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통의 편지가 도착합니다. 수신인은 이제 노인이 된 토니입니다. 토니는 이 편지에서, 20대 시절 여자친구였던 베로니카의 모친인 사라가 사망했다는 슬픈 소식과 함께, 고인이 된 사라가 토니 자신에게 유품을 남겼다는 내용이 담긴 유언장 편지를 전달받습니다.
40년 전 잠시 연인관계였던 베로니카와 오랜 세월 연락을 나누지 않았는데, 베로니카도 아닌 베로니카의 어머니가 자신에게 유품을 남겼다는 소식은 흥미로웠습니다. 심지어 그녀가 토니에게 남긴 유품은 ‘일기장’이었습니다. 그런데 베로니카는 어머니 유품을 옛 남자친구 토니에게 건네주기를 거부합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일까요. 소설 원작의 영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첫 부분입니다. 줄리언 반스의 소설 <The Sense of An Ending>(한국어판 제목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을 원작 삼은 영화이지요. 줄리언 반스는 이 소설로 2011년 맨부커상을 수상했습니다. 메가 히트작이었지요.
인간이 저지르는 기억의 편집과 윤색에 관한 처절한 반성적 사유를 주제 삼은 작품입니다. 영화관 관객 수는 적었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걸작 중의 걸작이지요. ‘이 영화/소설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 왜냐하면 이 영화/소설의 결말에 이르면, 처음부터 다시 봐야 하기 때문이다’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의 수작입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내부로 들어가 봅니다.
줄거리부터 복습해 볼까요. 토니는 중고 카메라를 판매·수리하는 60대 영국인 남성입니다. 출근하던 날, 위에서 언급한 저 편지가 토니에게 도착합니다.
수소문 끝에 어렵사리 재회한 베로니카는 “그 일기장을 이미 태워버렸다”며 토니의 부드러운 요구를 단번에 거절합니다.
그 과정에서 토니는, 사라가 토니에게 남긴 일기장이 사라의 글이 아니라, 토니의 고교 동창이자 오래전 자살한 친구 에이드리언이 남긴 일기장이란 사실까지 접하게 됩니다. 10대 시절, 토니와 에이드리언은 깊은 교우를 나눈 친구였습니다. 다소 욱하는 성격이었던 토니와 달리, 에이드리언은 진중한 성격이었습니다. 그는 마치 ‘어린 철학자’ 같았지요. 에이드리언은 “자살만이 단 하나의 진실한 철학적 문제”(29쪽)라는 프랑스 소설가 알베르 카뮈의 문장을 가슴에 품고 사는 친구였습니다. 실존의 문제에 누구보다 고민했었지요.
베로니카와 사귀던 토니는, 에이드리언에게 베로니카를 소개하게 됩니다. 그건 ‘잘못된 만남’이었습니다. 토니가 에이드리언으로부터 “너의 여자친구 베로니카와 사귀게 되었다”는 끔찍한 내용의 편지를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머리가 희끗한 노인이 된 토니는, 그 시절 자신이 두 사람에게 ‘열애 사실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글이 적힌 ‘쿨’한 답장을 보냈다고 기억합니다. 하지만 그건 사실과 다른 ‘편집된 기억’이었지요.
그런데, 토니의 편지를 받은 에이드리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욕조에서 자살했습니다. 노인 토니는 ‘옛 친구 에이드리언이 자살했다’는 팩트만 기억할 뿐, 자신이 부쳤던 편지 속 내용은 까맣게 잊고 살았습니다.
왜 사라는 토니에게 일기장을 남겼을까요. 베로니카는 또 왜 일기장을 주지 않으려는 걸까요. 의문스러운 한 권짜리 일기장, 그리고 그 일기를 썼던 오래전 자살한 친구. 자신을 배신했던 여자친구와 그의 어머니. 토니 앞에 부메랑처럼 다가오는 진실은 완전히 뒤엉킨 상태입니다.
영화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토니는, 자신의 기억과 달리, 에이드리언과 베로니카에게 ‘결코 해서는 안 될 악담’이 담긴 긴 욕설 편지를 보냈습니다. 둘 사이에 아이가 생기길 바라며, 베로니카의 엄마도 찾아가 보라는 외설적인 말이었습니다. 이 편지는 강력한 저주처럼 훗날 끔찍한 결과를 낳게 됩니다. 에이드리언은 베로니카의 ‘젊은’ 어머니 사라를 만났다가 관계가 깊어져 임신이 되었고(에이드리언의 아이를 모친 사라가 임신함), 베로니카는 옛 남자친구 에이드리언과 엄마 사라의 아들, 그리고 자신의 약 20년 터울인 남동생을 ‘평생’ 부양해야 했습니다. 토니의 편지에 이 모든 내용이 ‘예.언.처.럼.’ 담겨 있었습니다.
그런데 소설에는 없고 영화에만 나오는 사물 하나를 깊게 들여다보면 이 기막힌 이야기는 우연만은 아닙니다. 그 사물은 바로 ‘주사위’입니다.
영화 속 한 장면. ‘아직’ 연인이었던 토니와 베로니카가 호숫가에 차를 주차합니다. 두 사람은 뒷좌석에서 사랑을 나눕니다. 몸이 달아오른 토니와 달리 베로니카는 성관계를 거부합니다. 토니도 베로니카의 뜻을 존중하고, 둘은 차량 앞 좌석에 나란히 앉아 대화를 나눕니다. 미래에 관한 두려움, 관계에 대한 확신. 연인 사이엔 그런 얘기가 오갔습니다.
