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반도체 업계가 ‘가시밭길’을 걷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은 올해 2분기 역대 최악 수준의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 부문은 4조원대 적자를 냈고, SK하이닉스는 3조원 상당 손실을 냈다. 업계의 관심사는 ‘언제 시장이 반등할까’에 쏠려 있다. “바닥은 지났다”는 평가 속에서 업계의 적극적인 감산과 경기 회복으로 인한 반도체 수요 증가 등이 관건이다.
삼성전자의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은 6000억원에 그쳤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1분기(5900억원) 이후 14년 만에 가장 저조한 성적표다. 삼성전자는 지난 7월 올해 2분기에 매출 60조550억원, 영업이익 6685억원을 기록했다고 공시했다.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매출은 20.2%, 영업이익은 95.3% 감소했다.
영업이익 급감의 가장 큰 이유는 주력 사업인 반도체 부문의 적자 탓이다. 반도체를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은 매출 14조7300억원, 영업손실 4조3600억원을 기록했다. 전분기(-4조5800억원)에 이어 2분기 연속 적자다.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4분기(-6900억원)와 2009년 1분기(-7100억원) 연속 DS 부문 적자가 난 이후 처음이다.
지금처럼 반도체 업계가 불황을 마주한 이유는 경기 침체에 있다. 경기가 악화하자 반도체 수요가 급감했다. 고금리에 인플레이션까지 겹치면서 반도체가 들어가는 스마트폰과 가전, 데이터센터 서버 등 수요가 일제히 줄어든 탓이다.
수요가 줄자 반도체 재고가 쌓이고, 많은 재고 탓에 반도체 가격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D램 가격은 2016년 6월 가격 집계를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올해 3월 1달러대로 떨어졌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PC용 D램 범용 제품(DDR4 8Gb)의 7월 평균 고정거래 가격은 1.34달러로 집계됐다. 2021년 말 3.71달러였던 D램 가격이 급락한 것이다. 높은 재고율은 영업이익 악화로 이어졌다. 반도체(재고자산) 시가가 취득원가보다 하락하면 이는 재고자산 평가손실로 영업이익에 반영된다. 많은 재고량재고량이 영업이익 하락의 주범이라는 의미다.
눈길을 해외로 돌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마이크론은 회계연도 2023년 3분기(3~5월) 실적 발표에서 매출 37억5200만달러, 영업손실 14억7000만달러를 각각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57% 줄었고, 영업이익은 적자전환했다. 마이크론은 지난해 9~11월 매출액 41억달러, 영업손실 1억달러를 냈다. 7년 만에 분기 영업적자를 기록한 마이크론은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마이크론은 올해 자발적인 감원과 인력 감축으로 전체 직원 4만8000명 가운데 10%를 줄일 계획이다.
반도체 업계에선 ‘3분기 반등설’을 조심스럽게 이야기한다. 이러한 예상의 배경으로는 업계의 적극적인 감산이 꼽힌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반도체 업황 악화로 마이크론과 SK하이닉스는 일찌감치 ‘감산’이란 카드를 꺼내들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3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생산 증가를 위한 투자를 최소화하고 공정전환 투자도 일부 지연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마이크론 역시 지난해 11월 “D램과 낸드플래시 생산공정에 투입하는 웨이퍼를 2022 회계연도 4분기(6월 3일~9월 29일)보다 약 20% 축소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같은 업계의 감산 흐름에도 삼성전자는 “감산은 없다”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업황 악화가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삼성전자 역시 감산 흐름에 동참했다. 김재준 삼성전자 부사장은 지난해 4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감산 계획을 묻는 질문에 “최고 품질과 라인 운영 최적화를 위해 생산라인 유지·보수 강화와 설비 재배치 등을 강화하고 미래 선단공정 대응을 추진하고 있다”며 “이 과정에서 단기 구간 의미 있는 규모의 비트(bit·비트 단위로 환산한 생산량) 영향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웨이퍼 투입을 줄이는 ‘인위적 감산’ 대신 라인 재배치 등 우회적인 방식으로 감산에 나선다는 의미다.
올 1분기 실적이 더욱 악화하자 삼성전자는 공격적인 감산에 돌입했다. 삼성전자 DS 부문은 2분기부터 당초 목표 생산량의 15% 안팎 수준에서 감산을 하기 시작했다. 특히 올 하반기부터 감산 규모를 20~25% 수준으로 늘리기로 계획을 잡았다. 김 부사장은 올해 1분기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메모리 생산량을 하향 조정하고 있다”며 “2분기부터 재고 수준이 감소하기 시작할 것으로 예상되고 감소 폭은 하반기에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2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도 삼성전자는 감산 계획을 재차 강조했다. 삼성전자는 “하반기에도 생산량 하향 조정을 지속할 예정”이라며 “D램과 낸드 모두 재고 정상화 가속을 위해 추가로 생산 조정을 하겠으나, 특히 낸드 위주의 생산량 하향 조정 폭을 크게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재고 증가 속도가 둔화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삼성전자가 8월 14일 공시한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올 6월 말 기준 DS 부문 재고자산은 33조6896억원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56.6% 늘어난 규모다. 전년 동기와 비교하면 재고자산이 크게 늘었지만, 전분기와 비교하면 재고 급증 속도가 느려졌다. 전분기 대비 재고자산 증가 폭은 지난해 3분기 22.6%, 4분기 10.2%, 올해 1분기 9.9%, 올해 2분기 5.4%다. 지난해 20% 넘었던 증가 폭이 올 2분기 들어 꺾인 것이다.
