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서 독립한 LG에너지솔루션, 넘어야 할 과제는… 기업공개·배터리 화재 규명·中 맹추격 3각 파도
원호섭 기자
입력 : 2021.01.06 11:03:24
수정 : 2021.01.06 11:04:24
“우리 앞에 마냥 장밋빛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당장 눈앞에 해결해야 할 수많은 과제들이 놓여 있고,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도전들이 파도처럼 밀려올 것입니다. 하지만 전 두렵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두려워 마십시오. 지금까지 우리가 이뤄온 성과들은 생각보다 위대합니다. 그 저력을 믿고 자신감 있게 LG에너지솔루션의 미래를 만들어 갑시다(김종현 LG에너지솔루션 초대 대표이사 출범사 中).”
LG화학의 전지사업부문이 분사한 LG에너지솔루션이 출범한 지 한 달여가 지났다. LG화학은 2020년 초부터 일본 파나소닉과 중국 CATL 등 굵직한 경쟁기업들을 제치고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점유율 1위를 지켜왔던 만큼 LG에너지솔루션 출범에 대한 배터리 업계의 관심은 상당했다.
‘제2의 반도체’라 불리는 전기차 배터리 시장을 석권하고 있던 만큼 기대감이 컸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20년 13조원에 달했던 매출 규모를 2024년까지 30조원으로 확대하고 생산능력 역시 2020년 말 120 GWh(기가와트시)에서 2023년 260GWh로 확대해 ‘세계 최고의 에너지 솔루션 기업’으로 도약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이를 위해 적기 적소에 투자를 확대해 사업경쟁력을 강화하고 혁신적인 고성능 제품 생산, 스마트팩토리 가동 등 선도적인 공정 기술로 시장을 선도해 나간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김종현 대표의 출범사에서 볼 수 있듯이 LG에너지솔루션의 미래에 꽃길만 가득한 것은 아니다. 늘어나는 수주 물량을 공급하기 위한 자금 조달 계획은 물론 전기차 화재로 불거진 배터리 안전성 문제, 중국 전기차 시장 확대에 따른 중국 기업과의 경쟁 심화 등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있다.
▶자금 조달 위한 IPO는 언제쯤
LG화학이 지난 9월, 이사회를 개최하고 전지사업부를 물적분할 방식으로 분할키로 한 것은 경쟁사와의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실탄을 확보하려는 의도가 컸다. LG화학이 전통적으로 ‘석유화학’ 기업이었던 만큼 사업 분야가 다른 배터리를 따로 떼어내는 게 여러모로 유리하다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돈’이었다. 전기차용 배터리의 경우 수주와 공급 사이에 2~3년의 시차가 있는 만큼 사전 투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신속하고 과감한 투자로 규모의 경제를 한층 강화해야만 전기차 배터리 시장을 주도할 수 있었다.
물적분할은 LG화학이 신설 법인인 LG에너지솔루션 지분을 100% 보유하게 되기 때문에 향후 기업공개(IPO)나 지분 매각 등을 통해 대규모 자금을 유치하기에 용이하다. 실제로 LG화학은 전지사업부문의 물적분할을 발표하면서 “전기차 배터리 사업에서 수주잔고 150조원 이상을 확보하고 있는 가운데 연간 3조원 이상의 시설 투자가 이뤄지고 있어 대규모 투자자금을 적기에 확보할 필요성이 높아졌다”며 “분할을 통해 대규모 투자자금을 유치할 기반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할 결정의 배경을 밝히기도 했다.
분사 전 LG화학은 전지부문에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해왔다. LG화학은 2018년 말 35기가와트시(GWh)였던 생산 능력을 2020년 말 기준 120GWh로 확대됐다. 이 생산캐파를 2023년에는 260GWh로 두 배 이상 늘린다는 계획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현재 미국 테슬라와 우리나라의 현대자동차를 비롯해 제너럴모터스(GM)·포드·크라이슬러·폭스바겐·르노·볼보·아우디·다임러 메르세데스-벤츠·재규어·포르쉐 등 주요 완성차 업체들을 고객사로 두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밀려드는 주문을 소화해내기 위해 규모가 가장 큰 폴란드 공장의 캐파를 60GWh까지 증설할 계획이다. 미국 GM과 50대 50 지분으로 설립하는 배터리셀 합작 공장도 2023년 완공 이후 단계적으로 증설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중국 난징에 있는 생산 기지 2곳의 추가 증설도 진행 중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세계 3대 전기차 시장인 중국, 미국, 유럽 등에 5개의 자체 생산공장과 2개의 합작 생산공장 등 모두 7개의 생산기지를 갖추고 있는데, 이들 가운데 4곳이 증설 중이거나 증설 예정인 셈이다. 그만큼 지속적 투자가 뒷받침되어야만 하는 상황이다.
