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미국 콜로라도주 오로라에서 총기 사고가 발생했다. 모두 12명이 사망했으며 이 중 연인을 위해 몸으로 총탄을 막은 세 청년의 이야기가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이 놀라운 선택은 이기적 인간에 대한 종전의 진화적 견해를 다시 돌아보게 했다.
최근 국내에 출간된 <블루프린트>는 “우리 유전자에는 좋은 사회를 위한 청사진(블루프린트)이 새겨져 있다”고 일관되게 주장한다. 인간은 서로 돕고 배우고 사랑하도록 프로그래밍돼 있다는 것이다. 도덕 교과서 같은 얘기 아니냐고 외면할 수 있지만 책은 720쪽에 걸쳐 심리학, 인류학 등을 넘나들며 각종 사례와 논거를 제시한다.
저자 니컬러스 A. 크리스타키스는 ‘통섭의 대가’로 불리는 사회학자이자 의사다. 통섭의 대가답게 그는 히말라야 소수 민족, 온라인 게임 이용자, 기생충, 개미와 고래, 유전자와 호르몬, 인공지능, 인간계, 기술계를 넘나들며 다양한 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를 최근 번역 출간된 책 <블루프린트>에 담았다. 저자는 인간이 부족주의, 폭력성, 이기심, 잔인함 같은 악한 감정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선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저자는 인간이 ‘사회성 모둠’이라는 공통 능력을 지녔다고 본다. 사회성 모둠은 개인 정체성, 짝과 자녀를 향한 사랑, 우정, 사회 연결망, 협력, 자기 집단 선호, 온건한 계층 구조, 사회 학습과 교육 등 여덟 가지 세부 특질로 나뉜다. 쉽게 말해 인간이란 사랑, 우정, 학습 능력, 나와 다른 개인들의 정체성을 알아차리는 능력을 갖췄고 이를 토대로 발전해왔다는 것이다.
유전자를 공유한 자식에 대한 애정은 유전적으로 완벽하게 타인인 배우자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지고, 이는 친구와의 우정으로 확대된다. 이런 감정은 동물 세계에도 존재하고 인간과 동물 사이에서도 발견된다.
개인의 정체성과 진화의 관계에 대해선 이렇게 설명한다. 유전적으로는 매우 동일한 핀란드 사람들이지만 각자의 얼굴만큼은 놀라우리만치 다양하다. 이는 구분을 위해서다. 이런 정체성 신호는 생존을 돕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황제펭귄, 돌고래 등 시각 신호로 구분이 어려운 동물들 역시 목소리, 몸짓 등으로 개체를 인지한다.
성 선택에 대한 설명도 재밌다. 바우어새는 흔히 집 짓는 새로 알려졌다. 하지만 저자는 이들의 짝짓기 과정을 ‘건축 행동’으로만 해석하는 건 수컷의 입장이며, 암컷의 까다로운 배우자 고르기가 공진화(상호 영향을 주며 진화하는 것)한 것이라 보는 게 합리적이라고 지적한다. 수컷이 아무리 집을 잘 지어도 암컷이 날아가 버리면 그뿐이다. 결국 성적 강압, 강제 교미를 회피하려는 암컷이 수컷의 진화를 조종했다는 것이다.
진화의 역사를 보면 결국 선한 것들이 이기며, 진화의 궤적은 선함을 향해 휘어져 있다고 강조한다. 또 인간이 서로 돕고 배우고, 사랑하는 능력, 좋은 사회를 만드는 보편적 특성을 지녔음을 과학적·역사적으로 규명한다. 공통된 인간성과 밝은 면이 인류 진화의 원동력으로 유전자에 프로그래밍됐다고 설명하고 인간과 사회에 대한 낙관적 시선을 드러낸다.
끈기 있게 버티는 것만이 성공의 덕목은 아니다. 인지과학 전문가인 애니 듀크는 “중요한 것은 언제 끈기를 가지고 계속해야 할지, 언제 그만두어야 할지 알고 결정하는 능력”이라고 말한다. 가치 없는 일은 빠르게 접고 더 가치가 있는 일에 한정된 자원인 시간, 돈, 노력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끈기는 어려운 일을 계속하게 만들 수 있지만, 불필요한 어려운 일까지 계속하게 만든다. 빨리 그만두고, 자주 그만두고, 가치 있는 일에만 끈기(GRIT)를 가져야 목표를 이룰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네 파트에 걸쳐 효과적인 ‘그만두기 기술’을 제시한다.
