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슨, 엔씨소프트, 카카오게임즈 등 국내 대표 게임사들이 게임 표절 논란을 두고 제각기 소송전에 나서고 있다. 세부적인 내용은 다르지만, 각사가 개발한 고유의 게임 지식재산권(IP)을 다른 회사에서 도용해 게임을 제작하는 등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것이다. 게임사들이 이처럼 표절 의혹에 대해 적극적으로 소송전에 나서는 이유는 음악 등 다른 문화 콘텐츠와 마찬가지로 자사의 IP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특히 게임사의 ‘잘 큰’ IP는 혼자서도 조 단위의 매출을 올리고 수년간 해당 게임사를 지탱해주는 존재라는 점에서 게임사가 반드시 지켜야 하는 존재다. ‘리니지’ IP를 통해 국내 대표 게임사 반열에 오른 엔씨소프트가 리니지의 형식을 차용했다는 의혹을 받는 게임을 대상으로 줄소송을 진행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올해 1분기에는 국내 게임사 간 법정 소송 선고기일이 연달아 이어졌다.
1월에는 엔씨소프트가 카카오게임즈와 그 자회사 엑스엘게임즈를 상대로 지난 2023년 제기했던 소송의 1심 선고가 났다. 결과는 엔씨소프트의 패배였다. 2023년 당시 엔씨소프트는 엑스엘게임즈가 출시한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아키에이지 워’가 엔씨소프트 게임인 ‘리니지2M’을 표절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엔씨소프트는 “‘아키에이지 워’에서 당사의 대표작 ‘리니지2M’(2019년 출시)의 콘텐츠와 시스템을 다수 모방했고, 장르적 유사성을 벗어나 엔씨소프트의 지식재산(IP)을 무단 도용하고 표절한 것으로 판단했다”라는 입장을 냈다. 실제로 당시 이용자 사이에서도 게임의 시스템이나 시각적인 이용자인터페이스(UI)의 유사도가 높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다만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63부는 엔씨소프트가 낸 이같은 저작권 침해 중지 등 청구 소송에 대해 원고 패소 판결하며 소송 비용은 원고인 엔씨소프트가 부담하도록 했다. 엔씨소프트는 이에 “상급 법원을 통해 다시 판단을 받아보겠다”라며 항소를 예고했다. 지난 2월 13일에는 넥슨과 게임사 아이언메이스 간의 소송 결과가 나왔다. 넥슨은 내부에서 추진하던 프로젝트 ‘P3’ 게임 개발 인력이 소스 코드를 유출해 아이언메이스로 이동하면서 게임 ‘다크 앤 다커’를 개발했다고 주장했다.
즉 사내에서 게임을 개발하다가, 퇴사 후 기존 프로젝트를 가져가 다른 곳에서 유사한 게임을 제작했다는 것이다. 법원은 이에 대해 아이언메이스가 넥슨의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았다고 판단하면서도 아이언메이스의 영업비밀 침해행위를 인정해 아이언메이스에게 넥슨에 영업비밀 침해 손해배상 85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처럼 원고인 넥슨의 원고일부승으로 결과가 났으며, 넥슨은 별개로 형사 소송 또한 진행하고 있다.
김경환 법무법인 민후 대표변호사는 “이전보다는 유사성 입증이 상대적으로 쉬워지면서 게임 소송이 다양하게 많이 생기고 있다”라며 “저작권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양상이 변한 것이다. 이제는 게임 내 똑같은 규칙이나 스토리 세계관 등으로도 유사성이 인정될 수 있다”라고 최근 분위기를 설명했다.
게임은 단일 저작물이 아닌 스토리 역할을 하는 시나리오부터 영상, 이미지, 캐릭터, 배경음악, 효과음, 소스코드 등이 결합되어 있는 종합 저작물이다. 게임 속 영상은 영상 저작물로, 배경 음악이나 삽입곡은 음악 저작물로 보호받는다. 각 구성 요소들이 기술적으로 구현되는 과정에서 조합되면서 다른 게임과 구별되는 창작적인 개성이 인정된다.
