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활동의 가장 기본이 ‘숨쉬기’라면 그 다음이 ‘움직이기’다. 그 움직이기의 기본은 걷기다. 이에 비해 ‘달리기’는 좀 더 고차원적이다. 일반적 활동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그 결과 몸에선 땀이 나며 숨쉬기가 가빠진다. 도구를 이용하지 않고 오로지 인간의 몸만으로 할 수 있는 가장 고차원적인 움직임, 그것은 바로 달리기다.
한창 갖가지 운동 열풍이 불었을 때도 달리기는 사실 ‘세련된’ 운동 축에 끼지 못했다. 헉헉대며 달리며 끊임없이 쏟아내는 땀, 흐트러지는 머리, 붉게 상기된 얼굴을 생각해보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행을 타는 어떤 운동보다 정직하며, 몸에 반응하는 달리기에 이제 사람들이 열광하기 시작했다.
아저씨들이 소위 ‘난닝구’에 지나치게 짧은 반바지를 입고 동호회 사람들과 뛰는 이미지를 넘어서서 이제 젊은 남녀들도 달리는 행위를 진짜 ‘고차원적 운동’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된 트렌드를 반영해주는 것이 2~3년 전부터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스포츠 패션 브랜드들의 ‘마라톤’ 개최 열풍이다. 초반만 해도 대체 누가 ‘뛰기 위해’ 돈을 지불하겠냐는 시선도 있었지만, 이제는 몇 십초 만에 참가인원 몇 만명이 다 차버리는 가장 ‘핫(Hot)’한 행사가 되어버린 것이 달리기다. 나이키와 아디다스라는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유행을 선두하는 이들 브랜드가 먼저 나섰고, 푸마, 뉴발란스에 이어 데상트 같은 브랜드들도 달리기 이벤트 개최에 나섰다.
2015 뉴레이스
왜 마라톤 마케팅에 나서나
달리기는 생각보다 개최하기가 녹록지 않은 행사다. 일단 뛸 수 있는 거리를 확보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행정기관 차원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특히 최근 ‘도심 마라톤’이 인기를 끌면서 이런 경향은 더 강해졌다. 가장 많은 마라톤 대회가 개최되는 서울시의 경우 주말만 되면 어딜 가나 북적이는 인파 때문에 혼잡한데, 이를 뚫고 코스를 확보하려면 서울시와 경찰청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결국 막대한 비용이 드는 것은 물론, 대관(對官) 업무를 하는 인원 확보도 필수다. 여기에 곳곳에 배치해야 하는 안전요원에 마라톤이라는 경기의 특성상 모든 참가자를 반드시 보험에 가입시켜야 하는 숙제까지, 비용 들어갈 곳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여기에 최근 업체 간 경쟁까지 치열해지면서 좀 더 독특한 코스, 좀 더 많은 기념품 혜택을 줘야 하는 과제까지 안고 있다. 예를 들어 얼마 전 열린 아디다스의 ‘마이런 부산’의 참가비는 3만원인데 기념품으로 티셔츠와 스포츠백을 증정하고, ‘나이키 우먼스 10k&15k’도 티셔츠와 함께 키엘의 쿨링 수분키트, 올리브영 쿨링 레그젤, 나이키 20% 할인쿠폰까지 줬다. 지난해 풍성한 기념품 덕분에 화제가 됐던 뉴발란스 마라톤의 경우 올해 티셔츠와 할인티켓 외에 특별한 기념품이 없어 사람들의 실망을 자아냈을 정도. 푸마의 ‘이그나이트 서울’의 경우 가장 번잡한 홍대-여의도 구간을 일요일 오후 5시에 뛸 수 있다는 메리트가 있었지만, 참가비가 다소 비싼 4만원이었다. 대신 티셔츠와 아베다의 미니 샴푸와 컨디셔너 키트, 물병까지 제공해 ‘비교적’ 혜택이 많은 편이었다.
결국 업체들마다 “마라톤을 개최해서 비즈니스 측면에선 남는 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업체들은 또 이구동성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는 게 많은 행사”라고 평가한다. 매번 온라인으로 접수를 받을 때마다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아디다스, 나이키, 푸마 등이 치고 올라가는 것 자체가 어마어마한 홍보효과라는 것이다. ‘몇 초 만에 마감’ 등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관심이 없던 사람들마저도 한번쯤 호기심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다.