먼저 제때 그만두는 능력이 필요한 이유와 적절한 시기에 떠나는 법에 대해 조언한다. 떠나야 할 때의 신호를 읽고 폐기 기준을 정해 중단할 수 있는 법을 다루고, 그만두기를 방해하는 요인들을 극복하는 스킬도 공유한다. 마지막으로, 어쩔 수 없이 그만두게 될 때를 대비하는 전략과 이때 발견하는 새로운 기회들을 이야기한다.
발명가가 어떻게 재료를 빚었는지, 재료는 어떻게 인류의 문화를 형성했는지 살펴보는 책이다. 재료과학자이자 과학 커뮤니케이터인 아이니사 라미레즈는 물질과 인간이 서로의 형태를 만든다는 생각을 토대로 이를 탐구했다고 한다. 재료와 현대적인 사물의 탄생을 다루면서, 이것들이 어떻게 오늘날의 인류를 과거와 달리 세계를 인지하고 경험하며 살아가도록 했는지 풀어낸다.
저자는 책을 8장으로 나누어 각각 ‘교류하다, 연결하다, 전달하다, 포착하다, 보다, 공유하다, 발견하다, 생각하다’의 동사로 정리했다. 책에 따르면 “‘쿼츠’ 시계는 우리가 교류하게 했고, ‘강철’ 철도 레일은 연결하게 했고, ‘구리’ 통신케이블이 전하게 했고, ‘은’ 사진필름은 포착하게 했고, ‘탄소 ’ 전구 필라멘트는 보게 했고, ‘자기’ 하드디스크는 공유하게 했고, ‘유리’ 실험기구는 발견하게 했고, ‘실리콘’ 칩은 생각하게 했다”. 또 여타 과학도서에 소개되지 않은 무명 발명가의 이야기, 새로운 각도에서 본 유명한 발명가들의 이야기를 함께 담았다.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마리아 레사의 회고록이다. 36년간 언론인으로 일한 그는 CNN에서 기자 경력을 쌓았고, 2012년 필리핀에서 디지털 뉴스 웹사이트 레플러를 설립했다.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더 나은 국가 운영체제와 민주주의를 위한 커뮤니티를 구축하고자 했다.
레플러는 빠르게 성공했으나 5년 만에 정부의 표적이 되었는데, ‘인터넷의 무기화’라는 제목의 연속 기사가 나간 뒤였다. 두테르테 대통령이 벌인 ‘마약과의 전쟁’의 희생자들을 폭로하는 내용이었다. 이후 정부를 비판하는 이들에 대한 공격이 전례 없는 규모와 속도로 늘었고, 레플러는 이를 추적해 정보 작전의 전모를 공개한다.
저자는 이런 정보전이 필리핀뿐 아니라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하는 러시아,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가 조작되었다고 주장하는 캠페인까지 전 세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밝힌다. 민주주의를 당연시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을 썼다고 전하며, 기술 기업이 언론을 대체하는 시대, 정보 생태계가 뒤집힌 현재를 경고한다.
인공지능의 사회적 의미를 선도적으로 연구하는 저자 케이트 크로퍼드는 인공지능을 ‘추출 산업’이라고 말한다. 현대 AI 시스템을 창조하려면 지구의 에너지와 광물자원, 값싼 노동력, 대규모 데이터를 추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에서 지도학적 접근법을 통해 AI가 만들어지는 실제 과정을 자세히 보여주어 폭넓은 의미에서 들여다볼 수 있도록 돕는다. 책을 따라 광산의 갱도, 데이터 센터의 긴 통로, 두개골 보관소, 이미지 데이터베이스, 물류 창고 등을 둘러보며 AI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다. 인공지능을 지배하는 국가와 기업, 지구에 흉터를 남기는 추출식 채굴, 데이터 대량 수집, 불평등하고 착취적인 노동 관행 등을 설명한다.
저자는 AI가 ‘인공’적이지도 않고 ‘지능’도 아니며, 또 정치적 사회적 구조에 전적으로 의존한다고 주장한다. AI를 대규모로 구축할 자본과 AI를 최적화할 방법이 필요하기 때문에 AI 시스템은 궁극적으로 기득권에 유리하게 설계되는 것이다.
김병수·김유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