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이후 호텔업계는 직격탄을 맞았다. 그렇다고 한없이 백신만 기다릴 순 없는 법, 다양한 패키지에 언택트 서비스를 묶어 매출회복에 나섰다. 다시 일어서기 위한 대책 중 단연 눈에 띄는 건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다. 코로나19 이후 집에 머물며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Over The Top)를 즐기는 이들이 늘어난 것에 착안해 속속 관련 패키지를 선보이고 있다. 일례로 서울드래곤시티는 넷플릭스 시청이 가능한 셋톱박스를 객실에 들였다. 글래드 호텔앤리조트도 메종 글래드 제주에 넷플릭스와 유튜브 등을 이용할 수 있는 UHD 스마트 TV를 설치했다.
굳이 호텔을 찾지 않더라도 OTT 서비스를 이용하는 이들은 코로나19 이전보다 확실히 그 수가 늘었다. 최근 국내 OTT 시장에서 성장세가 도드라진 기업은 넷플릭스다. 전 세계 190여 개국에 1억8300만여 개의 유료 계정을 보유한 넷플릭스는 2016년 국내 진출 이후 빠르게 가입자 수를 늘리고 있다.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으면 원하는 콘텐츠를 언제 어디서나 무제한으로 즐길 수 있으며, 광고나 약정 없이 자유롭게 콘텐츠를 시청할 수 있습니다.”
넷플릭스의 홍보문구다.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에 연결돼 있는 한국을 제대로 겨냥한 매력적인 문구이자 영민한 마케팅 전략이다. 그래서인지 실적도 남다르다. 앱 분석업체 와이즈앱에 따르면 국내 넷플릭스 결제금액 추정치는 올 3월 기준 362억원, 결제자는 272만 명으로 나타났다. 2018년 3월 같은 조사에서 결제금액 추정치는 34억원, 결제자는 26만 명에 불과했다. 2년 사이에 10배나 그 수를 늘린 것이다. 1명이 결제하면 2~3명이 계정을 사용할 수 있는 방식이라 업계에선 실제 이용자수가 적어도 6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인터넷 망 이용료, ISP vs CP 갈등 쟁점화
국내 시장에서 성장가도를 달리던 넷플릭스가 업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건 지난해 말. SK브로드밴드가 방송통신위원회에 넷플릭스와의 망 이용 대가 협상을 중재해달라고 신청하면서 망 이용료에 대한 인터넷회선사업자(ISP·Internet Service Provider)와 콘텐츠사업자(CP·Content Provider)의 갈등이 쟁점화됐다. 급기야 방통위가 5월 중재 결과를 발표하기 전인 지난 4월 14일, 넷플릭스는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한다. 넷플릭스의 국내 법인인 넷플릭스서비시스코리아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낸 소장에는 ‘트래픽과 관련해 망의 운용과 증설, 이용 등의 대가인 망 이용료를 지급할 의무가 없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후 두 기업 간의 소송은 국내 정보통신기술(ICT)업계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가 됐다. 법원 결정에 따라 ISP와 CP의 입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SK브로드밴드, KT, LG유플러스 등 국내 이동통신사가 ISP, 넷플릭스,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외 기업이 CP다. CP는 자체 제작한 콘텐츠를 망에 공급하고 ISP는 이 데이터를 소비자에게 전달해 각각 수익을 올리고 있다.
