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세아그룹의 역사는 30여 년 전 시작됐다. 창업주 김웅기 회장이 36살이던 1986년 그룹 모태인 세아상역(옛 세아교역)을 설립했다. 세아상역은 의류 OEM 업체로 국내외 패션 브랜드로부터 일감을 수주받아 의류를 생산, 납품하는 사업을 전개했다.
1980년대 당시 의류 제조업계에서 OEM 방식으로 의류를 생산하는 업체는 거의 없었다. 있더라도 소규모 생산에 그쳤을 뿐 대규모 생산은 꿈도 꾸지 못하던 시기였다. 김 회장은 섬유업체인 대봉산업과 충남방적에서 근무하던 시절 OEM 방식의 대규모 생산을 고안한 뒤 세아상역을 창업했다.
세아상역은 업계 최초로 ODM 방식을 도입한 회사이기도 하다. 김 회장은 바이어로부터 오더를 따내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자체 고안한 디자인 제품을 거꾸로 고객사에 제안했다. 그 덕분에 세아상역은 의류 ODM 시장을 선점할 수 있었다.
또한 선도적으로 해외 생산기지를 수직계열화한 업체다. 전 세계 곳곳에 OEM, ODM 공장을 세운 데 이어 인도네시아엔 원단 생산 회사를, 코스타리카엔 원사 생산 업체를 설립했다. 원사에서부터 원단, 봉제, 포장까지 의류생산 전 과정을 책임질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김웅기 회장은 이후 다각화를 통해 사세를 빠르게 키워나갔다.
지금의 글로벌세아그룹을 있게 한 건 모태이자 핵심 계열사인 세아상역이다. 그룹은 세아상역의 우수한 현금 창출력을 활용해 M&A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2007년 인디에프 인수를 통해 패션사업에 뛰어들었고 2018년엔 세아STX엔테크 편입으로 플랜트사업에 진출했다.
2020년엔 태림포장과 태림페이퍼를 품에 안으며 제지·포장사업에, 2021년 발맥스기술 편입을 통해 친환경 수소에너지사업에 진출했다. 지난해에는 약 2500억원을 들여 쌍용건설을 인수하며 지금은 10여 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대기업 그룹으로 성장했다.
지난 2007년 그룹 매출 1조원을 달성한 이후 13년 만인 2020년 3조원을 돌파했고, 오는 2025년에는 연매출 10조원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글로벌세아가 M&A 시장 큰손으로 자리잡은 배경에는 세아상역이 있다. 세아상역은 최근 5년간 매년 2조원 규모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2015년 물적분할 이후 매출액은 2016년 1조6217억원, 2017년 1조7224억원, 2018년 1조7658억원, 2019년 1조7969억원으로 매년 증가했다. 이듬해부터는 2조원을 돌파해 2020년 2조246억원, 2021년 2조134억원, 2022년 2조3397억원을 기록했다.
영업 창출력 역시 뛰어나다. 2017년 전년 대비 44% 감소한 411억원을 기록하며 잠시 주춤했지만 2018년 886억원, 2019년 971억원, 2020년 1835억원, 2021년 1418억원, 2022년 1769억원으로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
글로벌세아그룹은 글로벌세아를 정점으로 하는 지주회사 체제를 갖추고 있다. 세아상역 등 주요 계열사들이 모두 지주사의 지배를 받는다. 세아상역은 자회사와 손자회사 등으로 태림페이퍼, 태림판지, 태림포장, 동원페이퍼(대표 이복진), 동림로지스틱(대표 이복진) 등을 거느리고 있다. 세아상역은 글로벌세아와 세 딸들이 각각 61.94%, 38.06%로 지분을 100% 가지고 있다. 비상장사인 글로벌세아는 김 회장이 84.8%로 최대주주다. 김 회장 부인인 김수남 세아재단 이사장(67)이 12.36%, 장녀 김세연씨(42), 차녀 김진아 글로벌세아 부사장(40)이 각각 0.59%씩 가지고 있다. 김세연 씨는 현재 미국에서 거주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글로벌세아의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지주사 지분율은 98.34%에 이른다. 나머지 지분 1.66%도 자기주식으로 사실상 오너일가가 지배력을 100% 행사한다.
