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딜 이뤄낸 ‘배달의민족’ 전망은… 한국 경쟁보단 아시아 시장 진출 점유율 98%, 공정위 결과 주목
오대석 기자
입력 : 2020.02.03 11:00:47
수정 : 2020.02.03 11:01:16
국내 1위 배달 애플리케이션 서비스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이 지난달 국내 2위, 3위 배달 앱 서비스 ‘요기요’와 ‘배달통’을 운영하는 독일 딜리버리히어로(DH)에 지분 전량을 매각하기로 했다. 딜리버리히어로는 우아한형제들 지분을 전량 인수해 100% 자회사로 편입한다. 동시에 딜리버리히어로와 우아한형제들 경영진은 50 대 50 지분으로 합작회사(JV) ‘우아DH아시아’를 싱가포르에 설립해 한국을 포함해 일본, 대만,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등 전체 아시아 배달 시장 공략의 컨트롤타워로 삼기로 했다.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이번 ‘빅딜’은 글로벌 배달 시장의 지각변동에 따른 기회 모색, 국내 배달 앱 시장 ‘치킨게임’ 탈피, 글로벌 투자자들의 재무적 필요 등 삼박자가 맞아떨어지며 추진·성사된 것으로 분석된다. 양사 모두 이번 빅딜은 국내 배달 시장에서 연간 수천억원의 마케팅비를 쏟아 부으며 모두가 적자를 보는 구조에서 탈피하고, 그 동력을 아시아 배달 시장 진출로 돌려 지속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 뜻을 모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우아한형제들에 투자해온 ‘글로벌 큰손’들도 딜 성사에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국내 대표 스타트업이자, 유니콘으로 꼽히는 우아한형제들의 매각 소식에 국내 배달·스타트업 업계 모두 뜨겁게 달궈졌다. 이번 ‘빅딜’을 보는 세간의 시선은 두 가지다. 산업계에서는 국내 창업 생태계와 인터넷산업 전체의 경쟁력을 입증해, 향후 외국 자본의 유치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딜리버리히어로는 우아한형제들 지분 100%를 40억달러(약 4조7500억원)에 사들이기로 했다. 이는 국내 인터넷산업 인수합병(M&A)으로는 사상 최대 규모다.
지난 2014년 다음과 카카오 합병(3조1000억원)을 넘어섰으며, 최근 성사된 HDC-아시아나 인수 금액(2조5000억원)도 훌쩍 상회했다.
반면 한편에서는 이번 인수로 국내 배달 앱 시장의 독점 사업자가 등장해 경쟁이 제한됨에 따라 시장 부작용이 나타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이번 빅딜의 성사 여부를 가르는 중요 관문으로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심사가 꼽히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우리끼리 싸울 때 아니다” 글로벌 배달 시장 재편에 생존 성장 기회 모색
우아한형제들과 딜리버리히어로 모두 글로벌 배달 시장의 지각변동 시기에 생존과 성장을 도모하기 위한 것을 이번 빅딜의 주요 이유로 꼽고 있다. 중국 텐센트가 투자한 메이퇀은 지난해 전 세계 음식 배달 시장에서 절반에 육박하는 점유율을 차지했다. 메이퇀은 사용자 수만 4억 명에 달한다. 미국 우버이츠, 영국 저스트잇, 독일 딜리버리히어로, 네덜란드 테이크어웨이 등이 이를 거세게 추격하고 있다. 영국 저스트잇은 네덜란드 테이크어웨이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여기에 소프트뱅크 비전펀드의 막대한 투자를 받은 우버, 그랩, 쿠팡 등은 차량 호출·전자상거래 등 기존 서비스에서 음식 배달 시장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딜리버리히어로와 협력은 생존과 글로벌 사업을 위한 가장 강력한 대안으로 부상했다고 우아한형제들은 설명하고 있다.
지난해 딜리버리히어로가 자회사 딜리버리히어로코리아를 통해 운영하는 국내 2위 배달 앱 서비스 요기요는 마케팅비로만 2000억원 이상을 들였다. 소비자 대상 할인이 시작되자, 우아한형제들도 맞불을 놓으면서 출혈 경쟁이 시작됐다.