크게 보면 게임의 저작권 침해를 판단하는 기준은 그 작품만의 고유성을 침해했는지 여부다. 단순하게는 게임의 캐릭터 외형 등 아트워크를 도용하는 것부터 게임의 스토리나 규칙 설계 등의 유사성도 저작권에 해당된다. 다만 배틀로얄, 역할수행게임(RPG) 같은 게임의 장르 자체나 추상적인 아이디어 수준은 저작권이 인정되지 않는다. 아트 스타일이나 디자인, 스토리라인과 같이 표현된 게임 요소들이 중요하다.
이러한 게임 고유의 표현이 인정받은 대표적인 초기 사례는 많은 사람들이 아는 대중적인 게임 ‘팩맨’을 둘러싼 1982년의 소송전이다.
당시 필립스가 내놨던 게임 ‘K.C.먼치킨’이 아타리의 ‘팩맨’과 유사성이 높다는 의혹이 불거진 것인데, 해당 소송에서는 ‘팩맨’ 측의 아타리가 승소했다. 팩맨은 잘 알려져 있듯 이용자들이 게임 맵에서 팩맨을 조종하며 고스트를 피해 쿠키들을 먹어야 승리할 수 있는 아케이드 게임이다. ‘K.C.먼치킨’은 캐릭터 디자인부터 돌아다니며 쿠키를 먹는 방식, 미로 형태 등을 유사하게 차용했는데, 법원은 이같은 표현을 ‘팩맨’ 고유의 저작권으로 인정했다.
다만 이처럼 표현의 유사도가 높아 보이더라도 해당 표현이 특정 게임 장르의 일반적인 요소라면, 특정 게임의 고유 저작물이 아닌 전형적인 표현 형식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RPG 게임에서 게임 캐릭터의 체력을 표시하는 빨간색 막대 같은 경우는 특정 게임의 고유 요소가 아닌 일반적으로 RPG 게임에서 통용되는 형식이다. 앞서 엔씨소프트가 카카오게임즈와 엑스엘게임즈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패소한 것도 비슷한 사례다. 게이머 커뮤니티 사이에서 의혹이 제기됐던 근거 중 하나는 ‘아키에이지 워’의 환경설정 세부 항목이 ‘리니지 2M’과 거의 동일하다는 것이었는데, 이에 대해 재판부는 “(환경 설정이) 기능을 구현하는 데 수반되는 공통-전형적 표현형식에 불과하다”라고 판단했다.
어떤 산업이든 IP의 중요성이 크지만, 게임사의 경우 수백개의 개발작 중 하나만 크게 성공해도 기업을 떠받칠 수 있다는 점에서 IP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특히 게임사들의 대작 IP의 경우 최소 수백억 단위의 개발비를 5년 이상 쏟아부어 개발된 경우가 많다. 가령 크래프톤의 ‘배틀그라운드’나 라이엇게임즈의 ‘리그오브레전드’ 같은 게임들은 단일 IP로 전 세계 수억명의 이용자를 확보하며 시장에서 배타적인 지위를 확보했다. 이러한 경우 유사 게임의 출현이 원작 시장을 위협할 가능성도 있어 원작 게임사는 적극적으로 대응에 나설 수밖에 없다.
‘리니지 지키기’에 힘을 쏟는 엔씨소프트도 마찬가지다. 엔씨소프트는 1998년 처음 세상에 등장했던 ‘리니지’ IP가 20년 넘게 회사를 끌고 온 사례다. 물론 그 가운데 ‘아이온’과 같은 다른 히트작도 여럿 있었으나 엔씨소프트의 정체성을 이어오고 있는 것은 ‘리니지’다.
리니지는 국내 MMORPG의 포문을 열며 이후 하나의 장르 표준처럼 자리잡았다. 리니지의 성공 공식을 활용한 게임이자 리니지와 유사한 게임을 뜻하는 ‘리니지라이크’ 게임들도 숱하게 등장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엔씨소프트는 리니지와 유사한 게임들의 출현을 경계하면서 앞서 등장한 ‘아키에이지 워’ 사례 외에도 리니지와 유사하다는 의혹을 받는 게임들을 상대로 저작권 소송을 제기해 왔다.