김웅기 회장이 여전히 경영일선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지만, 2세 경영도 차근차근 준비하는 모양새다. 창업주 김웅기 회장의 딸 가운데 회사 경영에 관여하고 있는 건 차녀 김진아 부사장이다. 김 부사장은 1984년생으로 그룹 지주사회사격인 글로벌세아뿐 아니라 세아상역 이사회에서 사내이사를 맡고 있다. 글로벌세아에서는 2015년 10월 사내이사에 취임해 전략기획실을 총괄하고 있다. 지난해 1월부터는 세아상역 사내이사로서 직접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지주사에 이어 세아상역에도 사내이사로 선임되자 ‘차녀인 김 부사장이 가장 유력한 후계자’라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앞서 세아상역의 높은 현금 창출력은 그룹 경영에 큰 도움이 됐다. 하지만 여러 인수합병의 부담을 세아상역이 모두 지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실제 지주사인 글로벌세아의 부채가 급격히 늘고 있다. 세아상역이 글로벌세아에 빌려준 돈은 2020년 767억6946만원, 2021년 810억7980만원, 2022년 852억4302만원으로 매년 조금씩 증가했다. 올 들어선 1470억2200만원까지 늘어났다. 1년도 안 돼 차입금이 72.47% 불어난 셈이다. 아울러 글로벌세아가 또 다른 자회사인 동원페이퍼로부터 차입한 자금도 2022년 100억원에서 올해 8월 기준 200억원으로 2배 증가했다.
증권가의 한 관계자는 “글로벌세아가 적극적인 인수합병에 나서면서, 계열사를 포함한 외부에서 빌린 차입금이 늘어난 것”이라며 “피인수 기업의 실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전체적인 현금 흐름이 나빠지는 추세”라고 지적했다.
실제 글로벌세아의 당기순이익(별도기준)은 2021년 500억3594만원에서 2022년 56억5306만원으로 감소했다. 글로벌세아그룹의 18개 계열사 중 지난해 순손실을 기록한 업체는 8곳, 이 중 세아STX엔테크, 세아 ESG인베스트먼트는 자본잠식에 빠졌고, 에스앤에이(3212.59%), 에스투에이(1만260.6%), 태범(1378.5%), 아본데일 인베스트먼트(2347.81%) 등은 1000% 이상의 부채비율을 기록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세아상역이 그룹을 위해 지고 있는 재무 부담도 눈덩이처럼 커졌다.
세아상역의 장단기 대여금 규모는 2021년에는 1523억원 수준이었지만 지난해엔 2939억원으로 1416억원 증가했다.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1%에서 17.3%로 6.3%p 상승했다.
대여금 대부분은 특수관계자에게 지급됐다. 지난해 특수관계자 거래 내역을 살펴보면 글로벌세아에 빌려준 자금 규모만 1113억원에 달한다. 글로벌세아는 글로벌세아 그룹의 지주사이자 지배기업이다. 이 외에도 글로벌세아의 종속기업에 130억원가량을 단기 대여해 줬다. 장기대여금 규모도 340억원이다.
특히 세아상역이 특수관계자에게 제공하고 있는 장단기 대여금을 합하면 3300억원으로 추산된다.
업계 일부에선 글로벌세아그룹의 본업인 섬유·패션과는 전혀 다른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들을 사들이면서 시너지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올 들어서 전주페이퍼, HMM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물러선 점도 이런 사정과 무관치 않다.
미국발(發) 금리 인상, 코로나19 후폭풍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원자재 가격 급등 등에 따른 글로벌 경기 침체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글로벌세아그룹의 이 같은 행보에 제동이 걸린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다만 올 상반기 쌍용건설이 377억원의 흑자를 기록하는 등 일부 계열사들의 실적이 상승곡선을 그리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쌍용건설은 지난해 순손실 547억원을 기록했다.
세아상역의 한 관계자는 “세아상역이 그룹의 모태다 보니 계열사 지원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결국 쌍용건설이나 STX엔테크 등 피인수 기업들의 실적이 좋아지는 게 관건”이라 설명했다.
[김병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