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소셜 미디어 사회에서는 개인정보에 대한 불편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스텔스 웰스(Stealth Wealth·은밀한 富)’라는 개념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이는 부유함이나 사회적 지위를 눈에 띄게 과시하는 대신 사생활, 신중함, 익명성을 바탕으로 부를 표현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요즘 핫한 ‘올드머니룩(금수저의 옷장에서 나온 듯한 고품질의 소재와 우아하고 절제된 디자인)’이나 ‘조용한 럭셔리’와도 일맥상통하는 개념이다. 로고나 화려한 디자인보다는 고급 소재와 미니멀한 디자인이 주요 특징이다. 이러한 스텔스 웰스 개념을 주얼리에 적용한다면 단연 부피 대비 최고의 가치를 지니는 ‘팬시 컬러 다이아몬드’를 꼽을 수 있다. 화이트 이외의 색을 지닌 다이아몬드를 ‘팬시 컬러 다이아몬드’라고 부르는데, 슈퍼 리치들의 주얼리 포트폴리오 꼭지점에 위치해 자산 가치뿐만 아니라 개인의 취향과 정체성을 감각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으로도 각광받고 있다.
팬시 컬러 다이아몬드는 보통 화이트 다이아몬드 1만 개당 하나꼴로 산출된다. 총 12개의 색이 존재하지만 투자 세계에서는 핑크, 블루, 그린, 옐로 다이아몬드에 관심이 집중된다. 특히 1캐럿조차 드문 핑크와 블루 다이아몬드는 주요 경매에서 늘 낙찰가 최상위에 랭크되어 있다. 소더비에서 지난 10년간 경매를 통해 판매한 최고가 다이아몬드의 절반이 핑크 다이아몬드였을 정도다. 미국 보석감정연구소 GIA에 의뢰되는 다이아몬드 중에서 팬시 컬러 다이아몬드의 비율은 3% 미만으로 특히 핑크 다이아몬드는 0.0015%밖에 되지 않는다. 더욱이 전 세계 핑크 다이아몬드 생산의 90% 이상을 담당하던 호주의 아가일 광산이 2021년 말에 문을 닫으면서 더욱 귀한 존재로 부상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메이저 경매에서 신기록을 경신하며 화제의 중심에 오르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지난 6월 8일, 소더비 경매에서는 10.57캐럿의 ‘이터널 핑크 다이아몬드가’ ‘퍼플리시 핑크 다이아몬드’ 사상 옥션 최고가(3480만달러)와 ‘캐럿당 최고가(329만달러)’ 2개의 기록을 세웠다.
팬시 컬러 다이아몬드의 가치를 평가할 때는 무조건 색상을 우선순위에 놓아야 한다. 아름다운 색을 가지고 있다면 다른 요소인 투명도와 컷은 화이트 다이아몬드만큼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컬러 다이아몬드 입문용으로는 옐로 다이아몬드를 추천한다.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영화 포스터에서 오드리 햅번이 착용한 티파니 다이아몬드를 떠올려보자. 화이트 다이아몬드에서는 약간의 노란기만 돌아도 질색하는 데 반해 옐로 다이아몬드에서는 노란색이 짙을수록 열광한다. 브라운, 오렌지, 그린 같은 보조색 없이 순수하고 짙은 노란색을 띠는 ‘팬시 비비드’ 등급이 가장 높은 가치를 지닌다. 한편, 현재 슈퍼 리치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있는 다이아몬드는 핑크색이다. 다이아몬드 100만 캐럿 중 1캐럿 정도가 산출되는 아주 희귀한 존재로, 여성스럽고 로맨틱한 데다 섹시한 매력에 가격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순수한 핑크색이 가장 가치가 높지만 대부분 브라운이나 퍼플 같은 보조색이 공존한다. 이러한 보조색 중에서는 핑크색의 채도를 높여주는 퍼플의 가치가 가장 높게 평가되며, 어둡게 만드는 브라운이 가장 낮은 가치를 가진다. 화이트 다이아몬드와 달리 핑크 다이아몬드에서 컷은 우선적인 고려 요인이 아니다. 핑크 다이아몬드는 0.2캐럿 이상만 돼도 귀하고, 1캐럿 이상은 극히 드물기 때문에 중량 보존을 위해 특이한 형태나 비율로 연마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완벽한 비율에 가까울수록 가치가 높아진다.
핑크와 함께 투톱으로 꼽히는 블루 다이아몬드는 채도의 폭은 좁은 반면 명도는 밝은 것부터 아주 어두운 것까지 다양하게 존재한다. 어떠한 보조색도 함유하지 않은 순수한 푸른색이 가장 가치가 높고, 회색기를 띨 경우에는 가장 높은 ‘비비드’ 등급을 받을 수 없다. 1700년대 전까지 블루 다이아몬드의 원산지는 인도가 유일했다. 이후 남아프리카와 호주에서 종종 생산됐지만 오늘날 인도와 호주의 광산은 고갈된 상태다. 지난 5월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는 4.83캐럿의 ‘팬시 비비드 블루’, IF 등급의 다이아몬드가 880만달러에 낙찰됐고, 소더비 제네바에서는 11.16캐럿 ‘팬시 비비드 블루’ 다이아몬드가 2520만달러에 거래됐다.
다이아몬드가 완전히 결정화된 후 수백만 년 동안 안정된 온도에서 방사능에 노출되면 매력적인 그린 다이아몬드로 변한다. 하지만 다이아몬드 내부로 깊게 발색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며, 대부분의 그린 다이아몬드는 표면에만 얇게 녹색이 스며들어 있다. 이 경우 폴리싱 과정에서 녹색이 사라질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그린 다이아몬드는 보조색 없이 순수한 그린색이 가장 가치가 높은데 대부분 보조색으로 그레이, 옐로, 블루, 브라운이 포함돼 있다.
오늘날 천연 팬시 컬러 다이아몬드를 소유하는 것은 사회적인 성공과 번영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다. 미술품과 달리 부피가 작기 때문에 국경을 넘어 운송이 용이하고, 부동산처럼 보유세가 부과되는 자산과 비교할 때 절세효과도 두드러진다. 이러한 다양한 가치 요소와 희소성은 많은 사람들에게 소유 욕구를 불어넣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게다가 현존하는 모든 다이아몬드 광산이 약 57년 내로 고갈될 예정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 귀한 자원의 가치에 대해 두말할 필요가 없다.
윤성원 주얼리 칼럼니스트·한양대 보석학과 겸임교수
주얼리의 역사, 보석학적 정보, 트렌드, 경매투자, 디자인, 마케팅 등 모든 분야를 다루는 주얼리 스페셜리스트이자 한양대 공과 대학원 보석학과 겸임교수다. 저서로 <세계를 매혹한 돌> <세계를 움직인 돌> <보석, 세상을 유혹하다> <나만의 주얼리 쇼핑법> <잇 주얼리> <젬스톤 매혹의 컬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