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들을 위한 풀뿌리 금융조직
vs 자산 110조원의 거대금융조직
새마을금고가 변신을 준비 중이다. 기존 안전행정부 산하의 서민금융기관에서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금융위원회의 관리를 받는 제1금융권으로 탈바꿈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어서다.
지난 3월 26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는 법안 소위를 열어 민주당 김민기 위원이 발의한 ‘새마을금고 개정안’을 논의했다. 4월 국회를 통과한 이 법안은 ▲중앙회의 회장을 비상근 명예직으로 변경하고 ▲금고 및 중앙회의 선거에서 선거권자들이 후보자의 정보를 객관적이고 공평하게 제고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새마을금고 지배구조에 대대적인 수술을 예고(현 회장의 임기가 만료되는 시점부터 적용)한 것이다.
게다가 지난 5월 20일에는 새마을금고의 신용사업부문을 은행으로 간주해, 금융감독원의 감독대상으로 지정하는 법안(김관영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발의)이 국회에 제출됐다. 새마을금고를 더 이상 서민을 상대하는 제2금융으로 볼 게 아니라 이제는 제1금융으로 보고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은행가에서는 “새마을금고가 이제는 서민금융기관이 아닌 대형은행으로 변신하는 것 아니냐”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신한-우리-국민-하나-농협만으로도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은행업계에 새마을금고라는 새로운 변수가 등장할 경우 금융계의 새로운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50년 역사를 가진 풀뿌리 금융조직
새마을금고는 조합원에게 규칙적인 저축을 권장하고, 이렇게 조성한 자금을 소상공인에게 저리로 융자하는 서민형 금융조직이다. 두레, 품앗이 등 우리 민족의 전통문화인 상호부조 활동에 뿌리를 두고 있다.
국내에서 새마을금고가 출범한 때는 1963년
4월이었다. 당시 경상남도 재건국민운동본부에서 도내 5개 마을에 ‘마을금고’ 신용조합을 설립한 것을 새마을금고의 출발로 보고 있다.
단순한 마을금고 역할에 머물렀던 새마을금고는 1971년 박정희 대통령이 진행한 새마을운동을 기점으로 폭발적인 성장을 시작했다. 단순한 임의기구였던 마을금고를 제도화해 1972년 ‘신용조합법’을 시행하며 새마을금고의 설립, 대출한도, 이자율 한도 등을 법률적으로 정했기 때문이다.
이후 1982년에는 새마을금고법이 제정됐다. 당시 부실금고 통폐합과 정비작업이 진행됐고, 새마을금고 안전기금도 설치됐다.
이 법안이 제정된 것은 새마을금고 조합원의 납입금 환급보증과 회원들의 재산보호가 목적이었다.
새마을금고는 이후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다양한 투자를 시작했다. 금고 숫자 역시 1979년 정점을 찍었다.
하지만 조합원과 자산은 꾸준히 증가했고, 2012년에는 자산 100조원을 돌파했다.
신종백 새마을금고중앙회 회장
지배구조 변경의 핵심은 관리감독 권한
그러나 설립된 지 반세기가 지났음에도 금융전문성이나 관리감독 측면에서는 부실한 부분이 많았다. 자산보유액이 100조원을 돌파했음에도 내부직원들의 도덕적 해이 사건이 꼬리를 물고 터졌기 때문이다.
실제 2009년에 서울의 한 새마을금고 지점장은 고객자금 80억원을 유치한 뒤 잠적했다. 지난해에는 대구에서 고객돈 16억원을 횡령한 사건도 있었다.
2009~2013년까지 5년간 횡령사고만 총 21건에 피해액만 266억원에 달한다. 이 때문에 중앙회와 안전행정부의 감사가 허술하다는 지적을 많았다.
새마을금고 지배구조 변경안 역시 이런 점 때문에 제출됐다. 중앙회장이 갖고 있던 제왕적 권한을 전문성을 갖춘 3명의 상임이사(신용공제, 지도감독, 전무이사)에게 분산하는 형태다.
대신 회장은 이들 3명의 상임이사를 평가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금융권 역시 새마을금고의 관리시스템이 위험하다고 평가한다.
내부적으로는 회장이 선거를 통해 선출되다 보니 전문성과 관련 없는 인물이 회장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현행 새마을금고 조직법에 따르면 중앙회 회장에게 거의 모든 권한이 집중돼 있어 더 위험하다고 강조했다.
관리감독 역시 허술하다는 반응이다. 새마을금고는 관리감독을 담당하는 부처가 금융당국이 아닌 안전행정부다. 금감원이 안행부로부터 요청을 받아 매년 40여 개 정도의 지역 금고를 검사하지만, 역부족이다. 다른 금고들은 중앙회가 맡고 있으며, 중앙회는 안행부의 감독을 받는 구조다.
게다가 금융감독원을 비롯한 금융당국에는 새마을금고중앙회의 자산과 연체율 등과 같은 기본적인 통계가 전무하다. 100조원 이상의 자산을 갖고 M&A시장의 강자로 평가받을 정도로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실상은 관리감독의 사각지대에 있는 셈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새마을금고의 관리감독 체계는 과거부터 이어온 고질적인 문제”라며 “무리한 투자와 대출을 하지 않도록 내부통제시스템과 감독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형은행으로 변신가능성 높아
새마을금고를 놓고 관리감독권부터 지배구조까지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만,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새마을금고는 의외로 평온한 모습이다. 새마을금고의 한 관계자는 “소관 부처가 바뀐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면서 “현재도 금감원과의 합동검사를 받고 있는 만큼 문제될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 새마을금고의 관리감독 부처가 기존 안행부에서 금감원으로 변경돼도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새마을금고의 모든 사업부분이 감독을 받는 것이 아니라 신용공제 부문만 감독을 받기 때문이다. 기존의 다른 사업들은 현행 체제를 유지하는 셈이다.
새마을금고중앙회는 이와 관련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현재와 같은 지배구조로도 1997년 외환위기 등을 극복하고 꾸준히 성장한 만큼 현행 체제의 장점도 고려해줬으면 하는 게 중앙회의 반응이다.
차분한 새마을금고와 달리 금융권은 굉장히 민감한 모습이다.
새마을금고가 금감원의 관리감독을 받는 것을 계기로 농협중앙회처럼 제1금융으로의 변신을 선언는 건 아닌지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한 외국계 IB은행 임원은 “우리금융의 매각이 진행되고 있어 새마을금고의 움직임도 주목받고 있다”면서 “만약 새마을금고가 은행업으로 업종전환을 밝히면서 덩치 불리기 경쟁을 시작하면 금융권의 일대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설립 반세기 동안 서민들의 종잣돈 창구로 성장하며 풀뿌리 서민금융으로 성장한 새마을금고. 지배구조 개편과 관리감독부처 변경이라는 경영환경의 변화 속에서 새마을금고는 ‘금고’를 떼고 ‘은행’이란 송곳니를 장착할까. 초식공룡에서 육식공룡으로 진화할 가능성이 높은 새마을금고의 행보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