SK하이닉스 역시 증가 폭이 눈에 띄게 줄었다. SK하이닉스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6월 말 재고자산은 총 16조4202억원이다. 다만 증가 폭은 지난해 하반기(3조7860억원)보다 올 상반기(7555억원)에 크게 줄어들었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인 ‘챗GPT’로 촉발된 고성능 메모리 반도체 수요도 업계 기대감을 높인다. 전 세계 AI 열풍으로 서버에 탑재하는 그래픽처리장치(GPU) 수요가 높아졌다. GPU엔 고성능 메모리 제품인 고대역폭메모리(HBM)가 필수다. HBM이란 D램을 수직으로 연결해 기존 D램보다 데이터 처리 속도를 높인 제품이다. 기존 D램보다 가격이 약 6배 이상 높아 업체로선 수익성을 높이는 데 효과적이다. 모르도르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세계 HBM 시장은 올해 20억4186만달러(약 2조6503억원)에서 2028년 63억2150만달러(약 8조2053억원)로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차세대 D램인 더블데이터레이트(DDR)5 수요 증가도 업계가 기대하는 부분이다. 실제 DDR5는 일부 품목에서는 공급이 부족한 현상도 감지된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는 전체 D램 시장에서 DDR5가 차지하는 비중이 올해 12%에서 내년에는 27%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한다. 황민성 삼성증권 연구위원은 “AI 서버에 들어가는 DDR5 128GB는 기존 DDR4 64GB보다 10배 더 비싸지만 주문이 이어지고 있고 HBM 수요도 좋다”고 분석했다.
다만 일각에선 업황 반등에 시간이 좀 더 걸릴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블룸버그는 최근 “스마트폰·PC 등 반도체의 큰 수요처였던 분야가 조금씩 살아나면서 시장 완화 신호가 나타나는 건 맞지만, 회복은 매우 서서히 일어나고 있다”며 “전체적인 반도체 수요 회복 시기는 불투명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메모리 반도체 시장도 아직 확실한 반등 신호가 보이진 않는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7월 D램 시장 동향과 관련해 “공급자와 구매자가 가격 합의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7월에는 PC D램 계약이 거의 체결되지 않았다”며 “공급자 관점에서 최종 제품 수요 전망은 여전히 불확실성이 크다”고 했다.
업계 1위인 삼성전자는 업황 회복을 기다리며 꾸준히 투자에 나서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상반기 시설·연구개발(R&D) 투자에 총 39조원을 투입했다. 올 2분기에만 시설 투자에 14조5000억원, R&D 투자에 7조2000억원을 각각 투입했다. 시설 투자 규모는 지난해 2분기(12조3000억원)에 비해 18% 증가한 수준이다. 올해 2분기 R&D 투자액은 역대 최대 규모다. 삼성전자는 올해 하반기에도 상반기 수준(25조2000억원) 시설 투자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행보는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 등 주요 반도체 기업이 투자 규모를 축소하는 것과 정반대다. 과거 불황기에 과감한 투자로 격차를 벌리던 ‘초격차 전략’을 이번에도 펼치는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경계현 삼성전자 DS 부문장(사장)도 최근 “기업은 투자를 통해서만 새로운 혁신을 상상할 수 있기 때문에 요즘 같은 경기 침체기에 투자는 훨씬 더 중요하다”라고 말한 바 있다.
특히 대표적인 장치 산업인 반도체는 막대한 투자가 뒷받침돼야 한다. 첨단 반도체 공장(팹)을 지으려면 30조원 이상 자금이 필요하다.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등 첨단 장비의 가격이 대당 3000억~4000억원 수준에 이른다. 꾸준한 투자가 이어지지 않으면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
투자를 위해 삼성전자는 해외 법인이 보유한 자산을 대규모로 들여왔다. 올해 1분기 해외법인에서 들여온 자산만 8조4000억원을 웃돈다. 지난해 연간 총액의 2배가 넘는 수준이다. 삼성전자 1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전자 배당금수익은 8조4400억원으로, 1년 전(1275억원)보다 66배 이상 늘어났다. 삼성전자는 또 투자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 2월 삼성디스플레이에서 20조원을 차입하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최근 보유하던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업체 ASML 지분 일부를 7년 만에 매각했다. 삼성전자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629만7787주(지분율 1.6%)였던 ASML 주식이 2분기 말 275만72주(0.7%)로 감소했다. 같은 기간 지분 가치는 5조5970억원에서 2조6010억원으로 줄었다. 삼성전자는 지분 매각으로 확보한 3조원 안팎 자금을 반도체에 투자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는 현재 경기도 평택과 충남 천안,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 등에 팹을 잇따라 짓고 있다.
이새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