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9’은 기아의 플래그십 세단이다. 다시 말해 가장 비싸고 성능 좋은 모델이다. 그런데 이 차, “아는 사람만 안다”는 말이 나올 만큼 저평가됐다. 그도 그럴 게 2012년 처음 출시됐을 땐 현대차 ‘에쿠스’에 비교되더니 2015년 이후엔 ‘제네시스’의 도드라진 성장세에 만년 2인자 자리에 만족해야 했다. 물론 판매량도 마찬가지. 그런 이유로 완전변경과 부분 변경을 거치고 있지만 단종설도 끊이지 않는다. 여기서 잠깐, 이 차 정말 2인자에 만족하고 있을까. 연식변경 모델인 ‘The 2024 K9’에 올라 경기도 일대 약 250여㎞를 주행했다. 부드러운 가속과 감속, 조용한 실내가 인상적이었다.
2024년형으로 새롭게 출시된 K9은 라디에이터 그릴과 헤드라이트 모양이 달라졌다. 전면부 인상만 놓고 보면 살짝 웅장해졌다. 옵션으로 추가된 19인치 다크 스퍼터링 휠은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예상된다. 진중한 플래그십 세단을 선호한다면 블랙 컬러에 크롬 휠을 선호하지 않을까. 반면 다크 스퍼터링 휠은 좀 더 젊고 세련된 느낌이다. 헤드램프는 얇아졌고, 후면의 테일램프는 이전 대비 복잡한 그래픽으로 마무리됐다. 하지만 눈여겨보지 않으면 변화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미미하다. 물론 기능은 업그레이드됐다. 인적이 드문 길에서 상향등을 켜고 주행하다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차를 감지하면 차가 자동으로 부분 소등해 상대 운전자의 시야를 방해하지 않는다. 실내는 기아의 공력을 느낄 수 있을 만큼 고급스럽다. 시트나 대시보드, 기타 내부의 소재부터 에어컨 냄새를 없애는 ‘애프터 블로우’ 기능과 C타입의 USB, 차량용 소화기까지 선호도가 높은 사양을 기본으로 탑재했다. 특히 에르고 모션 시트가 동승석까지 적용돼 시트의 공기압 조절로 최적의 착좌감을 제공한다. 센터페시아에 적용된 14.5인치 디스플레이도 최근 트렌드를 담고 있다. 뒷좌석은 웬만한 쇼퍼드리븐 차량에 밀리지 않을 만큼 호화롭다. 벤츠 E클래스, BMW 5시리즈와 비슷한 가격에 S클래스의 사양을 갖추고 있지만 (아마도 조용한 실내를 위한 장치이겠으나) 도어를 힘껏 닫아야 제대로 닫힌다거나 뒷좌석 차창의 햇빛 가림막이 수동인 점 등은 아쉽다.
엔진 룸 중앙에는 K9의 심장, 3.3ℓ 가솔린 6기통 터보엔진과 변속기가 자리하고 있다. 최고출력 370마력, 최대토크 52.0㎏f·m의 힘을 내는 이 엔진은 제네시스 ‘G80’ 등에 얹히며 이미 인정받았다. 차는 액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 페달에 부드럽게 반응했다. 쉽게 말해 가속할 때 부드럽게 속도를 올렸고, 감속할 땐 더 부드럽게 속도를 줄였다. 이건 어쩌면 최대 장점 중 하나인데, 요철에서의 움직임이 적고 고속도로에서 풍절음이 거의 느껴지지 않아 플래그십 세단의 의미를 다시금 곱씹게 했다. 복합연비는 8.1~9㎞/ℓ. 시승코스 중 고속도로에선 10.5㎞/ℓ까지 오르더니 도심에선 6.5㎞/ℓ로 떨어졌다. 가격은 5933만~8685만원이다.
안재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