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세기의 라이벌이라 불렸던 빅테크 기업들이 치열한 시장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적과의 동침’을 택하고 있다. 급변하는 시장 트렌드 가운데 시장 영향력을 키우기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이 기술혁신과 시장 확장이란 두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IT업계의 쌍두마차인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은 20년 동안 검색엔진, 클라우딩 컴퓨터, 생산성 소프트웨어 분야서 맞붙어온 세기의 라이벌이다. 그러나 두 기업은 최근 AI 연구와 클라우드 서비스 분야에서 협력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양사는 AI 개발을 위해 상호 연구개발을 공유하고 있으며, 구글 클라우드 인프라에서 마이크로소프트의 클라우드 서비스인 애저(Azure)를 이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며 상생을 택했다.
순다 피차이 구글 CEO는 “협력 없이는 지속적인 혁신이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마이크로소프트와의 협업은 AI 기술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 역시 “과거의 경쟁을 뒤로하고, 기술의 진보를 위해 구글과 손을 잡는 것이 더 큰 성과를 이룰 수 있는 길”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한발 더 나아가 AI 분야 핵심기업인 오픈AI와의 동맹관계도 단단히 구축 중이다. 과거 100만달러를 오픈AI에 투자했던 마이크로소프트는 최근 대규모 투자유치에 합류하며 다시 한번 오픈AI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바 있다. 사실상 모든 빅테크 기업들이 AI 기술 경쟁력 확보를 위해 치열한 기술 경쟁을 펼치는 가운데 마이크로소프트는 직접 개발과 함께 AI 붐의 진원지라 불리는 오픈AI 기술을 대거 도입하고 있는 셈이다.
스마트 스피커와 스트리밍 서비스 등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경쟁관계를 유지해온 애플과 아마존 역시 스마트홈 생태계 구축이란 공통목표 아래 협력을 추진 중이다. 애플의 음성 비서 서비스 ‘시리’와 아마존의 ‘알렉사’는 향후 서로 연동되는 형태로 구현될 예정이다. 사용자는 두 플랫폼 간 호환성을 높여 스마트폰 기기를 편하게 제어할 수 있도록 양측의 경계를 무너트리고 있다. 이들이 힘을 합치는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구글의 스마트홈 서비스 ‘네스트’ 제품이 큰 인기를 끌면서 후발주자인 애플과 아마존이 협력해 해당 시장 점유율을 가져오겠단 것. 애플의 팀 쿡 CEO는 “사용자 경험 향상을 위해 아마존과의 협력이 필요했다”며 “서로의 강점을 활용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평가했다.
PC 시대의 성장과 함께 라이벌 구도를 구축한 미국 반도체 기업 인텔과 AMD의 동맹도 눈에 띈다.
인텔과 AMD는 오랜 기간 동안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 관계를 유지해왔다. 각각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설립된 두 회사는 1980년대부터 본격적인 진검승부를 펼쳤다. 인텔은 PC 시장의 절대적인 지배자로 자리잡았고 AMD는 주로 가성비 높은 대안으로 시장에서 입지를 구축했다.
물론 경쟁 구도 속에서도 양사는 때때로 협력하여 기술 발전을 도모하기도 했다. 2017년 인텔이 자사의 고성능 프로세서에 AMD의 Radeon 그래픽 기술을 통합한 제품을 출시하여 시장의 주목을 받은 것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협력은 양사에게 새로운 기회를 가져다 줬다.
특히 PC시장이 지고 모바일 시대가 열리며 PC 반도체 기업들의 위기는 곧바로 시작됐다. 또한 그래픽카드 개발사 엔비디아가 AI붐을 타고 전세계 1위 반도체 기업으로 두각을 나타낸 반면 인텔과 AMD는 여전히 AI 반도체칩 시장에서 자리잡지 못하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태다. 이에 양사는 최근 CPU 설계 기술 표준인 ‘x86’ 아키텍처 자문그룹을 공동으로 결성하며 모바일 칩 개발사 암(ARM)과의 치열한 경쟁을 예고했다. 모바일 칩 전문 설계기업인 암은 모바일 시장 확대에 힘입어 인텔과 AMD를 위협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에 라이벌이던 두 기업이 동맹 관계를 맺고 공동 대응에 나선 셈이다. 이처럼 인텔과 AMD는 각자의 기술력과 시장 전략을 바탕으로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동시에, 특정 분야에서는 기술 협력을 통해 산업 전체의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기술경쟁이 치열한 자동차업계서도 합종연횡이 활발하다. 현대자동차와 미국의 제너럴 모터스(GM)는 자동차 산업 내에서 각각 뚜렷한 입지를 확보한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다. 당연히 자동차업계 경쟁사인 양사는 특히 전기차 및 자율 주행 기술 분야에서 협력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이 배경에는 막대한 투자비와 그에 따른 리스크가 있다.
