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임원 인사철입니다. 승진자 소식은 신문에 나오지만, 승진 누락자나 퇴직자 소식은 어디에도 나오지 않지요. 그저 술자리 이차나 삼차에서 침울하게 한마디씩 나누는 것이 고작입니다.
작년 이맘때, 기업에 있는 지인들을 만나서 술 한잔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서로 돌아가면서 한 해를 정리하고 새해의 포부를 말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대부분 몇 계단씩 건너뛰며 승진 가도를 달리던 유망주들인지라 ‘올해는 또 어떤 놀랄 만한 소식이 기다리고 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그런데 인사이동 소식이 화제에 오르자 그동안 유쾌하게 웃고 떠들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갑자기 조용하게 가라앉았습니다. 이번 인사에서 ‘물먹은’ 사람들이 많았던 것입니다. 특히 평소에 잘나간다고, 자기가 일류라고 자부해왔던 사람일수록 충격이 커 보였습니다.
이들은 대개 세 가지의 감정반응을 겪습니다. 분노와 우울, 그리고 불안입니다.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한순간에 이렇게 버리는가’ 하는 배신감과 분노가 생깁니다. ‘이런 조직을 믿고 여태껏 일을 했다는 말인가’라는 자기 자신에 대한 분노도 생깁니다.
인정받지 못했다는 좌절과 내가 잘못 살아왔다는 자책 때문에 우울해집니다. ‘앞으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막연한 불안도 생깁니다. ‘왜 내가 누락되었을까? 좋다, 이번에는 운이 없었다고 치자. 그런데 다음에도 혹시 누락되면 어쩌지? 나는 지금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매순간에 최선을 다했을 뿐이니까 여한은 없다’ 위로해 보지만 마음이 도대체 갈피를 잡지 못합니다.
어느 것 하나 확실한 것이 없을 때 내면의 심리는 무엇에 의지해야 할까요? 이 어려운 시기를 어떻게 버텨 나가야 할까요?
마침 <삼국지에서 배우는 인생>이란 책에 좋은 사례가 있어서 소개합니다. 삼국지의 영원한 주인공인 제갈공명과 사마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언제나 그랬듯, 촉나라의 운명은 제갈공명의 어깨에 달려 있었습니다. 자만에 빠진 관우가 허망하게 죽자, 장비는 원수를 갚겠다고 분기탱천하여 출정했다가 어이없게도 부하에게 죽임을 당했고, 유비마저 권토중래를 꿈꾸며 절치부심하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제갈공명은 중원의 꿈을 향해 북벌에 나섰고 오장원두에서 드디어 위나라와 일전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돌풍이 몰아쳐 촉의 군기(軍旗)가 부러졌습니다. 제갈공명은 부러진 군기를 보고 자신의 운명이 다했다고 절망했고 이후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촉나라의 운명도 그것으로 끝났지요.
한편 제갈공명의 상대역인 위나라 대장군 사마의는 삼방곡에서 제갈공명의 화공을 받습니다. 그 모진 화공 앞에 모든 식량이 불타버렸고 군사들도 화마에 휩싸여서 전멸될 지경이었습니다. 사마의의 죽음이 눈앞에 닥쳤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계절상 우기가 아닌데도 비가 내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마의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습니다. 이때 사마의는 하늘마저 자신을 돕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마의는 죽은 제갈공명에게도 미치지 못한다고 무시를 당했고, 모두 제갈공명의 탁월함을 칭송할 때 사마의는 언제나 이류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비, 조조, 손권 모두 삼국통일을 완수하지 못했지만, 이류 인생 사마의의 후손이 삼국을 통일하였습니다.
탁월함의 상징이었던 제갈공명은 남을 믿지 못하고 덕이 부족하여 후계자가 없었습니다. 실패를 다룰 줄 몰랐고, 하늘을 읽는 능력을 엉뚱하게도 부정적인 방향으로 사용함으로써, 군기가 부러지는 우연하고 사소한 일에 한 국가의 운명을 걸었습니다.
