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 기업의 미래 먹거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다. 비단 한국 기업뿐 아니라, 금융위기 이후의 글로벌 장기 불황으로 많은 글로벌 기업이 변곡점에 서 있다. 한국 대기업은 오너 중심의 과감한 의사 결정과 추진력 등 세계 어느 곳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독특한 방식으로 고속 성장해 왔다. 그 결과 현재의 삼성전자나 현대차 같은 글로벌 기업을 일궜다. 하지만 이런 기업들은 이제까지 이룬 엄청난 성취를 토대로 한 단계 더 도약할 것이냐, 아니면 잠시 현상 유지를 하다가 궁극적으로는 서서히 하향 곡선을 긋게 될 것이냐 하는 갈림길에 서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기업 최고경영자는 100년 기업을 만드는 리더십을 화두로 삼아야 한다. 물론 100년 세월을 견딘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실제 100년 이상의 역사를 이어 온 글로벌 기업을 찾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100년 넘은 기업이 미국에 150여 개, 영국 40여 개, 일본 40여 개, 독일 20여 개 있다.
프록터 앤드 갬블, 제너럴 일렉트릭, 보쉬 등. 이런 위대한 기업을 자세히 살펴보면 몇 가지 공통적인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100년 기업을 목표로 하는 기업 경영자가 새겨야 할 보편적인 원칙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구체적으로 CEO가 해야 할 일은 네 가지로 나뉜다. 장기적 가치 창출의 의지를 다지는 것, 개방적이며 질문하는 문화를 조성하는 것, 기업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인식하고 이를 다할 것, 경영진을 정기적으로 교체할 것 등이다.
장기적 가치창출 의지를 다져라
첫 번째로 기업이 장기적으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의지를 새롭게 다져야 한다. 부진한 실적이 나왔을 경우, 이를 두고 ‘시장이 기업을 잘못 평가하고 있다’며 대수롭지 않게 넘겨 버리거나 우수한 실적을 기록했던 한두 개 분기를 가리키며 사업 펀더멘털의 악화를 무시하기란 굉장히 쉬운 일이다. 그러나 비판하는 세력을 폄하하거나 잘한 일을 내세우기 전에, 신중한 리더는 길고 날카로운 눈으로 거울을 들여다 보아야 한다. 고객, 주주, 기타 이해관계자들에 대한 가치 창출 요소, 그리고 가치 파괴 요소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은 CEO가 갖추어야 할 핵심 역량이다.
CEO와 그의 팀은 정기적으로 기업 포트폴리오를 냉철하게, 그리고 때로는 인정사정없이 검토하여 사업부의 성과 부진이나 시장 점유율, 매출 총이익, 가격결정력 등 주요 가치 창출 요소의 하락을 감지해 내야 한다.
이와 함께 매출을 증대시킬 수 있는 전략도 추진해야 한다. 그러나 이 때 단지 시장을 만족시키기 위해 사업 매입이나 매각 등 고속 성장을 약속하는 솔깃한 제안에 넘어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이러한 전략이 필요한 때도 물론 있다. 그러나 약속한 것은 많지만 부실하게 설계 및 이행되어 결국 기업의 장기적 건전성을 심각하게 훼손시키고 마는 대형 인수합병(M&A)이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BCG 분석 결과에 따르면 1988년부터 2010년까지 체결된 공개 인수합병 거래 중 절반 이상은 주주가치를 파괴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기업이 성공할 수 있는 궁극적인 방법은 차별화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를 잘 판매하는 것이다. 금융 시장에서 받는 압력이 아무리 크더라도 기업의 리더는 이를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자유롭게 질문하는 문화를 만들라
두 번째는 개방적이며 질문하는 문화를 조성하고 기업 내 주요 의사 결정권자들이 기존 통념에 도전하도록 장려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CEO 입장에서는 자신이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 수립해 놓은 계획에 의문을 제기하도록 다른 직원들을 장려하는 것이 불편한 일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영진이 보복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기업은 이러한 분위기를 원하고 있기도 하다.
허심탄회한 논의를 장려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CEO가 기존 비즈니스 모델에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이러한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다. 또 다른 방법은 여러 경영진이 하나의 팀이 되어 반대 의견을 개진하면서 선의의 비판자를 하는 것이다.
전략적 계획에 대해 경영 위원회 멤버들이 새로운 관점을 취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시나리오(scenario)나 사고의 ‘틀(box)’을 수립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것은 시나리오 플래닝(scenario planning)이나 ‘새로운 사고하기(think outside the box)’와 같은 식상한 방법과는 차이가 있다. 오히려 이 방법은 모든 것에 질문을 던지고,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을 생각해 내는, ‘새로운 틀에서 사고하기(think in new boxes)’라는 매우 흥미로운 과정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새로운 시나리오의 타당성 유무가 아니다. CEO와 경영진이 자신들이 선호하고 있는 방식을 새로운 틀에서 테스트할 수 있고 이를 통해 경영진의 관점이 허물어 질 수 있을 정도로 각 사고의 틀이 충분히 도발적인가의 여부이다.
