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가 14년 만에 혼합현실(MR) 기기로 중국 시장 재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메타는 지난 2009년 중국 당국이 메타(옛 페이스북) 접속을 전격 차단한 뒤 중국 사업을 사실상 접었다.
세계 최대 정보기술(IT) 시장 중 한 곳인 중국 시장에서 메타가 MR 판매에 나설 경우, MR의 대중화 시점이 더 빨라질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메타를 비롯해 애플, 삼성, 구글 등 빅테크가 모두 MR기술에 관심을 가지고 관련 생태계 조성을 시작하면서 내년도 MR 시장이 본격적으로 꽃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11월 9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메타 플랫폼이 중국 텐센트 홀딩스와 가격이 저렴한 ‘보급형 MR’ 헤드셋 기기를 판매하기 위한 예비 계약을 체결했다고 보도했다. 시장에서는 메타는 MR 헤드셋 기기 판매 매출을 올리고, 텐센트는 소프트웨어와 가상현실(VR) 게임 판매 등 콘텐츠와 서비스 부문에서 더 많은 매출을 올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텐센트는 메타의 MR 헤드셋 기기에 대한 중국 독점 판매권을 확보한 상태다. 두 회사는 향후 1년 간 협상을 통해 최종 계약을 체결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텐센트는 내년 말부터 본격적으로 메타 VR 헤드셋을 중국에서 판매할 것으로 보인다. WSJ에 따르면 중국 버전의 VR 헤드셋에는 메타가 출시한 최신 VR 헤드셋 ‘퀘스트3’보다 저렴한 렌즈가 장착될 계획이다.
MR 시장은 스마트폰에 이어 차세대 ‘킬러 디바이스(기기)’로 각광받고 있다. 이제 막 태동하는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빅테크 경쟁에도 불이 붙는 모양새다.
애플은 내년 출시할 예정인 MR 기기 ‘비전프로’를 앞세워 시장 선점을 예고한 상태다. 메타는 최신형 MR 기기를 공개하며 맞불을 놨다.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고 용어 정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설익었다’고 MR 시장을 평가하던 테크 업계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메타버스 유행’과 함께 주목받은 MR 시장은 재택근무 종료와 경기 침체, 생성형 인공지능(AI)의 부상 등으로 한동안 침체기를 걸었다. 일부 기업은 비수익 부문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하드웨어(MR 기기)와 소프트웨어(메타버스·콘텐츠) 사업을 축소했다.
하지만 애플의 MR 진출과 메타의 반격으로 판이 새롭게 짜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애플 전문 분석가인 궈밍치 TF증권 애널리스트는 “현재로서는 증강현실(AR)·가상현실(VR) 헤드셋이 가까운 미래에 소비자 가전 분야의 차세대 스타 제품이 될 수 있다는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면서도 “하지만 애플의 시장 진입(비전프로 출시)은 투자자들에게 AR·MR 헤드셋에 대한 믿음을 실어주는 희망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먼저 시장의 관심은 메타가 지난 9월 연례 행사 ‘커넥트2023’에서 공개한 MR 기기 ‘메타 퀘스트3’에 모인다. 전작 대비 부피를 40% 이상 줄였고, 그래픽 처리 성능은 2배 이상 향상한 제품이다. 퀘스트3는 애플의 비전프로와 경쟁할 모델이다.
시장조사 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메타는 관련 시장에서 49%의 점유율(올해 1분기 기준)을 확보하며 시장의 절대강자로 군림해왔다. 하지만 규모는 크지 않다. 메타의 헤드셋 부문인 리얼리티랩스의 지난해 매출은 22억7000만달러(약 3조원)에 그쳤다.
MR 시장의 파이를 키우고 시장을 장악하겠다는 목적은 같지만 구체적인 전략에서 애플과 메타의 전략은 상이하다는 분석이다. 내년 1분기 일반 판매가 시작되는 애플의 비전프로는 가격이 3499달러로 메타 퀘스트3(499달러) 대비 7배에 달한다. 애플은 비전프로에 최고 수준의 해상도인 마이크로LED를 장착했고, 맥북에 들어가는 M2칩과 XR 기기 전용인 R1칩 등 고가의 반도체를 사용했다. 반면 메타 퀘스트3는 상대적으로 낮은 해상도의 LCD를 사용하고, 퀄컴의 최신형 XR 전용 반도체인 스냅드래곤 XR 2세대를 장착해 성능보다는 소비자 접근성에 무게를 뒀다.
