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4일 뉴욕 증시에서 미국의 전기차(EV) 스타트업 ‘리비안(Rivian Automotive)’의 주가가 전거래일보다 3.34% 하락하며 14.74달러를 기록했다. 이날 나스닥은 차주부터 나스닥100 종목에서 리비안을 제외한다고 발표했다. 100대 비금융 기업으로 구성된 나스닥 100은 세계 최대 규모의 대형 지수다. 나스닥은 나스닥 100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두 달 연속 0.1%에 미달하면 이 지수에서 제외한다.
최근 리비안의 주가가 장기간 10달러대에 머물며 비중이 미미하자 지수 제외라는 강수를 둔 것이다. 한때 테슬라의 대항마로 불리던 리비안의 부진에 글로벌 EV 스타트업에 대한 기대가 우려로 바뀌고 있다. 완성차업계에선 “팬데믹 시기에 확장적 재정정책으로 풀린 자금이 유입되며 투자를 유치했지만 생산력이나 기술력을 제대로 입증하지 못했다”는 혹평이 잇따르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137만 대를 생산한 테슬라에 비해 리비안은 2만 4337대, 루시드모터스는 7180대에 그쳤다. 블룸버그는 리비안에 대해 “차량을 생산하는 데 수입보다 지출이 높아 갈 길이 멀다”고 지적했다.
야심차게 출발했던 EV스타트업의 하락세에 상장 폐지나 파산 등의 우려 섞인 목소리도 들린다. 지난해 12월 메르세데스-벤츠와의 합작 투자 계획 중단 발표는 현재 리비안이 처한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리비안은 지난해 9월 메르세데스-벤츠의 폴란드 공장에서 상용 전기차를 공동 생산한다는 내용의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하지만 불과 3개월 후 이를 포기하기로 한 것이다. R. J. 스캐린지 리비안 CEO는 성명을 통해 “지금 시점에선 기존 비즈니스에 집중하는 게 단기적으로 리비안의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가장 매력적인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리비안이 자본시장 긴축과 경기 불확실성 속에 현금을 아끼고 사업 확장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리비안은 올 1분기 현금보유고도 전년 동기 대비 3% 감소했다. 지난 2월엔 비용 절감을 위해 약 6%(840여 명)의 직원을 해고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리비안의 연간 생산목표는 2만 5000대였지만 앞서 밝혔듯 달성하지 못했다. 올 1분기 생산량은 9395대로 전분기 대비 약 6% 줄었고, 판매량은 7946대로 전분기 대비 약 1% 감소했다. 2021년 11월 뉴욕 증시에 상장하며 한때 포드의 시가총액을 추월했던 리비안의 주가는 최고점 대비 약 80%나 추락했다. 포드는 2021년 말 11.4%였던 리비안 보유 지분을 올 2월 1.15%로 축소했다.
리비안과 함께 글로벌 EV스타트업의 선두주자로 손꼽히는 ‘루시드모터스(Lucid Motors)’도 현재 상황이 녹록지 않다. 지난해 생산량이 연간 생산량 목표치였던 7000대를 넘어섰지만 올 1분기 생산량이 2314대에 그치며 전분기 대비 34%나 쪼그라들었다. 피터 롤린슨 루시드 CEO는 언론을 통해 “고급 전기차에 대한 인식이 낮아 판매에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지만 업계에선 “전기차의 가격 하락이 원인”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지난 1월 테슬라가 주요 모델의 가격을 낮췄고 완성차 업체들도 이에 동참하며 EV 스타트업들이 수요 압박에 직면했다는 것이다. 루시드의 올 1분기 말 현금보유고는 전년 동기대비 48%나 감소했다. 구조조정을 위해 2분기 말까지 약 1300여 명의 직원을 해고할 방침이다. 전 직원의 약 18%에 해당하는 수치다.
지난 5월 첫 전기 SUV 오션(Ocean)을 출시한 ‘피스커(Fisker)’는 최근 내년 1분기까지 교체형 배터리를 장착한 오션을 선보이겠다고 발표했다. 에너지 관련 스타트업 ‘앰플(Ample)’과 제휴를 맺고 이미 공동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배터리가 방전되면 교환소를 방문해 배터리를 교체하는 방식이다. 배터리 충전시간에 대한 부담을 줄이는 영민한 전략이다. 하지만 피스커는 올해 오션의 생산 목표를 당초 계획했던 4만 2400대에서 3만 2000~3만 6000대로 낮췄다. 올 1분기 말 현금보유고도 전년 동기 대비 11% 감소했다.