그 장면에서, 차량 룸미러에 달린 주사위 모형을 기억하시는 분이 혹시 계실까요. 검은 바탕에 흰 점이 찍힌, 주먹 크기의 주사위 2개 말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2개 중 하나의 주사위 겉면 숫자가 좀 특이합니다. 베로니카 쪽에 위치한 한 주사위인데, 이 주사위는 3개 면의 숫자가 ‘5, 2, 2’입니다. 정육면체 주사위는 서로 마주보는 두 면의 숫자 합이 7입니다. 1이 적힌 면의 반대쪽 면에 6이 적히는 식이지요. ‘2와 5’, ‘3과 4’도 쌍을 이룹니다. 주사위 숫자 배치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세계 공통입니다.
그런데 베로니카 쪽의 주사위는 다릅니다. 인접한 3개 면의 숫자가 ‘5, 2, 2’입니다. 일단 숫자 2가 두 번 나온다는 점도 이상한데, 무엇보다 주사위 배치상 5와 2는 인접할 수가 없거든요.
숫자가 잘못 적힌 베로니카의 주사위. 이게 과연 우연일까요. 스크린에 나오는 모든 사물엔 연출자 의도가 치밀하게 계산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 숫자가 뒤엉켜 있을까요. 토니가 바라본 세상의 질서는 대체로 반듯합니다. 토니를 둘러싼 세계의 인과(因果)는 논리정연합니다. 토니의 삶도 그렇습니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출근해야 하고, 제품(중고 카메라)을 구입할 의사가 적은 손님의 질문은 달갑지 않습니다. 어른들이 얘기할 땐 카페에서 꼬마들이 제멋대로 떠들어서도 안 되지요. 모두 작품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규율과 규범에서 벗어나지 않기.’ 그런 토니에겐, 베로니카가 일기장을 주지 않는 이유도 논리적으로 해석되어야 했습니다.
토니가 베로니카를 따라가 보니, 그녀 곁엔 에이드리언을 닮은 한 청년이 보였습니다. 그 청년은 에이드리언과 사라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토니는 처음에, 저 청년이 세상을 떠난 옛 친구 에이드리언와 베로니카의 자식이라고 오판했습니다. 토니 머릿속에선 이런 논리가 성립합니다. ‘에이드리언과 동침했던 스무 살 베로니카가 임신했다. → 에이드리언은 충격으로 자살했다. → 사라가 나(토니)에게 남긴 일기장은 베로니카 남편인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이다. → 따라서 나는 그 일기장을 달라고 주장할 권리가 없다.’
토니는 이런 생각을 베로니카에게 전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차가웠습니다. “아직도 전혀 감을 못 잡는구나. 그냥 포기하고 살지 그래.” (246쪽, 베로니카의 이메일)
‘5, 2, 2’가 적힌 이상한 숫자들의 조합인 주사위는 상징적입니다. 베로니카에게 삶이란 저 뒤죽박죽인 주사위처럼 예측 불허하고 엉뚱한 결과를 낳는 일들의 연속이었지요. 베로니카는 뒤죽박죽이 된 운명이 주는 수치와 수모를 온몸으로 견뎌야 했습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가 주는 충격은 바로 베로니카가 감당했을 가혹한 운명에서 오지요. ‘내 남자친구가 내 엄마를 임신시켜 낳은 장애아 동생을 평생 결혼도 하지 못한 채 양육해야 하는 운명.’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고 했던가요. 그렇다면 저 주사위는 우연입니까, 필연입니까.
토니가 운영하는 상점의 카메라도 의미심장합니다. 토니는 런던에서 작은 카메라 상점 ‘Leica Sales & Repair’를 운영합니다.
카메라의 본질은 ‘기억을 붙잡는 도구’입니다. 하나의 상을 백지에 맺히게 한 뒤 인화된 이미지로 기억을 박제합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의 주제인 ‘기억의 윤색’에더없이 어울리는 사물이지요. 토니가 자신의 기억을 ‘비의도적으로’ 굴절시키고 왜곡함으로써 이 모든 일이 벌어졌으니까요. 영화에 나오는 토니의 카메라 상점은 소설엔 단 한 줄도 언급되지 않는데, 참 멋진 각색입니다.
단어 ‘카메라’는 라틴어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에 어원을 둡니다. ‘어두운 방’이란 뜻입니다. 인간의 기억은 마치 카메라 옵스큐라처럼 어두운 방, 즉 인간의 심연을 거친 뒤 우리 내면에 저장됩니다. 그 과정에서 왜곡과 굴절은 필연적이지요. 그래서 모든 기억은 ‘중고’입니다.
그럼에도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희망적입니다. 편집된 기억일지라도, 우리는 다시 그 기억을 재생하며 원형에 가깝도록 복원하고, 이로써 제자리를 찾은 기억으로부터 살아갈 힘을 얻으니까요. 토니가 중고 라이카 카메라를 ‘판매’만 하지 않고 동시에 ‘수리’하기도 한다는 점, 그것이 이 작품이 남기는 유일한 희망 아닐까요.
김유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