엔씨소프트는 웹젠의 ‘R2M’ 게임이 자사의 ‘리니지M’을 모방했다는 이유로 웹젠과 소송한 바 있다. 해당 소송에서는 웹젠의 부정 경쟁 방지법 위반 혐의 등이 인정되며 1심에서 엔씨소프트가 승소했으며, 2심 결과는 3월에 나올 예정이다.
이러한 소송은 두 게임사뿐만 아니라 게임업계 전반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만약 저작권 소송을 제기한 원고 측에서 승소하게 될 경우, 원고 측의 게임과 같은 장르의 유사한 게임들의 출시가 지연될 수 있는 반면, 만약 패소할 경우 유사 장르 출시가 반대로 활발해질 수 있다.
이러한 양상은 한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글로벌 게임사인 일본의 닌텐도는 지난해 9월 일본의 인디게임 개발사인 ‘포켓페어’를 상대로 특허권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포켓페어가 지난해 출시했던 게임 ‘팰월드’가 닌텐도의 ‘포켓몬스터’와 유사성 논란을 빚었는데, 이에 대해 닌텐도가 법적인 대응에 나선 것이다. 당시 닌텐도는 “이번 소송은 피고가 개발 및 출시한 게임인 팰월드가 복수의 특허권을 침해하고 있기에 침해 금지 명령 및 손해 배상을 구하는 소송”이라며 소송 이유를 설명했다. 팰월드는 게이머가 게임 속 몬스터인 ‘팰’을 직접 포획하고 키우면서 함께 사냥에 나서기도 하는 등 세계를 탐험하는 오픈월드 장르다. 팰월드는 출시 직후 게임 플랫폼 스팀에서 동시 접속자 수 200만명을 돌파하는 등 흥행에 성공했다. 다만 이 과정에서 팰월드의 캐릭터 ‘팰’ 등이 포켓몬스터의 IP를 표절했다는 지적이 일각에서 제기된 바 있다.
포켓페어에 따르면 닌텐도는 아이템을 던져 몬스터를 포획하는 ‘몬스터 포획 방식’ 등 세 가지 특허를 포켓패어가 침해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닌텐도가 특허권 침해에 대해 청구한 것은 게임 팰월드 중단과 금액 1000만엔(약 9500만원)이다. 특히 팰월드가 이미 지난해 1월 시장에 나와 인기를 끌었다는 점을 미루어볼 때 금액 자체는 매우 낮은 편이다.
법적인 측면 외에도 게임 간 저작권 침해에 대해 게임 이용자들의 저작권 의식도 높아지고 있다. 어떤 게임과 유사한 게임이 등장했을 때 이용자들이 직접나서 의혹을 제기하거나 비판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발생한 게임 ‘블루아카이브’에 대한 모방 의혹이었다. 국내 대표적인 서브컬처 게임 중 하나인 ‘블루아카이브’는 넥슨게임즈에서 개발한 작품이다. 해당 작품 제작에 참여했던 일부 핵심 개발진은 넥슨게임즈 퇴사 후 ‘디나미스 원’이라는 회사를 창업했는데, 디나미스 원에서 ‘블루아카이브’와 유사한 콘셉트의 신작 ‘프로젝트 KV’를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이 시작됐다. ‘프로젝트 KV’의 주요 캐릭터 등 게임 세계관과 스토리가 담긴 상세 정보가 공개되자 전체적인 콘셉트와 디자인이 ‘블루아카이브’와 지나치게 유사하다라는 지적이 게임 이용자 커뮤니티에서 쏟아졌다. 이러한 역풍 속에 디나미스 원은 “저희의 미숙함이 여러분께 더 이상 상처와 불편을 드리지 않도록 프로젝트 KV를 중단하는 결정을 내리게 됐다”라며 결국 해당 프로젝트를 접었다. 디나미스 원의 사례처럼 출시된 작품뿐만 아니라 개발 중인 프로젝트 단계에서도 여전히 저작권 관련 논란 등은 게임업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게임 저작권을 침해하는 행위는 매우 위험한 것이고, 산업 전체에도 피해를 준다”라고 설명했다.
[정호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