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글로벌 패션시장은 ‘구찌의, 구찌에 의한, 구찌를 위한’ 시장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글로벌 패션리서치 엔진 ‘리스트(Lyst)’가 발표한 지난해 가장 많이 팔린 제품 TOP5를 살펴보면 구찌의 ‘블룸 슬라이드(꽃무늬 슬리퍼)’(1위), ‘로고 벨트’(3위), ‘에이스 스니커즈’(4위), ‘로고 티셔츠’(5위)가 차례로 수위를 차지했다. 이러한 현상은 국내 시장에서도 마찬가지. 구찌는 지난해 브랜드, 트렌드, 제품 등 주요 검색 항목에서 1위에 올랐다. 이러한 현상은 국내 시장에서도 마찬가지. 지난해 말 매일경제가 국내 4대 백화점(롯데·현대·신세계·갤러리아 명품관) 바이어 의견을 취합한 결과 구찌와 발렌시아가, 생로랑, 샤넬이 가장 매출 신장률이 높은 브랜드로 꼽혔다. 업계 전문가들은 “2030 밀레니얼 세대를 흡수하려는 구찌의 노력이 매출로 이어졌다”고 입을 모은다.
▶브랜드, 제품, 홍보, 판매 모두 파격
불과 4년 전인 2014년까지만 해도 구찌는 매출이 매년 20%나 하락하는 실패를 거듭했다. 어떤 브랜드인지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로고가 보이지 않는 핸드백이 인기를 끈 반면 브랜드를 전면에 내세운 구찌 제품의 인기는 시들해졌다. 부진의 늪에 빠진 구찌는 2015년 패션업계에서 무명에 가까웠던 디자이너 알레산드로 미켈레(Alessandro Michele)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수석 디자이너)로 발탁하며 파격적인 변신을 시작한다.
실제로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브랜드 이미지에서 벗어나 화려하고 튀는 패션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지난해 구찌는 꽃, 동물 등 화려한 문양과 금속, 가죽, 천 등 다양한 소재를 섞어 배치(Mix Match)한 가방, 의류가 모두 히트하며 국내 4대 백화점에서 가장 뜬 브랜드로 지목됐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구찌의 핸드백 신장률만 595%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SNS 등을 활용한 홍보 전략과 온라인 채널을 통한 판매 전략도 주효했다. 구찌닷컴에선 온라인으로만 구입할 수 있는 상품 ‘구찌가든’의 라인업을 강화했다. 2016년엔 에이스 스니커즈를 홍보하기 위해 한국의 보드 여신 고효주, 노르웨이 스냅챗 스타 지오스냅, 브라질 예술가 아난다 나후 등과 협업한 영상을 구찌 인스타그램에 공개하기도 했다.
구찌그룹코리아 관계자는 “구찌는 이그나시 몬레알(Ignasi Monreal), 코코 카피탄(Coco Capitan), 언스킬드 워커(Unskilled Worker) 등 다양한 아티스트와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해 젊은 소비자들에게 어필하고 있다”며 “밀레니얼 세대의 소비 패턴을 파악해 온라인 채널을 활용한 판매 전략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다”고 전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글로벌 시장에서 구찌의 지난해 3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49.4%나 증가했다. 구찌그룹코리아 측은 “남성복과 여성복 라인을 포함한 모든 카테고리에서 두 자릿수의 성장세가 이어졌고, 3분기 온라인 매출은 세 자릿수 성장세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구찌의 올해 주력 아이템은 로고(GUCCI)를 변형한 ‘GUCCY 라인’이다. 모던하고 영(Young)하면서 트렌디(Trendy)한 아이템으로, 밀레니얼 세대를 겨냥한 구찌의 잇 아이템이다. GUCCY 로고와 골드로 프린팅된 별 패턴이 도드라진 구찌(GUCCY) 프린트 미니백은 블랙, 더스티 터쿠아즈, 미스틱 화이트, 골드 등 4가지, ‘파라체르 스니커즈’는 블랙과 화이트로 출시될 예정이다. GG로고가 돋보이는 더블 숄더 토트백 ‘오피디아 백’은 스웨이드 버전을 포함해 다양한 디자인으로 출시된다.
▶온라인 외면한 프라다 하락세
구찌와는 반대로 전통적인 럭셔리 브랜드로 손꼽히는 ‘프라다’ ‘페라가모’ ‘아르마니’ ‘버버리’ 등은 하락세가 확연하다. 프라다는 지난해 상반기 글로벌 실적이 2011년 이후 가장 저조했다. 온라인 시장을 외면한 것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국내 백화점 관계자는 “중국의 반부패운동이 프라다의 글로벌 실적을 하락세로 돌렸다”며 “중국 부호들이 프라다보다 비싼 에르메스나 샤넬을 선호하는 것도 부진의 이유”라고 전했다. 그는 “상승세가 확연한 브랜드에 비해 온라인 판매 등에 뒤처진 것도 원인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실적 부진에 빠진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단정한 정장을 고집하며 여타 명품계의 파격을 거부했고, 클래식 정장 브랜드 ‘키톤’은 지난해 하반기 갤러리아에서 매장을 철수했다. 아르마니도 중가브랜드 확장 등 다변화 전략을 추진하다가 고꾸라졌다. 결국 7종이나 되는 브랜드를 대표 브랜드인 ‘조르지오 아르마니’, 중급 브랜드인 ‘엠포리오 아르마니’, 저가 브랜드인 ‘아르마니 익스체인지’로 통합했다. 영국 브랜드 버버리도 ‘젊고 새로운 버버리’ 이미지를 꾸준히 이어가지 못했다. 특히 일부 잡화가 홍콩에서 생산되면서 품질이 떨어졌다는 지적도 나왔다. 보테가베네타나 지방시, 랑방 등도 지난해에는 힘을 쓰지 못했다.
국내에선 유한회사 설립, 알 수 없는 매출 글로벌 매출 상승은 확연한데, 도대체 국내에서의 실적은 어느 정도일까. 럭셔리 브랜드의 국내 실적은 당사자 외엔 좀처럼 알 길이 없다. 국내서 인기 높은 럭셔리 브랜드의 현실이다. 실제로 에르메스, 샤넬, 루이비통, 구찌 등 브랜드는 국내법인 형태를 유한회사로 설립하거나 전환해 매출 실적 등 경영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루이비통코리아의 경우 2012년 11월에, 구찌그룹코리아는 2014년부터 유한회사로 전환해 이듬해부터 감사보고서를 제출하지 않고 있다. 감사보고서를 공시할 의무가 없는 유한회사가 외국계 럭셔리 브랜드의 전형처럼 활용되자 금융 당국은 유한회사도 외부감사를 받도록 하는 외감법 개정안을 2014년 입법 예고했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2만여 유한회사 중 2000여 회사가 감사를 받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구찌그룹코리아가 마지막으로 감사보고서를 냈던 2013년 말 기준 매출은 1519억원이었다.
[안재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