이 같은 경쟁이 반복된다면, 양사 모두 글로벌 시장이 아닌 한국 시장에만 몰두할 수밖에 없어 글로벌 배달 시장 공략에 뒤처지게 된다는 위기의식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는 최근 매일경제와 인터뷰에서 “배달 시장은 한국에만 있는 사업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미국·네덜란드·영국·독일 같은 곳은 굉장히 큰 상장사까지 나온 시장이고, 중국 배달 플랫폼 기업 메이퇀은 기업가치가 60조원이 넘는다”며 “한국 시장에서만 바라보는 게 아니라 글로벌 관점으로 보면 서로 합종연횡하는 시기라 저희도 어디와 협력할지 고민을 해야 했다. 배달의민족이 한국에선 잘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외국에 나가보면 반대로 한국만 고립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에서만 잘 하는 것이 정말 중요할까, 아니면 글로벌 기업들과 같이 움직여볼까 고민했다”며 “여러 조건을 고려하면 매각·인수 느낌보다는 딜리버리히어로와 힘을 합쳐 더 큰 글로벌 회사를 만드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딜리버리히어로는 한국 시장에서 경쟁 관계면서도, 지난 8년 동안 매년 우아한형제들에 인수 의사를 타진해오는 등 협력에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딜리버리히어로는 인수합병을 통해 신시장으로 끊임없이 진출해온 기업이다. 회사는 작년 12월에 안방 독일을 경쟁사인 테이크어웨이닷컴에 11억달러에 매각했다. 유럽 시장이 포화됐다고 봤기 때문이다. 대신 그 자금을 바탕으로 중동·북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남미, 동유럽으로 거점을 이동 중이다.
탈라밧(UAE 바레인 카타르), 헝거스테이션(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캐리지(UAE 바레인 카타르), Otlob(바레인 이집트), 푸드판다(태국 대만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필리핀) 등이 대표 브랜드다. 40개 이상 국가에 무려 26개 브랜드가 있으며, 이를 위해 지금까지 총 19번에 달하는 인수합병과 매각을 단행했을 정도다.
▶한국도 아직 온라인 배달 서비스 초기 시장
물론 ‘배달왕국’ 한국 시장도 이번 빅딜의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다. 딜리버리히어로는 이번 인수의 또 다른 배경으로 성장 가능성이 큰 한국 배달 시장 영향력 강화를 들고 있다. 딜리버리히어로는 한국이 여전히 전화 주문이 앱 주문보다 많은 온라인 배달 서비스 초기 시장으로 보고 있다. 회사는 이번 M&A를 발판으로 향후 10년간 830억유로(약 108조원)에 달하는 한국 식품 서비스 시장, 1920억유로(약 251조원)에 달하는 한국 식료품 시장에 진출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우아한형제들은 해외 사업에 전념하는 김봉진 대표 대신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맡아온 김범준 부사장을 새 대표로 내정했다.
김 부사장은 KAIST 전산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엔씨소프트와 SK플래닛 등을 거쳐 2015년 우아한형제들에 합류했으며, 주주총회 등 절차를 거쳐 올해 초 최고경영자(CEO)에 취임할 예정이다.
김 대표는 “배달 시장이 역동적으로 바뀌고 있다. 딜리버리히어로가 독일사업부를 매각해 1조원의 실탄을 만들어 성장성이 높은 한국에 투자하면서 지난해 요기요가 마케팅비 2000억원 투자를 발표했다”며 “올해, 내년, 내후년 한국 시장만 잘 지켜내서 1위 사업자가 되기 위한 전쟁을 치러야 하는지, 아니면 딜리버리히어로와 손잡고 아시아와 글로벌에서 훨씬 큰 회사를 만들어야 하는지 고민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딜리버리히어로와는 8년간 경쟁사이기도 하지만, 오래 교류했다. 우리가 경영을 잘 한다면, 그쪽은 인수합병을 통해 큰 회사로 성장해 배울 점이 많다”고 답변했다.
▶글로벌 진출 시너지 어떻게?
양사는 이번 빅딜을 통해 우아한형제들의 운영 능력과 노하우, 딜리버리히어로의 자금력이 더해져 아시아 시장 공략에 시너지를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한국 시장에서 배달 앱 1위로 성장·유지해온 우아한형제들의 성공 DNA를 다른 아시아 시장으로 이식할 것으로 예상된다.
딜리버리히어로는 그동안 한국 시장에서 1위를 고수한 김봉진 대표의 사업 운영 능력, 그동안 우아한형제들이 축적한 데이터와 인공지능(AI) 역량 등 가치를 높게 평가했고, 김봉진 대표도 수차례 인수합병을 통해 글로벌 거대 기업으로 부상한 딜리버리히어로의 자금력과 사업 역량에 함께 하기로 결정했다. 이를 위해 김 대표 등 우아한형제들 경영진과 딜리버리히어로가 50 대 50 지분으로 아시아 시장 교두보 ‘우아DH아시아’를 만들고, 김 대표가 의장을 맡아 사업을 진두지휘한다. 우아DH아시아는 배달의민족을 포함해 아시아 11개국 사업 전반을 경영한다.