또 최근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 마라톤 참가 자체를 자랑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져 엄청난 홍보효과를 누릴 수 있는 게 가장 크다. 또 마라톤 참가자들은 대회 참가 전 이것저것 물품을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푸마코리아 관계자는 “대회 직전과 직후에 용품 판매가 2배 가까이 상승하는 효과를 거둔 적이 있다”면서 “확실히 대회를 개최하며 브랜드 인지도가 상승하고 제품 노출을 통해 홍보 효과를 누리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또 하나는 이 같은 마라톤을 대중 속으로 투입시킴으로써 러닝 인구가 증가하는 것 자체가 업체들의 장기적 비즈니스 상승에 도움이 된다는 점이다. 러닝 제품은 특성상 제품 교체 주기가 빠른 편이다. 러닝화도 그렇고 땀을 많이 흘리게 되는 티셔츠나 바지 등도 마찬가지다. 이는 업체들에겐 당장 눈에 보이진 않지만 분명히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다.
2014 아디다스 마이런 부산 레이스와 2013 아디다스 마이런 부산 광안대교를 건너고 있는 참가자들
사람들은 왜 ‘달리기’에 열광하는가
달리기는 ‘혼자’ 할 수 있는 대표적 운동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아주 ‘집단적’ 운동이기도 하다. 연습은 나 홀로 할 수 있지만, 막상 결전의 날 뛸 때는 ‘동기부여’를 위해 함께 뛰는 것이 훨씬 더 완주 혹은 기록 향상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평소보다 좋은 성적을 올렸다든가, 평소보다 좋은 기록을 냈을 때의 기쁨은 누구나 ‘자랑하고 싶은’ 대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냥 해서는 그야말로 ‘자랑’에 불과하다. 이 ‘자랑’을 인증해주는 누군가가 필요한데, 그게 바로 마라톤 대회를 개최하는 업체들이다. 정확한 거리와 시간을 측정해주는 칩을 사용해 공신력을 더해주고, 완주 시 각종 기념품도 제공하니 ‘나를 보여주는 데’ 익숙한 2030세대들에게 세련된 방식으로 진행하는 스포츠웨어 업체들의 마라톤은 운동을 넘어 모두가 함께하는 즐거운 놀이이자 나를 인정받게 하는 증인과도 같은 존재다.
여기에 따라오는 각종 사은품도 무시 못한다. 나이키나 아디다스, 푸마 등 브랜드에서 땀 흡수가 잘되고 잘 마르는 소위 ‘흡습속건’ 기능의 러닝 티셔츠 하나 사려면 최소 3만원 이상이다.
그런데 참가비는 이 수준에서 대부분 결정된다. 여기에 나이키의 경우 키엘의 쿨링 키트를, 푸마의 경우 아베다의 여행용 샴푸·컨디셔너 세트에 물병까지 주니 일부 사람들 사이에선 “직접 뛰지 않더라도 사은품만으로도 참가신청 할 만하다”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다.
여기에 업체들 상당수가 물품 구매 시 할인혜택을 받을 수 있는 쿠폰까지 끼워주니 참가하는 사람들 입장에선 그야말로 운동도 하고, 여러 가지 혜택도 얻는 ‘금상첨화’다.
애프터파티 및 이벤트도 참가자들을 끌어들이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다. 푸마 이그나이트 서울의 애프터파티엔 가수 싸이가 등장했다. 땀 흘려 마라톤을 뛰고 난 후 즐기는 신나는 야외 파티까지 즐기느라 사람들은 이날 하루를 그야말로 ‘스웨트(sweat) 데이’로 보냈다는 후문. 사실 싸이는 이 같은 업체들의 마라톤 개최 후 애프터파티 단골 초청 인사다. 워낙 신나는 비트가 어우러진 음악을 선보이기 때문에 마라톤 행사와 잘 어울린다는 평가 때문이다. 지난 4월 열린 뉴발란스 레이스의 경우 애프터파티 때 비가 왔는데도 참가자들이 비를 맞으면서 지누션과 에일리의 무대를 즐겼다.
홍대에서 여의도까지, 푸마 이그나이트 서울 레이스
마라톤 준비는 어떻게
그렇다면 마라톤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일단 봄 시즌 마라톤은 대부분 종료됐으니, 지금부터 준비해서 가을 마라톤에 도전해보는 것은 결코 무리한 목표가 아닐 것이다.