최근 몇 년간 전 세계적으로 친환경 자동차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현대차와 GM은 전기차 및 관련 기술 개발에 막대한 투자를 진행했다. 양사는 기술 및 자원 공유를 통해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는 협력 기회를 탐색 중이다.GM이 보유한 얼티엄 배터리 기술과 현대차의 전기차 생산 노하우가 결합하면 양사 모두 전기차 시장에서 앞선 경쟁력을 뽐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자율 주행 기술 분야에서도 협력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GM은 자율 주행 기술 회사인 크루즈 오토메이션을 자회사로 두고 있다. 현대차도 자율 주행 소프트웨어 회사인 앱티브와의 합작 법인을 통해 이 분야에서 선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양사가 기술 협력을 통해 상호 기술 개발을 가속화하고, 자율 주행 분야에서의 성과를 공동으로 도모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수 있다.
현대차와 GM의 이러한 협력은 각사의 기술적 강점을 결합하여 자동차 산업의 새로운 트렌드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겠단 의도로 풀이된다. 향후 양사 간 협력이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업계의 주목도는 커지고 있는 상태다.
전통적인 라이벌들이 서로 힘을 합치는 것은 비단 빅테크 기업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스트리밍 시장에서 글로벌 1,2위를 다투고 있는 넷플릭스와 디즈니는 공격적인 마케팅과 천문학적 숫자의 투자를 통해 시장 장악을 위한 전면전을 펼친 바 있다. 하지만 양사의 화해모드가 관측되며 관계 변화가 눈에 띄는 상태다. 한때 콘텐츠 라이선스를 놓고 법정 분쟁까지 갔던 두 회사는 최근 콘텐츠 공동 제작에 합의하며 해빙 분위기를 조성 중이다. 특히 넷플릭스는 디즈니의 인기 지적재산권(IP)를 활용한 독점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권한을 얻었다. 또 디즈니는 이를 통해 자사 OTT 서비스인 디즈니+와의 시너지를 높였다.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CEO는 “과거의 갈등은 잊고, 사용자들에게 더 나은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가 되었다”며 “디즈니와의 협력은 스트리밍 시장에서 양측 모두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폐쇄형 정책은 애플 제품 사용자에게는 최적화된 사용자 경험과 보안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시장에서의 경쟁 제한, 혁신의 저해, 소비자 선택권 제한 등의 비판을 받기도 한다.
애플은 자사의 기기에서 제3자 앱 스토어의 사용이나 기본 애플리케이션 변경을 허용하지 않음으로써, 사용자가 애플이 정한 방식으로만 제품을 사용하도록 강제한다. 이로 인해 일부 국가에서는 애플의 폐쇄형 정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유럽연합(EU) 등은 디지털 시장의 공정한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기술 거대 기업들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법안을 추진 중이다. 애플의 폐쇄형 정책은 특유의 사용자 경험과 높은 보안을 제공하며 많은 소비자에게 호응을 얻고 있지만, 시장 경쟁과 혁신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지속적인 논의와 평가가 요구되고 있다.
빅테크기업 간 협력 사례들이 늘어나는 배경에는 글로벌 시장의 포화 상태와 규제 당국의 강화된 감독이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빅테크 기업들이 서로 경쟁만으로는 성장 한계에 봉착하자 협력을 통해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는 것이다.
무엇보다 강력한 기술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이 힘을 합칠 경우 기술 혁신 및 개발 속도가 크게 향상될 수밖에 없다. 기술의 복잡성으로 인해 개발 비용이 급증하고 있는 만큼 여러 기업이 자원과 전문 지식을 공유함으로써 보다 효율적으로 신기술을 개발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시장 접근성을 향상시키고 신시장을 개척하는 데도 큰 이점이 있다. 각자의 영역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기업들이 협력함으로써 신규시장에 보다 쉽게 진입할 수 있고 광범위한 고객층에게 자신들의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기회를 확대할 수 있다.
이와 별개로 미국과 EU 등에서 시장 독점에 대한 강한 규제 분위기가 조성된 만큼 기업들은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경쟁사와의 협력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이는 단순한 사업적 결정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성장 전략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구체적으로 규제 리스크를 관리하고 법적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협력하기도 한다. 빅테크 기업들은 각국의 규제 환경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엄격해짐에 따라 공동으로 로비 활동을 하거나 표준화 기구에서 공동의 목소리를 낸다. 이를 통해 보다 유리한 규제 환경을 조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첨단산업기술일수록 기술 표준을 설정하고 산업 전반의 변화를 주도하기 위한 협력도 눈에 띈다. 5G 통신 기술과 같은 새로운 기술 표준을 개발할 때 여러 기업이 협력하여 기술 호환성을 보장하고, 산업 표준을 설정할 경우 서로의 비용을 절감하면서 전체 생태계의 발전을 가져오기도 한다. 이처럼 빅테크 기업들의 협력은 단순히 경쟁 관계를 넘어서서, 복잡한 글로벌 시장에서 생존하고 성장하기 위한 필수 전략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협력은 기업들은 상호 윈윈할 수 있는 결과를 도출함과 동시에 산업 전반의 혁신을 가속화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추동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