투자금 확보를 위해서는 기업공개(IPO)가 가장 효과적이다. 금융업계에서는 LG에너지솔루션의 기업 가치를 50조원 안팎으로 추정하고 있는 만큼 IPO 진행 시 10조원이 넘는 투자금 확보를 점치고 있다. 기술 격차 확보를 위해 연구·개발(R&D)에도 대규모 금액이 투자될 것으로 예상된다.
독립법인인 만큼 LG에너지솔루션은 회사채 발행 대신 IPO를 택할 가능성이 크다. IPO 준비에 1년가량이 소요되는 만큼 2021년 안에는 구체적인 계획이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나스닥에 상장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지만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금융업계 진단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에 대해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자금 조달 방안이 없다”면서도 “LG화학이 LG에너지솔루션 지분을 최소 70% 이상 보유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분사 직전 불거진 잇단 배터리 화재 사고
2020년 말 테슬라를 비롯해 현대자동차와 제너럴모터스(GM) 등이 생산한 전기차에서 잇따라 화재가 발생하면서 일부 리콜 조치가 이어졌다.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의 전기차에 대한 리콜에 배터리를 공급한 LG에너지솔루션 또한 난감한 상황이다.
물론 전기차에서 발생한 화재의 원인이 배터리라고 결론 난 적은 없다. 배터리에 문제가 없다 하더라도 완성차 업체의 소프트웨어(SW)나 전기차 설계에 따라 배터리에서 화재가 발생할 수 있어서다. 배터리 업계는 전기차 시장이 조금씩 커지는 상황에서 잇따라 주목받고 있는 화재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사실 전기차에서 발생하는 화재는 확률로 따지면 내연기관의 화재보다 적다고 알려졌다. 미국화재예방협회에 따르면 2018년, 미국에서 약 18만1500건의 고속도로 차량 화재가 발생했는데 대다수가 휘발유와 경유를 연료로 쓰는 내연기관 차량이었다.
전기차에서 화재가 발생할 확률은 내연기관보다 적지만 사람들의 관심이 높다보니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배터리 기업인 미국의 에너지앤드파워테크놀로지의 켄 보이스 연구원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전기차 1200만 대 중 1개꼴에서 화재가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만큼 상황은 호의적”이라면서도 “다만 배터리셀 공급이 매년 늘어나면서 기존 1200만 개 중 1개꼴이던 화재비율이 올라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LG화학 전기차 배터리 연구원들이 배터리 기술 개발을 논의하고 있다.
전기차와 배터리 업계는 전기차 화재 논란을 관련 시장이 커지면서 발생하는 성장통으로 보고 있다. 배터리 자체가 화재가 날 가능성이 항상 존재하는 만큼 반드시 겪어야 하는 통과의례라는 것이다.
실제로 전기차 화재는 비단 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2019년에는 일본 파나소닉 배터리가 탑재된 테슬라의 모델S와 모델X가 배터리 모듈 이상으로 추정되는 화재로 리콜이 진행된 바 있다. 중국 CATL의 배터리가 탑재된 중국 광저우기차의 ‘아이온S’도 지난 5월과 8월 잇따라 화재가 발생하며 원인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삼성SDI의 배터리가 탑재된 BMW X시리즈와 액티브 등도 지난해 2만6000여 대에 대한 리콜이 확정되기도 했다.
업계는 향후 전기차 시대의 도래와 함께 화재와 같은 안전성 논란은 계속해서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화재가 리콜을 비롯해 집단 소송 등으로 이어질 경우 배터리 업체가 금전적으로 비용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다만 전 세계 각국이 환경 규제에 따라 전기차 보급을 빠르게 추진하고 있는 만큼 배터리 산업 확대에 미치는 영향은 적을 것으로 보인다. 아직 전기차는 생소하지만, 내연기관처럼 보편화되고 배터리·전기차 제조사들이 안전에 대한 강화조치를 취하게 되면 오히려 화재 빈도는 지금보다 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CATL 배터리셀.
