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에 대한 취향이 깊어지면 필연적으로 마주하는 이름이 있다. 바로 ‘SMWS’, 스카치 몰트 위스키 소사이어티(Scotch Malt Whisky Society)다. 1983년 설립되어 올해 40주년을 맞은 SMWS는 156여 개 증류소에서 캐스크를 구입 후 독립 병입한 위스키를 매 분기 새롭게 출시하고 있다. 오직 회원들만 구매가 가능한 시스템으로 현재 31여 개국, 3만 6000여 명의 회원이 가입되어 있는 제법 덩치 큰 클럽이다. 시작은 소소했다. 1978년 위스키 애호가 핍 힐스(Pip Hills)가 자신이 경험한 위스키 맛을 공유하고자 글렌파클라스(Glenfarclas) 증류소를 설득해 몇몇의 친구들과 함께 캐스크를 통째 구입했다. 시중에서는 절대 구할 수 없는 이 특별한 캐스크를 오픈한 어느 날 밤, 그들은 술이 아니라 맛과 향에 흠뻑 젖어 들었다. 맛있는 이야기는 빠르게 퍼지는 법이다. 입소문을 타며 점차 핍 힐스로부터 위스키를 구매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늘었고, 그는 지금의 회원제 시스템을 만들어 더욱 다양한 증류소에서 더 많은 캐스크를 구매하기 시작했다.
취향이 형성된 위스키 애호가들이 버리기 어려운 습관 중 하나는 브랜드(대개 증류소의 이름인)에 따른 선택이다. 각각의 증류소가 지닌 ‘전반적인’ 특징을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당신이 알고 있는 그 특징이 증류소의 전부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위스키 원액은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숙성 방식에 따라, 연도에 따라, 물을 더했느냐 더하지 않았느냐에 따라 무궁한 맛과 향으로 완성될 수 있다. 직접 캐스크를 구입해 독립 병입하고, 모든 제품을 캐스크 스트렝스(물을 희석하지 않은 위스키)로 선보이는 SMWS는 이 점에 착안해 레이블에서 브랜드 표기를 과감하게 지웠다. 편견을 버리고 한 잔에 담긴 위스키에 집중해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물론 증류소마다 고유 번호를 부여해 표기하기 때문에 찾아보면 얼마든지 어느 증류소의 것인지 알 수 있지만, 선택의 순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증류소 이름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 자리는 위스키가 가진 스토리나 어울리는 음식, 맛과 향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문장이 대신한다. ‘내 근육을 좀봐!(LOOK AT MY MUSCLES!)’ ‘커튼 뒤의 피칸(PECAN BEHIND THE CURTAIN)’ ‘칵테일 파티 (COCKTAIL PARTY)’ 등 한번 불러보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미소가 지어지는 이름들이 그것이다.
애호가만을 위한 불친절한 레이블인가 하면, 꼭 그렇지는 않다. 맛과 향에 대한 자세하고도 섬세한 표현의 가이드를 제공하고 ‘스파이시&드라이(Spicy&Dry)’부터 ‘무거운 피트향(Heavily Peated)’까지 12가지 캐릭터 프로파일을 만들어 캡과 레이블에 각기 다른 컬러로 구분해 사용하고 있다. 똑똑하고 유머러스하고 친절하기까지 한 위스키 친구를 곁에 둔 느낌이랄까.
처음 SMWS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됐을 때 ‘위스키’ ‘회원제’ ‘소수 인원’ 등의 키워드가 주는 무게감이 상당했다. 특정 사람들만 누릴 수 있는 그들만의 리그일 것이라고 지레짐작한 것이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2023년 봄, 40년 만에 드디어 한국에도 SMWS 지사가 설립됐을 때 책정한 회원비는 연 10만원. 위스키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평등하게 기회를 가질 수 있을 법한 가격이었다. 그 기회는 발 빠르게 움직인 300명에게 주어졌다. 그들에게는 회원카드와 테이스팅 글라스, 각종 혜택이 있는 웰컴 키트가 주어졌다. ‘Hello, Members!’라는 환영 인사와 함께.
회원이 되면 SMWS 위스키 구매 및 각종 테이스팅 세션에 참여할 수 있고, 전 세계 SMWS 회원들을 위한 공간도 모두 이용할 수 있다. 회원 자격은 영구적이지 않고 매년 새롭게 갱신된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배타적이지 않은 클럽, 그러나 회원이 되면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는 방식. SMWS는 클럽 밖의 소외가 아닌 클럽 안의 소속감을 세련된 방식으로 강조한다. 소량 생산되는 위스키이니 만큼 월 구매 수량도 한정하고 있다. 회원 1명이 독점하지 않고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공유할 수 있도록 택한 방식이다. 회원이 될 기회를 놓쳤지만 이 특별한 위스키를 맛보는 기회까지는 놓칠 수 없다면 파트너스 바에서 경험할 수 있다. 한국에는 청담 ‘믹솔로지’와 ‘르챔버’, 한남동 ‘소코’가 있다. 그중 ‘믹솔로지’의 김봉하 오너 바텐더는 SMWS 코리아 설립에 오랜 기간 공을 들여온 인물이다. 그는 “수년 전 믹솔로지의 백 바(Back Bar)를 바라보며 급부상하고 있는 싱글 몰트 위스키의 미래에 대해 잠시 생각한 적이 있다”며 “위스키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지금, 단순히 몸집이 커지는 시장이 아닌 성숙한 성장을 꿈꾸며 SMWS의 한국 론칭을 하게 됐다”고 소회를 말했다. 창립자인 핍 힐스가 자신이 경험한 위스키의 맛을 여러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던 마음에서 시작된 SMWS. 40년 동안 이어진 그 취지를 이어받은 SMWS코리아 역시 한 브랜드의 성장을 넘어 현재 한국 위스키 시장에 다양성을 화두로 공유의 장을 펼쳐 나가겠다는 다짐으로 해석된다. SMWS의 회원이라면 회원으로서의 자부심을 느끼며, 존재를 몰랐다면 지금 알게 됐다는 설렘으로. 오늘도 한잔할 핑계는 이것으로 충분해 보인다.
장새별 F&B 콘텐츠 디렉터
먹고, 마시는 선천적 애주가. 미식 매거진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다. 현재는 스타앤비트컴퍼니를 설립해 F&B 콘텐츠를 기획하고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