애플과 메타를 비롯해 삼성, 구글 등이 본격적으로 MR시장에 뛰어들자 VR 게임을 개발해왔던 국내 게임사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과거 하드웨어가 받쳐주지 않아 대중화에 사실상 실패한 VR 게임 시장이 기지개를 켤 가능성이 있다. 다수의 국내 게임사들은 애플 비전프로 출시를 유의 깊게 살펴보면서 관련 게임 개발 및 기획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메타는 게임 업체와의 파트너십을 확대하고 있다. 앞서 국내 게임 업체 컴투스는 메타의 오프라인 쇼케이스에서 VR 게임 ‘다크스워드: 배틀이터니티’를 선보였다.
업계에서는 스마트폰과 유사하게 MR 시장의 수익성은 ‘생태계’가 좌우할 것으로 전망한다. 애플, 메타, 구글, 삼성 등 빅테크가 본격적인 시장 진입에 앞서 관련 콘텐츠 확보와 파트너 협력 등 촘촘한 생태계 조성을 고민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생태계 구축 방식에서 ‘빅2’ 애플과 메타는 차이를 보인다. 애플은 비전프로의 생태계 확장에 있어 폐쇄적인 방식을 고수할 전망이다. 애플 생태계에 발을 내딛고 어지간해서는 빠져나오지 않는 충성 고객을 확보하는 전형적인 ‘애플식’ 전략으로 풀이된다. 폐쇄적인 애플 생태계에 사용자를 록인(Lock-in)시켜 생태계를 공고히 하고 이들이 지속해서 애플 하드웨어를 구매하도록 유도해 하드웨어 경쟁력을 지속해서 강화하는 방식이다. 이는 디바이스의 강력한 제품 경쟁력이 뒷받침돼야 가능하다. 앞서 애플은 스마트폰-아이패드-애플워치 등 다양한 디바이스를 통해 이 같은 성공 방정식을 입증한 바 있다. 반면 애플에 맞서는 메타는 개방적인 생태계를 추구하고 있다. ‘페이스북’이 그러했듯 게임과 소셜을 통해 사용자들을 연결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두고 있기 때문이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는 퀘스트3를 공개한 커넥트 2023에서 “메타 퀘스트3는 누구나 접근 가능한 최초의 주류 MR 기기가 될 것”이라면서 “메타는 사람들을 연결시키는 것에 계속 집중할 것”이라고 했다. 메타는 오는 12월부터 마이크로소프트(MS)의 엑스박스 게임을 퀘스트3에서 제공할 방침이다. 로블록스 같은 메타버스 플랫폼과도 협력하고 있다.
애플과 메타가 선두에서 MR 시장을 달궈놓고 있다면 삼성, 구글 등 스마트폰 업계의 ‘빅플레이어’는 시장을 관망하면서 본격적인 진입 시점을 가늠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애플의 참전으로 시장이 빠르게 확대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메타는 물론 삼성, 구글 등도 전면적인 MR전략 수정에 나선 것으로 파악된다.
삼성전자는 지난 2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된 ‘갤럭시 언팩 2023’에서 구글, 퀄컴과 차세대 확장현실(XR) 헤드셋을 공동 개발하겠다고 선언했다.
삼성전자는 구글과 손잡고 이르면 올해 XR 기기를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또 삼성전자는 XR 헤드셋 개발 목표를 애플의 비전프로급으로 상향 조정하며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당초 범용 헤드셋인 메타의 ‘퀘스트’를 겨냥해 신제품 개발을 추진했지만, 애플이 최첨단 제품을 공개하자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애플과 정면 승부하는 쪽으로 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첨단 헤드셋 개발에서 LG전자는 메타와 손을 잡았다.
애플은 비전프로를 공개하면서 ‘메타버스’라는 거창한 표현 대신 ‘공간 컴퓨팅’이라는 단어를 선택했다. 비전프로는 주변과 모든 사물을 볼 수 있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헤드셋을 착용하고 손가락을 움직이거나 눈동자를 움직이는 방식으로 모든 앱을 조작할 수 있다.
애플이 구상하는 3차원 생태계 성공의 관건은 킬러 콘텐츠 확보다. 실제로 애플은 생태계 확장을 위해 비전프로 출시를 서두르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용 앱 출시와 생태계 확장을 위해 개발자와 콘텐츠 제작자들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는 전략이다.
비전프로 생태계 성공의 핵심은 ‘문화 콘텐츠’라는 분석도 있다. 스포츠, 게임, 음악(공연), 예술 등이 대표적이다. 이와 관련해 애플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인 애플TV+를 통해 올해부터 2032년까지 미국프로축구(MLS) 중계권을 확보했다. MLS에는 세계 최고의 축구 스타 리오넬 메시가 지난 8월 합류했다.
황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