▶중국의 기울어진 운동장
지난 11월, 전 세계 전기차 배터리 점유율 순위에서 LG에너지솔루션이 근소한 차이로 중국의 CATL에게 1위 자리를 내줬다는 통계가 발표됐다.
배터리 시장조사 업체인 SNE리서치는 2020년 1~9월 글로벌 전기차(EV, PHEV, HEV) 탑재 배터리 사용량에서 CATL은 총 19.2GWh를 기록하며 18.9GWh의 LG에너지솔루션을 제쳤다. 앞서 2020년 10월에 발표된 1∼9월 전기차용 배터리 사용량에서는 LG에너지솔루션이 근소한 차이로 CATL을 앞선 것으로 나타났지만, SNE리서치가 추가 확보한 데이터를 분석했더니 순위가 역전된 것이다.
SNE리서치는 “일부 유럽 국가에서 CATL 배터리 탑재 전기차 판매가 추가로 확인돼 CATL 배터리 사용량이 늘었고 현대차 코나 전기차에 탑재된 일부 배터리 물량이 SK이노베이션의 것으로 확인돼 일부 수치가 조정됐다”고 설명했다.
중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전기차 시장으로 꼽힌다. 한 해 지구에서 판매되는 전기차의 절반이 중국에서 팔릴 정도다.
유럽이 친환경 정책을 추진하면서 전기차 보급이 빠르게 늘고 있지만 중국 시장이 워낙 큰 만큼 이 시장을 놓쳐서는 세계 1위를 유지할 수 없다. LG에너지솔루션은 중국에서 판매되는 테슬라를 비롯해 유럽 지역 진출에 팔을 걷고 나서면서 2020년 초부터 1위를 기록했지만 중국 시장이 회복되면 CATL의 점유율이 커지면서 1위를 계속 유지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중국 시장에서 배터리 업체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바로 ‘보조금’이다.
중국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해온 중국의 폐쇄적인 정책은 원래 2020년 말에 소멸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보조금 정책을 주관하는 중국 공업신식화부는 2020년 보조금 정책을 향후 2년간 유지한다고 발표했다. 아직은 중국 배터리 업체가 한국 일본 등과 정정당당한 기술력 경쟁이 어렵다고 본 것으로 파악된다. 2020년부터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를 탑재한 일부 중국 전기차들도 보조금 명단에 포함되는 등 상황은 그전보다 나아지고 있지만 중국은 자국 배터리 업체 보호를 위해서는 언제라도 규제 및 장벽을 강화할 수 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2016년 말 한국산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를 갑자기 보조금 명단에서 제외한 것은 그 당시에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일”이라며 “중국은 언제든지 자국 사업 보호에 도움이 된다면 폐쇄적인 보조금 제도를 더 연장하거나 한국산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들의 보조금도 갑자기 취소할 수 있기에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대로 우리 정부의 지난 2018년 전기버스 보조금 중 40% 이상이 수입 중국버스에 제공됐다. 중국은 전기차 보조금에서 한국을 완전히 배제해왔는데, 우리 정부는 중국산 배터리를 탑재한 버스에 보조금을 ‘꽤(?)’ 많이 주고 있던 셈이다. 배터리 업체들은 국내 기업들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만큼 정부에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2021년은 배터리 업계에게 중요한 해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예상치 못한 팬데믹에도 불구하고 유럽을 중심으로 친환경 정책이 강화되면서 전기차 시장은 오히려 확대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 미국에서는 조 바이든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미국 전기차 시장에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미국과 유럽, 중국 등 지역에 전기차 시장 지역에 생산기지를 확충하며 곧 벌어질 배터리 대전을 준비해왔다.
더군다나 새해부터는 1회 충전 시 400~500㎞ 주행이 가능한 3세대 배터리를 출시하면서 경쟁사들과 본격적으로 기술력 경쟁을 펼쳐 나간다는 전략이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LG에너지솔루션이 2021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점유율과 기술력 부문에서 글로벌 1위 유지를 이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