수소전기차 업체 ‘니콜라(Nikola)’는 최근 상장 폐지 위기를 맞고 있다. 니콜라는 지난 5월 25일 나스닥으로부터 “최소 입찰 가격 요건을 준수하지 못하면 상장 폐지될 수도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 상장조건을 유지하려면 주가가 10일 연속 최소 1달러 이상을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지난 4월 12일 1달러 미만으로 떨어진 니콜라의 주가는 계속해서 1달러 미만에 머물고 있었다. 최근 투기세력이 몰려 1달러를 돌파하기도 했지만 니콜라가 상장 폐지 위기를 면하려면 올 11월 20일까지 10일 연속 1달러 이상을 기록해야 한다. 투자자들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니콜라는 지난해 ‘최소 300대 차량 인도’라는 목표 달성에 실패했고, 거시경제 불확실성을 이유로 새로운 목표치도 제시하지 않았다. 또 1분기 말 현금보유고가 전년 동기 대비 약 48%나 감소했다. 한때 니콜라 투자 사실이 알려지며 주목받았던 한화그룹도 최근 지분 전량을 처분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한화솔루션은 지난 5월 31일자 증권신고서에서 “증권신고서 제출일 현재 니콜라 잔여 주식 전체 매도를 완료한 상태”라며 “니콜라 지분 투자 관련 추가 리스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한화솔루션은 니콜라 지분을 매수했던 한화임팩트(옛 한화종합화학)를 자회사로 두고 있다. 2018년 11월 한화에너지와 한화임팩트는 수소 사업 확대 등을 노리고 미국에 설립한 법인 그린니콜라홀딩스를 통해 니콜라 지분 6.13%를 사들였다. 당시 투자액은 총 1억달러, 주당 매입 가격은 4.5달러였다. 수소트럭 생산 계획을 밝혔던 니콜라의 주가는 2020년 6월 70달러를 육박했으나 그해 9월 사기 논란이 불거지며 곤두박질쳤다. 니콜라의 창업자 트레버 밀턴은 완성되지 않은 기술로 투자자를 속인 혐의로 지난해 10월 사기죄 유죄 평결을 받았다.
전기픽업트럭 ‘인듀어런스’를 생산하는 ‘로즈타운모터스(Lordstown Motors)’는 심각한 재정난으로 파산이 점쳐지고 있다. CNBC에 따르면 로즈타운모터스는 최근 분기보고서를 통해 “지금까지 인듀어런스를 생산하기 위한 전략적 파트너를 찾지 못했다”며 “파트너를 찾지 못하면 인듀어런스의 생산이 가까운 미래에 중단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애플의 아이폰을 생산하는 대만 기업 폭스콘이 대규모 투자를 발표해 주목받은 로즈타운모터스는 이 투자 계획이 이행되지 않으며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 있다. 폭스콘은 지난해 5월 로즈타운모터스의 미국 오하이오주 공장을 인수하는 등 1억7000만달러의 대규모 투자에 합의했다. 하지만 로즈타운모터스의 주가가 30거래일 연속 1달러 미만에 그친 것이 투자조건에 위배된다며 5270만달러를 투자 집행한 후 추가 투자를 중단했다. 로즈타운모터스 측은 대주주인 폭스콘이 투자 계약을 위반했다며 파산 신청까지 검토하고 있다. 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보고서에는 “기업으로 존속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에 상당한 의구심이 있다”고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현재 순손실은 1억711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2배나 늘었다. 올 1분기 현금보유고는 1억810만달러. 전년 동기 대비 반 토막 수준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로즈타운모터스의 픽업트럭 인슈어런스의 판매량은 단 37대에 그쳤다. 그마저도 19대는 리콜된 것으로 나타났다.
야심차게 출발했던 글로벌 EV스타트업의 행보가 지지부진한 건 자동차 시장의 특성도 한몫하고 있다. 한 완성차 업체 임원은 “자동차는 생산 규모가 대규모로 늘어야 비용이 감소하는 산업”이라며 “대량생산이 불가능하면 수익으로 연결되지 못한다”고 말했다. 앞서 나열한 EV스타트업들이 양산에 돌입하지 못하거나 판매가 진행됐어도 수익으로 연결하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해 6월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EV 스타트업을 가리켜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이지 못하면 공동묘지에 있게 될 것”이라 말했던 것도 이러한 특성이 반영된 경고였다.
닷컴버블이 붕괴됐던 2000년대 초반, IT기업들이 겪었던 적자생존 과정을 겪게 될 거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미국의 CNBC는 “아마존과 이베이 등 IT기업들이 2000년대 초반 주가 급락을 겪었지만 기업 매출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었다”며 “위기에서 살아남은 기업들은 2001~2003년 흑자전환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CNBC는 “현재 EV스타트업의 주가 급락은 닷컴버블 붕괴 시기와 비슷한데 반면 미국과 중국의 전기차 시장은 성장세”라며 “전기차 업계의 성장이 둔화되는 것이지 역성장하진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안재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