ISP와 CP는 수년 동안 망 이용료를 놓고 갈등을 빚었다. ISP가 문제 삼는 건 넷플릭스 같은 인기 CP가 유발하는 트래픽이다. 인기 CP들이 고화질 영상을 전송하면서 속도 유지를 위한 망 관리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들 CP로부터 망 이용료를 받아 망 품질 개선에 나서겠다는 게 ISP의 입장이다. 실제로 지난해 이동통신 3사는 5G 네트워크 확장에 8조원을 쏟아 부었다. 하지만 국내 동영상 시장의 60~70%를 점유한 해외 CP들로부터 망 이용료를 전혀 받지 못했다. 국내 CP들이 어느 정도의 이용료를 내고 있는지 정확히 알려지진 않았지만 네이버는 매년 700억원 이상, 카카오는 300억원 이상을 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CP기업의 역차별이 거론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넷플릭스의 인기 상영작 <잉글리시 게임>
소송 대상인 SK브로드밴드는 코로나19 이후 넷플릭스의 국내 이용자가 급증해 과도한 트래픽이 발생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망(한국~일본), 국내 통신망 용량 증설 비용을 넷플릭스도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SK브로드밴드는 일본을 통해 넷플릭스 트래픽이 유입된다. 실제 SK브로드밴드는 지난 1년간 100억원가량(연간 해저 케이블 임대료)을 들여 한국, 일본 간 400기가비트(GB)급 국제 회선을 증설했다. 일본 넷플릭스의 보조 서버로 연결해 영상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망 이용료를 지불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SK브로드밴드가 고객들에게 이미 인터넷 통신료를 받고 있기 때문에 넷플릭스에 망 사용료를 부과하는 건 이중청구라고 주장하고 있다. 2000년대 초 미국에서 처음 거론된 ‘망 중립성(Network Neutrality)’도 내세웠다. 통신망 제공사업자는 모든 콘텐츠를 동등하고 차별 없이 다뤄야 한다는 원칙이다. 트래픽을 유발한다고 넷플릭스를 차별해선 안 된다는 의미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2000년대 중반에 논란이 된 망 중립성은 5세대(G) 이동통신으로 전환하는 현 시점에는 맞지 않는 개념”이라며 “오히려 효율성이 중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회 본회의 표결 현장
▶법적 근거 마련된 망 이용료
이러한 논란은 지난 5월 7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윈회가 글로벌 CP들에 망 이용료를 부담하게 하는 역차별 해소 법안(정보통신망법·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의결하며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국내 CP는 이용료를 부담하는 반면 해외 CP들은 그렇지 않은 상황을 역차별에 해당한다고 봤다. 업계에선 “넷플릭스를 비롯한 글로벌 CP들의 망 무임승차에 제동을 걸 발판이 마련됐다”고 분석했다. 유민봉 미래통합당 의원과 김경진 무소속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CP들에 서비스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적 조치 의무를 부과하고, 정당한 이유 없이 서비스 품질을 떨어뜨릴 수 없도록 규정했다.
지난 5월 20일에는 국회 본회의도 통과했다. 이날 통과된 전기통신사업법 일부 개정안에는 기간통신사업자뿐 아니라 부가통신사업자, 즉 인터넷을 통해 콘텐츠나 플랫폼을 제공하는 업체들도 안정적 서비스 제공 수단을 확보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 조항은 해외 CP가 국내 인터넷 인프라에 무임승차해 책임과 비용은 지지 않고 수익만 가져가는 것을 막자는 취지로 신설됐다. 일명 ‘넷플릭스법’으로 불리는 이유다. 업계에선 “이번 법 개정으로 넷플릭스를 비롯한 글로벌 해외 CP들이 망 이용료를 낼 가능성이 커졌다”고 해석한다. 국내 통신사들은 일단 환영하는 분위기다. 한 ISP업계 관계자는 “무엇보다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빠져나가던 해외 CP에 들이밀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유튜브와 페이스북, 넷플릭스 등 해외 CP들이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방통위 감독망을 피해왔던 그간의 사안을 지적한 것이다. 그런 이유로 개정안이 넷플릭스가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넷플릭스 측은 “국회의 판단을 존중하며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고품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SK브로드밴드 측은 “이용자 보호에 있어 ISP와 CP에게 공동의 책임이 있다는 일관된 입장을 견지해왔다”며 “글로벌 CP에 대해서도 이용자 보호 의무가 있다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넷플릭스에서 상영 중인 국내시리즈 <킹덤> 시즌2
업계 일각에선 “개정안이 통과됐다고 바로 망 이용료를 내는 게 아닌 상황에 이용자가 급증하고 있는 넷플릭스 서비스를 국내 ISP가 막을 수는 없을 것”이라며 “소송전을 통한 시간 끌기도 예상할 수 있다”고 말한다. 방통위의 권한 강화도 거론되고 있다. ISP와 해외 CP 간의 갈등이 방통위의 중재가 아닌 소송 전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다분하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그런가 하면 이번 개정안으로 인해 국내 CP기업의 비용 부담이 커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부가통신사업자가 서비스 안정 수단을 확보해야 한다’는 내용 때문이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는 지난 5월 4일 성명서를 통해 “망 품질 유지는 통신사 본연의 의무”라며 “불공정 개정을 통해 CP가 부당한 의무를 지게 되면 CP들에게 족쇄가 돼 결과적으로 디지털 국가경쟁력을 깎아먹는 개정안이 될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