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들어 주위에서 구스타프 말러(보헤미아 출신의 오스트리아 낭만주의 작곡가)에 대해서 물어오는 이들을 심심찮게 만나곤 한다. 아마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의 영향이 크겠지만 그런 질문은 대개 “그의 작품들 중 어떤 곡부터 들어보면 좋으냐”는 식으로 귀결된다. 보통은 ‘아다지에토’가 포함된 ‘교향곡 제5번’이나 ‘교향곡 제1번’, 또는 비교적 부담이 덜한 ‘교향곡 제4번’ 등이 말러 입문작으로 거론되지만, 기회가 닿는다면 보다 본격적인 대작을 실연으로 만나는 것이 한결 나을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추천하고픈 작품이 ‘교향곡 제2번’이다.
말러의 교향곡들, 특히 초기 교향곡들은 종교 내지 철학과 관련된 주제의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중에서도 두 번째 교향곡에는 ‘부활’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데 이는 종악장에 나오는 합창의 텍스트로 클롭슈토크(18세기 독일 시인)의 ‘부활 찬가’가 사용된 데 기인한다. 그런데 부활이라는 단어는 다분히 기독교적인 뉘앙스를 지니고 있기에 자연스레 형이상학적 사유를 부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 단어를 들었을 때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것은 ‘예수의 부활’이기 때문이다.
물론 말러의 ‘부활 교향곡’도 종교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특히 종악장에서 ‘영생에 대한 신의 약속’과 그 약속에 기댄 인간의 ‘초월을 향한 의지’가 연주될 때 선명히 부각된다. 그러나 한편으로 ‘부활’이란 일상적 수사이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인간이란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죽음’과 ‘부활’을 반복하는 존재가 아니던가. 이 작품에서 말러는 바로 그런 인류 보편의 화두를 다루고자 했다.
한편으로 말러의 ‘부활 교향곡’은 1895년 발표 당시 ‘거대 교향악의 신기원’을 이룩했던 역작이다. 전체 다섯 개 악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연주시간은 통상 80여 분에 달하며, 금관 및 타악 파트가 크게 확장된 대편성 오케스트라에 더하여 두 명의 여성 독창자와 대규모 혼성 합창단이 연주에 참여한다. 이처럼 거대한 음악적 표현 매체를 가지고 말러는 위대한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을 계승했고 나아가 19세기 내내 외연의 확대와 내면의 심화를 거듭해온 ‘낭만적 교향악’의 극치를 추구했다.
그 결과물은 실로 거대하고 장엄하며 더없이 감동적이다. 첫 악장부터 말러 특유의 강렬한 음악표현과 드라마틱한 전개가 청자의 심신을 압박해오고, 다양한 양상으로 펼쳐지는 중간 악장들은 우리네 인생에 대한 고찰과 사유를 유도하며 경이로운 ‘부활의 합창’으로 끝맺는 피날레 악장은 청자의 정신과 영혼마저 뜨겁게 고양시키는 압도적인 감흥을 선사한다.
말러는 ‘부활 교향곡’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청중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악장별로 제목과 주석을 제공한 적이 있다. 비록 그 설명들은 (불필요한 오해를 유발한다는 이유로) 나중에 삭제되었지만, 이 거대하고 복잡한 교향곡에 다가서려는 이들에게는 매우 유용하다. 그 설명에 따르면 이 교향곡에는 모종의 드라마가 내재되어 있고 그 주인공은 일정 정도 말러 자신의 모습이 투영된 ‘영웅’이다.
사실 말러는 앞선 작품인 ‘교향곡 제1번’에서 이 주인공이 태어나고 성장하여 젊은 날의 풍파를 겪고 보다 넓은 세상으로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일종의 ‘성장 드라마’를 음악적으로 형상화한 바 있다. 이제 그 다음 교향곡에서는 그 영웅의 (다분히 상징적인) 죽음과 인생에 대한 보다 진지한 숙고, 그리고 부활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펼쳐진다.
제1악장은 ‘영웅의 죽음과 장례식’으로 인생이라는 전장에서 치열하게 투쟁하며 살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는 한때 승리를 맛보기도 하지만 결국 처절한 패배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음산한 장송곡이 울려 퍼지며 영웅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서 자신이 지나온 인생 여정을 차분히 되돌아본다. ‘이대로 죽을 것인가, 다시 일어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다.
먼저 제2악장에서 그는 ‘아름다웠던 지난날’을 동경하지만, 이미 흘러간 과거는 돌이킬 수 없다. 제3악장에서 그는 ‘악몽 같은 현실’과 마주한다. 온갖 모순과 허위, 부조리로 가득한 이 세상의 모습은 혐오감만 불러일으킬 따름이다. 제4악장에서 그는 ‘천국으로 향하는 넓은 길’로 나선다. 하지만 영원한 평안과 행복을 바라는 그의 앞에 천사가 나타나 그를 돌려세우고, 그는 다시 지상으로 떨어진다.
제5악장에서 그는 황야를 방랑하며 하염없이 ‘영원’을 갈망하지만, 다음 순간 무시무시한 ‘최후의 심판’의 환상이 눈앞에 펼쳐지며 그는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다. 바로 그때 천사들의 노래로 신의 메시지가 전해지고, 그는 ‘신의 약속’에 의지하여 마침내 ‘부활’을 결심한다. 결론적으로 ‘부활 교향곡’은 고단한 인생을 살아가며 수시로 꺾이고 쓰러지는 이 세상의 모든 이에게 용기와 희망으로 다가선다.
올해는 반갑게도 이 명작을 실연으로 접할 기회가 몇 차례 예정되어 있는데, 그중 오는 2월 15일 ‘예술의전당(서울) 전관개관 3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KBS교향악단이 독일의 거장 크리스토프 에셴바흐의 지휘로 펼칠 공연이 단연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