마라톤 붐 초기에는 5km 대회도 있었지만, 5km는 너무 쉽고, 동기부여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지금은 대부분 사라지고 가장 기본적이면서 사람들이 많이 도전하는 코스로는 10km가 있다. 사실 10km를 ‘완주’하는 것 자체는 목표가 아니다. 웬만한 체력과 약간의 연습이 더해진다면 10km 완주 자체는 크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시간이다. 10km를 30분 내에 뛰느냐 1시간 내에 뛰느냐, 아니면 업체가 최대치로 설정해놓은 1시간 30분 내에 들어오느냐가 관건이 된다는 이야기다. 만약 충분한 연습이 되지 않은 상태라면 10km를 1시간 30분 내에 들어오는 것 자체를 목표로 삼아도 좋다. 러닝대회를 경험하고 즐긴다는 것 자체가 의의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욕심을 내본다면 30분~1시간 내 골인을 목표로 해보자. 하지만 이를 위해선 어느 정도 연습이 필요하다. 충분한 준비운동과 스트레칭, 그리고 꾸준히 거리를 늘려가며 뛰는 거리를 점차 늘려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 발 모양과 사이즈에 잘 맞는 러닝화를 잘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야 무릎과 발목에 무리가 가지 않는 건강한 달리기를 할 수 있다. 10km를 목표로 한다면 처음엔 3~4km를 뛰다가 점차 거리를 늘려 10km를 쉬지 않고 꾸준한 속도로 뛸 수 있다면 분명 좋은 기록을 낼 수 있을 것이다.
15km 대회도 있다. 10km와 하프마라톤의 중간 정도인데, 이번엔 나이키가 우먼스레이스에서 이 코스를 운영했다. ‘중급 코스’라고 할 수 있는 15km 코스 혹은 하프코스(20km)를 뛰기 위해선 일단 10km를 무리 없이 완주할 수 있는 정도의 체력이 있어야 한다. 브랜드에서 운영하는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이용해보는 것도 좋다. 나이키의 경우 지난 3월 9일부터 ‘나를 위한 21일’로 명명된 새로운 트레이닝 챌린지 프로그램을 운영했는데, 21일씩 3단계로 총 63일간 진행됐으며, 나이키 마스터 트레이너와 러닝 트레이너가 운영하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트레이닝과 러닝에 대한 조언을 제공해주고 있다.
‘진짜 마라톤’인 42.195km를 달리는 극한의 레이스는 오랜 시간 훈련을 통해 충분한 심폐 능력, 근력, 페이스 등을 갖춰야 완주가 가능하기 때문에 러너들이 도전할 수 있는 최상위급의 경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올해는 심지어 마라톤보다 약 8km나 더 길고, 험난한 코스로 무장한 러닝 대회가 등장했다.
지난 5월 10일 개최된 50km 구간의 산길을 달리는 ‘코리아 50k 국제 트레일 러닝 대회’가 바로 그것. 한국의 트레일 러닝 전문기업 런엑스런(Run X Run)이 개최한 ‘코리아 50k 국제 트레일 러닝 대회’는 동두천 종합운동장을 출발해 칠봉산, 천보산, 해룡산, 왕방산, 어등산을 거쳐 다시 동두천 종합운동장으로 돌아오는 50km 순환 코스로 구성됐다. 출발부터 경기 종료까지 정식 경기 편성 시간이 무려 12시간이나 되는 ‘코리아 50k 국제 트레일 러닝 대회’는 장거리 산길을 달려야 하는 만큼 안전을 위해 미리 준비해야 할 사항들도 많다. 예를 들어, 물통, 응급치료 세트, 호각 등 주최측이 제시하는 필수 장비는 반드시 챙겨야 하며, 불시 장비 검사를 통해 필수 장비를 지참하지 않은 참가자들에게는 페널티를 부과하기도 했다. 공식 장비검사 후 오리엔테이션까지 할 정도로 철저한 준비를 해야만 나갈 수 있는 그야말로 ‘고수들의 잔치’다.
다소 독특한 마라톤도 있다. 데상트가 오는 6월 14일 주최하는 ‘듀애슬론’이 그것이다. 원래 철인 3종 경기라고 불리는 ‘트라이애슬론’에서 수영을 빼고 달리기와 사이클링 2가지 경기로 구성한 대회로 시청 앞 광장서 출발,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남산을 사이클을 타고 13.6km를 달리고 청계천변 5.1km를 달려 총 18.7km를 정복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쉽지 않은, 그러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경기다.
달리기 구간은 길지 않지만, 산길을 오르내리는 사이클링을 13km 이상 완주한 후 5km를 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터. 두 가지 종목에 대한 종합연습이 필요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