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TV 시장 1·2위인 삼성전자와 LG전자가 TV를 ‘플랫폼’으로 만드는 전략을 펴고 있다. 전 세계 TV 시장이 포화상태인 데다 교체 기간이 긴 TV를 많이, 자주 판매하는 기존의 판매방식이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고 판단해서다. 대신 전 세계에 이미 깔아둔 수억 대의 TV를 통해서 고객과 콘텐츠 기업을 연결하고, 이를 통해 수수료를 벌어들이는 방식을 택했다.
글로벌 TV 시장 강자인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언제부터인가 ‘플랫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기존에 TV가 영상을 보여주는 큰 화면에 그쳤다면, 앞으로는 큰 화면을 내세운 ‘집 안 스마트폰’처럼 변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올해 1월 미국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IT전시회인 ‘CES 2023’에서도 삼성전자·LG전자가 공통적으로 말한 게 바로 ‘TV의 플랫폼화’였다.
김 부사장은 “지난해 미국에서 TV 생방송을 보는 시간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시청 시간보다 적어졌다”며 “시장이 완전히 바뀌었고, 이는 곧 생태계가 바뀐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LG전자도 같은 행사에서 TV의 플랫폼 전략을 강조했다. 조주완 LG전자 사장은 CES 2023에서 “우리 회사의 가장 큰 전환을 TV 사업에서 보고 있다”며 “플랫폼, 광고, 콘텐츠에서 굉장한 성장동력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누적 1억8000만 대를 돌파한 LG 스마트TV를 기반으로 광고 등 새로운 콘텐츠 사업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TV를 플랫폼으로 만든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플랫폼은 쉽게 말하면 여러 사람들이 모여들어서 서로 관계를 맺으며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을 말한다. 구글과 아마존 등이 대표적인 플랫폼 기업으로 꼽힌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TV를 플랫폼으로 만들겠다는 건 이들 기업처럼 TV를 고객과 기업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잇는 통로로 활용하겠다는 의미다. 온라인 시장을 만들어 전 세계 판매자와 소비자를 연결하고 중간에서 수수료를 받는 아마존같이 말이다.
TV 제조사들이 한목소리로 플랫폼 전략을 이야기하는 건 더 이상 TV만 팔아선 돈을 벌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술 발전으로 TV 수명이 길어진 데다 경기 위축으로 주요 시장인 북미·유럽 시장에서 수요가 줄어든 탓이다.
TV 기술력과 성능이 엇비슷해진 상황에서 결국 ‘사용자 인터페이스’와 ‘콘텐츠’가 소비자를 사로잡을 방법이라는 게 제조업체의 인식이다. 소비자가 자사 플랫폼에 익숙해지게 만들어 꾸준히 자사 브랜드 TV를 구매하게 만드는 일종의 ‘록인 효과(소비자 잠금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여기에 코로나19 이후 OTT 시장이 폭발적으로 커진 점도 TV가 플랫폼으로 재탄생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시장조사기관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전 세계 OTT 시장 규모는 2010년 61억달러에서 2021년 1351억달러로 성장했다. 2028년에는 이 시장이 2429억달러로 커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TV 제조사가 플랫폼 전략으로 돈을 버는 방법은 크게 3가지다. 우선 무료 채널 서비스를 통해 광고 수수료 수입을 버는 방식이다. LG전자의 ‘LG채널’과 삼성전자의 ‘삼성 TV 플러스’가 대표적인 예다. LG전자의 무료 채널 서비스인 LG채널의 광고 수수료 수입은 쏠쏠한 것으로 전해졌다. LG전자가 인수한 알폰소의 ‘자동콘텐츠인식(ACR)’ 기술을 활용해 사용자들이 어느 시간대, 어떤 콘텐츠를 주로 보는지를 알 수 있다. 비슷한 시간대에 똑같은 콘텐츠를 보더라도 사람에 따라 광고가 달라진다는 의미다. LG전자는 소비자 맞춤형 광고를 내보내는 대신 업체에서 광고 수수료를 받는다.
플랫폼 입점 수수료도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자사 플랫폼에 넷플릭스 등 다양한 OTT를 내장하는 대신 이들 업체에서 입점 수수료를 받는다. 리모컨에 OTT 버튼을 장착하는 것도 모두 수수료를 받는다.
제조업체들은 세계 곳곳에 있는 TV 제조사에도 플랫폼을 판매해 생태계를 확대하고 있다. 중소형 TV 제조사들이 삼성전자나 LG전자 생태계 안에 들어오고, 대신 플랫폼 사용료를 내는 방식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플랫폼 전략을 펼 수 있는 배경에는 전 세계 곳곳에 깔려 있는 스마트TV가 있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전체 TV 출하량 중 스마트TV 비중은 92%로 집계됐다. 지난해 1분기(89.1%)와 비교하면 2.9%포인트 상승했다. 글로벌 TV 시장에서 스마트TV 출하량 비중이 처음으로 90% 선을 넘어선 것이다. 전체 스마트TV 중 삼성전자 타이젠OS 점유율은 21.8%, LG전자 웹OS 점유율은12.4%를 기록했다.
TV 대수로 따져도 삼성전자는 이미 전 세계에 2억 대 넘는 TV를 팔았고, LG전자도 올해 2억 대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에 따르면 올 1분기 타이젠OS를 적용한 삼성 스마트TV는 누적 연결대수가 2억5000만 대를 돌파한 것으로 나타났다. 누적 연결대수는 현재 인터넷에 연결해 사용하는 숫자를 의미한다. LG전자 플랫폼인 웹 OS가 내장된 스마트TV는 지난해 말 기준 누적 판매대수가 1억8000만 대다. 매년 3000만 대가량 판매한 점을 고려하면 올해 스마트TV 누적 판매대수는 2억 대에 이를 전망이다.
