게 아파트를 명의신탁하면 A가 B에게 아파트를 증여한 것으로 간주하여 B에게 증여세를 부과하는 상증세법 규정을 신설하였다.
위와 같은 명의신탁 증여의제 규정은 조세회피를 위한 명의신탁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을지 모르나 실질이 증여가 아닌 것에 대하여 증여세를 부과한다는 점에 문제가 있다. 오히려 사안에 따라서는 납세자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결과가 생기기도 한다. A가 명의수탁자를 B에서 C로, 다시 C에서 D로 변경하면 어떻게 될까? B, C, D에게 모두 증여세가 부과된다. 증여세가 계속 부과됨에 따라 B, C, D에게 부과된 총 증여세가 아파트의 가치를 넘을 수도 있다. B, C, D는 국가에 증여세를 납부한 후 A에게 자신들이 납부한 증여세 전액에 대해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다(대법원 2018. 7. 12. 선고 2018다228097 판결). A는 하나의 아파트를 여러 사람의 명의로 신탁했다는 이유로 아파트 시가를 넘는 증여세를 부담하게 될 수 있다.
이러한 명의신탁 증여의제 규정에 대해서는 위헌 시비가 끊이지 않았고 여러 차례 개정되었다. 우선 명의신탁 증여의제 규정의 대상에서 부동산이 제외되었고 이에 따라 현재는 주로 주식의 명의신탁이 문제되고 있다(현재 부동산 명의신탁은 부동산실명법에서 규제하고 있다). 또한 과거에는 명의수탁자(B, C, D)에게 증여세가 부과되었으나 이제는 명의신탁자(A)에게 증여세가 부과된다. 마지막으로 명의신탁에 조세 회피의 목적이 없다면 증여세가 부과되지 않는다. 그에 따라 명의신탁에 조세 회피의 목적이 있는지 여부가 명의신탁 증여의제와 관련한 조세소송의 핵심 쟁점이 되고 있다. 다만 상증세법에서 명의신탁이 있으면 조세 회피의 목적이 있다고 추정을 하고 있어 납세자가 조세 회피의 목적이 없음을 입증해야 하는데, 실무상 조세 회피의 목적이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처음 사례로 돌아가 보자. 철수가 조세 회피의 목적이 없음을 입증하기는 쉽지 않다. 과점주주의 제2차 납세의무, 과점주주의 간주취득세, 배당에 따른 종합소득세 등 여러 세금 중 어느 하나는 회피할 목적이 있었다고 인정될 여지가 크다. 만약 철수가 아들에게 주식을 명의신탁한 채 사망하였다면 철수 아들은 주식에 대해 상속세를 내야 할 수도 있다. 증여의제 규정이 적용되어 증여세가 부과되었어도 명의신탁의 실질이 증여로 변경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주식은 철수의 상속재산이 된다고 보는 것이 법원의 태도이기 때문이다(대법원 2004. 9. 24. 선고 2002두12137 판결). 즉, 철수 아들을 비롯한 상속인들은 철수가 주식에 대해 증여세를 납부했더라도 이와는 별도로 주식에 대한 상속세를 납부해야 한다. 명의신탁 증여의제 규정은 실질이 증여가 아닌 것에 높은 세율의 증여세를 부과한다. 또한 명의신탁 증여의제 규정에 따라 증여세를 납부했더라도 명의신탁의 실질이 증여로 변경되지 않으므로 증여세를 납부한 부분에 대해 다시 증여세, 상속세 등이 부과될 수 있다. 주식 명의신탁에 신중해야 하는 이유이다.
※ 본 칼럼은 필자의 소속기관과는 관련 없음.
허승 판사
현재 대법원 재판연구관(부장판사)으로 근무중이며 세법, 공정거래법에 관심을 갖고 있다. 대전변호사회 우수법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저술로는 <사회, 법정에 서다> <오늘의 법정을 열겠습니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