딜리버리히어로는 이번 인수 과정에서 17억유로(약 2조2000억원)를 현금으로 주식 소유자들에 지급하고, 나머지 19억유로(약 2조5000억원)는 신주를 발행해 매입하기로 했다.
특히 김 대표를 포함한 경영진이 보유한 우아한형제들 지분 약 13%를 딜리버리히어로 본사 지분과 4년 뒤 교환한다. 책임 있는 경영을 통해 아시아 시장 공략의 성과를 내기 위한 배수의 진인 셈이다.
김 대표는 “한국이 아시아 시장보다 4~5년 정도 빠르다. 서울이 세계적인 메가 시티고, 배달음식·문화 모든 것을 선도하고 있다”며 “급속도로 성장하는 아시아 배달 시장에서 한국에서 쌓은 경험을 갖고 키워보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배달 앱을 운영하려면 식사시간에 몰리고, 축구경기 등 특정 이벤트에 몰리는 막대한 트래픽을 처리하고, 배달 경로와 기사 운용을 최적화하는 기술이 필요하다”며 “한국에서 쌓은 기술력과 인력이 해외 시장 공략을 위한 바탕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정위의 판단 어디로?
양사가 빅딜을 통해 이 같은 ‘큰 그림’을 구상하고 있지만, 아직 인수가 끝난 것은 아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심사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이번 인수가 배달 앱 독점이라는 결과를 가져와, 경쟁 제한에 따른 소상공인 피해가 발생하지는 않는지 면밀히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는 1982년부터 2017년까지 총 76건에 달하는 시정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핵심 잣대는 “기업결합으로서 일정한 거래분야에서 경쟁을 실질적으로 제한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안 된다”는 조항이다. 인수는 좋지만 경쟁제한적인 기업결합은 절대 안 된다는 방침이다. 특히 2004년 삼익악기가 영창악기를 인수하려는 행위에 대해 공정위는 시장점유율이 92%에 달하고 생산과 판매가 독점이 돼 경쟁을 제한할 것이라며 불허했다.
2003년에는 무학과 대선주조를 합하면 부산·경남지역 소주 시장 점유율이 91.5%에 달한다는 이유로 불허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딜리버리히어로는 한국에서 배달의민족과 요기요 서비스를 별도 운영하지만, 국내 배달 앱 1, 2, 3위 업체를 모두 보유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지난 2018년 7월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가 낸 자료에 따르면 국내 배달 앱 시장 점유율은 배달의민족 55.7%, 요기요 33.5%, 배달통 10.8%를 기록했다. 쿠팡, 카카오 등이 배달 중개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아직까지 비중이 크지는 않다. 시장에서는 이런 점을 고려하면 이번 인수로 딜리버리히어로의 한국 배달 앱 시장 점유율이 90% 이상이 될 것이라는 추산이 나온다.
이 점만 보면 공정위의 관문을 통과하지 못할 것 같지만, 셈법은 그렇게 간단치 않다. 심사에서 기준이 되는 시장을 어디까지로 할지 규정하는 ‘시장획정’에 따라 점유율과 영향력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음식 배달과 식료품 등을 배달하는 전자상거래를 따로 나눌 수 있을지도 모호하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아마존이 영국 온라인 음식 배달 업체 딜리버루에 투자하려 하자, 영국 규제 당국은 지난달 말 시장 경쟁을 저해할 수 있는지 조사에 들어갔다. 두 회사 모두 온라인 식료품 배달 시장에서 경쟁을 펼치고 있는데, 아마존이 투자하면 경쟁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조사의 주요 이유다.
또 공정위 결정이 여론을 반영하기도 한다. 공정위는 1999년 외환위기 직후 현대차와 기아차가 합병하면 승용차 시장 점유율을 55%, 화물차 시장 점유율을 95%까지 장악할 수 있다는 지적에도 국가경제의 이익이라는 이유로 승인을 한 적이 있다.
우아한형제들은 딜리버리히어로에 지분 매각을 알리면서, 5000만달러(약 600억원)의 혁신 기금을 마련해 푸드테크 분야에 있는 한국 기술 벤처의 서비스 개발 지원에 쓰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