이에 따라 TV 속에 들어가는 플랫폼 경쟁도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갤럭시 스마트폰의 안드로이드OS, 아이폰의 iOS처럼 TV 플랫폼에 따라 소비자 선택이 달라질 수 있어서다.
삼성전자는 ‘타이젠OS’를 내세웠다. 시청자가 좋아하는 콘텐츠를 찾도록 도와주는 ‘유니버설 가이드’와 맞춤형 운동 콘텐츠를 제공하는 ‘삼성헬스’, 다양한 OTT 등이 타이젠OS에 포함돼 있다. 특히 올해부터는 미디어와 게이밍 허브, 매직 스크린 탭 하단에 사용자들이 많이 사용하는 설정과 커넥티드 기기 관리(외부 입력) 메뉴가 추가돼 더욱 편리해졌다. 리모컨에는 주로 많이 사용하는 OTT 서비스인 넷플릭스와 아마존 프라임, 디즈니플러스, 삼성 TV 플러스의 단축 버튼이 장착됐다.
삼성전자는 TV 속 콘텐츠를 키우는 데도 주력하고 있다. 삼성 TV 플러스는 인터넷만 연결하면 영화와 드라마 등 다양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무료 비디오 서비스다. 2021년 4월 모바일 기기에서 시작된 이 서비스는 지난해부터 패밀리 허브 냉장고에서도 지원한다. 올해는 사용자가 즐겨찾기 해놓은 채널 등 100여 개의 프로그램 가이드를 굳이 사용자가 찾지 않아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도록 UX가 개선됐다. 삼성 TV 플러스는 이달부터 미국 방송인 코난 오브라이언의 토크쇼 <코난>을 방영한다.
시청 콘텐츠뿐만 아니라 게임과 예술 등 여러 분야로 서비스도 확대되는 모양새다. 삼성전자는 콘솔 없이도 TV에서 스트리밍 게임을 즐기는 ‘삼성 게이밍 허브’ 서비스를 지난해 6월 내놨다. 네오 QLED 8K를 비롯한 2022년형 스마트TV와 스마트모니터에서 이용할 수 있다. 올해 삼성 게이밍 허브에선 약 2500개 이상의 인기 게임을 즐길 수 있을 전망이다. 김 부사장은 올해 CES 2023에서 “돈을 주고 하는 게임은 다 사라지는 등 시장 자체가 변화하고 있다”면서 “TV 박스가 사라진 것처럼 게이밍 시장도 다양한 경험이 가능한 멀티디바이스와 구독 서비스가 주목받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삼성전자는 집 안에서 예술작품을 구매하는 서비스도 제공한다. 삼성전자는 2017년 작품 구독 서비스인 ‘삼성아트 스토어’를 출시했다. 오스트리아 벨베데레 미술관과 영국 테이트 모던 등 전 세계 50여개 미술관·박물관과 손잡고 세계적인 명작은 물론 신인 작가 작품까지 2000점가량의 작품을 보여준다. 실제 지난해 온라인에서 예술품 판매는 2017년보다 7% 늘었고, 디지털 아트에 대한 지출은 2019년보다 23% 증가했다.
LG전자는 2021년 웹OS 경쟁력을 키우려 미국 광고 데이터 분석 업체인 알폰소를 인수해 ACR기술을 확보했다. 이 솔루션은 고객 동의를 거쳐 시청 콘텐츠를 분석한 뒤 개인 맞춤형 콘텐츠 추천 기능을 제공한다. 이를 기반으로 고객 맞춤형 광고를 내보내고 고객사한테서 수수료를 얻는 등 새로운 수익도 창출할 수 있다. LG전자는 또 최근 제작사 파라마운트와 손잡고 파라마운트플러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영국과 아일랜드를 시작으로 서비스 국가를 늘려 나갈 계획이다. LG전자는 OTT뿐만 아니라 구글 캘린더, MS 윈도365, 애플홈킷, 아마존 알렉사 등 TV에 다양한 앱을 내장했다. 별도 게임기 없이 TV와 게임 조작기를 연결해 실시간 게임을 하고, LG전자가 게임사에서 수수료를 받을 수도 있다. 올해 출시된 스마트TV에는 블록체인 기업인 헤데라와 제휴해 가상화폐 지갑 블레이드월렛이 내장돼 대체불가능토큰(NFT) 작품을 구매하는 기능도 생겼다.
LG전자는 이번에 새로 출시한 2023년형 LG 올레드 에보를 시작으로 플랫폼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기존에는 TV를 켜면 이전에 시청하던 채널을 보여줬지만, 신제품은 소비자가 TV를 켜면 스마트폰처럼 웹OS 홈 화면을 띄워준다. 홈 화면에 들어간 뒤 앱이나 채널에 접속하는 방식이다.
LG전자는 홈 화면에서 개인 맞춤형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계정별로 화면을 구성하는 마이홈 ▲쉽고 빠르게 원하는 콘텐츠를 골라보는 퀵카드 ▲콘텐츠와 연관 TV 기능을 추천하는 인공지능 컨시어지 ▲나만의 맞춤 TV 화질 모드를 정하는 맞춤 화면 설정 등 다양한 편의 기능도 추가했다. 올해 초 기준 LG전자가 웹OS를 공급하는 업체는 300곳에 달한다.
매일경제 산업부 이새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