반면 사마의는 실패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웠습니다. 조조와 그 후계자들의 의심을 받고 여러 차례 모함을 받아 사선을 넘나들면서 이류 인생의 숱한 수모와 설움을 겪었지만, 죽음의 고비에서도 잡초처럼 일어나는 법을 알았고, 하늘마저 자신을 돕는다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제갈공명과 사마의의 사례에서 보듯, 최후의 승리자는 탁월한 사람이 아니라 인내하는 사람입니다. 최후의 승리자는 하늘이 내 편이라고 굳게 믿고 이류 인생의 수모를 이겨낸 사람입니다.
제갈공명처럼 일류로 계속 잘나가지 못해도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마의처럼 수모를 견디고 모함을 참고 인내하면 언젠가 승리를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내할수록 기록이 좋아지는 것이 마라톤입니다. 흔히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합니다. 마라톤은 오랜 시간 동안 이루어지는 매우 힘든 경기입니다. 전국 각지에서 100여 개가 넘는 마라톤 대회가 열리는데, 가보면 많은 장년층 직장인들이 비장한 표정으로 고통을 참으면서 긴 시간을 달립니다. 왜 그럴까요?
타인과 세상이 나의 진가를 알아주지 않을 때, 나를 배신하고 나를 인정하지 않을 때, 우리는 살맛이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마라톤을 완주하고 나면 몸은 지쳐서 쓰러질 지경이지만, 마음은 뿌듯하고 살맛이 납니다. 내가 나를 인정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너 참 애썼다. 너 참 대단하다. 그래 나 아직 죽지 않았다. 살아 있네!” 나에게 받는 인정은 그 누구의 인정보다 강력합니다. 평소에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던 중장년 남자들이 마라톤을 하면서 자기 자신과 수많은 대화를 합니다. 내가 조직의 한 부품으로 그저 그렇게 소모되고 말 수는 없다,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고 울부짖고 싶을 때, 그 눈물과 갈증을 담아 한 발 한 발 묵묵히 옮깁니다. 나의 고유하고 독특하고 유일한 실존을 두 다리로 확인하며, 내 존재를 인정하는 과정입니다.
내가 나를 인정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해봅시다. 마라톤도 좋고, 목공을 배워서 가구를 만들어보는 것도 좋습니다. 무엇인가를 오랫동안 인내하며 성취하는 경험이 중요합니다.
사실 인생에 일류 이류 삼류를 어떻게 정할 수 있겠습니까. 삶의 여러 측면을 총점으로 매길 방법도 없습니다. 그저 자신이 부끄럽지 않게 노력하며 살고, 맹목적 인내가 아니라 자기 삶과 자기 일, 자기가 맺는 관계에 가치를 부여하며 의미를 느끼며 사는 삶이라면, 남들이 뭐라고 평가하든 상관없이 잘산 것 아닐까요.
굳이 구별을 해본다고 해도 일류 인생을 살고 있다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잘나간다고 해봤자 그 시기는 짧을 수밖에 없지요. 어찌 보면, 이류 인생에 오래 머물수록 더 감격적인 일류 인생을 살아볼 희망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마음만은 분명해야 할 겁니다. 이류 인생에 머물러 불평이나 하고 두려움에 져버리면, 자칫 삼류 인생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바닥 밑에 지하를 경험할 수도 있지요.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마음속 두려움과 불안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기백을 잃지 않고 인내한다면 반드시 좋은 시절이 올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동백꽃 필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우종민 교수 직장인의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하고, 스트레스로 가득한 세상에 전염되지 않고 마음건강을 지킬 수 있도록 안내하는 정신건강 멘토이자 대한민국 리더들의 ‘심리주치의’로 활약하고 있다. 현재 인제대 서울백병원 교수로 스트레스연구소장을 겸하고 있으며 <심리경영> <스트레스 힐링> <뒤집는 힘> <남자심리학> <마음력> 등 다수의 저서를 갖고 있다.
[우종민 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