CEO는 미래에 대한 새로운 관점도 수립해야 하지만 이와 동시에 철저히 실용적인 관점에 입각하여 업무를 관리하고 체계화하는 방식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CEO가 조직 개편을 지시하는 경우 그 의도가 아무리 좋아도 결국 기업의 구조와 프로세스, 그리고 시스템만 늘려 놓아 비용을 낭비하고 복잡성만 키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잊지 말라
세 번째로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잊어서는 안 된다. 기업은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기업 리더는 지역, 국가, 국제 사회에서 중요한 시민이다. 따라서 CEO는 지역 사회 내에서 자신의 역할에 특별히 신경 써야 하고 행동을 통해 선례를 만들어야 한다. 현재와 미래를 위해 돈도 잘 벌면서 ‘선하게 행동(Do well and Do good)’해야 한다. 단기 성과에만 연연하고 최고 경영진에게 과도한 보너스를 지급하는 태도는 기업의 존립 자체를 위협한다. 특히나 지금과 같이 서구 선진국이 긴축 정책을 실시하고 전 세계적으로 빈부 격차가 커지는 시기에는 더욱 그렇다.
모범적인 선례를 남기기 위해 CEO는 “나의 급여는 나의 실적에 따라 적정하게 지급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 만약 그 대답이 ‘그렇지 않다’라면 분명 문제다. 최고 실적을 내는 경영진은 당연히 제대로 된 보상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주주, 고객, 지역 사회에 대한 의무를 소홀히 하고 심지어 이들을 속이기까지 하는 경영진에게 후한 보상이 이뤄지고 있다면 이는 분명 재검토해야 할 사항이다. CEO는 또 “우리 기업은 사회에 올바르게 공헌하고 있는가?”라는 질문도 해야 한다. 시민의식, 신뢰, 지속가능성, 평판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의 리더는 오로지 기업만을 위할 수 없다. 위기 대응력과 책임성이 높은 지역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데 CEO가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기업은 자사의 제품과 서비스, 일자리 창출, 교육, 역량 강화 트레이닝 등을 통해 지역 사회의 복지(well-being) 증진에 기여할 수 있다. 법인세도 올바르게 납부해야 한다. 세부담을 최소화시키기 위해 합법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은 기업의 당연한 권리이다. 그러나 그 도가 지나치면 소비자 반발 등 심각한 파장을 불러 올 수 있다. 특히나 지금 각국 정부는 탈세와 부실한 추징의 영향으로 대규모 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때여서 이 경우 파장이 더 클 수 있다. 노동법, 환경 규제, 품질 기준 등의 준수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경영진을 정기적으로 바꿔라
네 번째는 경영진을 정기적으로 교체하는 일이다. CEO는 주기적으로 자신의 측근을 포함하여 주변 인사를 개편해야 한다. 최고의 자리에 있다는 것은 항상 외로운 일이지만 경영진 교체시기보다 더 외로운 순간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CEO가 절대 게을리 할 수 없는 일이다. CEO는 현 상태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바로 자신들이 그 현 상태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에), 기업보다 자신의 경력을 중요시 하며, 반대 의견을 내야 하는 시점에도 침묵으로 일관하는 사람들을 주변에 둘 만큼 한가한 자리가 아니다.
CEO 자신의 임기 역시 제한되어야 한다. 아무리 기업 내 최고의 리더라 할지라도 기업 위에 군림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필자의 개인적인 경험을 기준으로 볼 때, 진정한 청지기 정신에 입각한다면 대부분의 CEO는 10년 이상 보직을 유지해서는 안 된다.
왜 풍부한 경험을 쌓아온 최고 경영자가 기업에서 물러나야 하는가? 대답은 간단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조직에 필요한 변화를 추진하는 것은 점점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물론 오랜 재임 기간에도 불구하고 수십 년 동안 계속해서 가치를 창출해 오고 있는 훌륭한 CEO들이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장기 집권한 CEO들이 오늘날과 같이 변화가 빠르고 변동성이 높은 환경에서 순식간에 구식이 될 수 있는 경영 방식을 고집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과거의 성공이 현재나 미래에도 또 다른 성공을 불러오는 경우가 있기도 하지만, 안주하는 태도를 초래할 수도 있다. 물러나야 할 시점을 아는 것은 기업뿐만 아니라 정계나 스포츠계 등 어디서나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성공적인 리더는 이제까지 쌓아 온 유산을 해치지는 않을까 주의하면서, 자신이 이 기업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고 여기선 안 된다.
만사가 그렇듯 장수의 비결은 기본에 충실하는 것이다. 기업의 가장 본질적인 목표는 고객에게는 가치를, 주주들에게는 수익을 지속 가능한 방법으로 창출하는 것이다. 따라서 한 기업의 리더로서 100년 기업을 만들기 위해 CEO가 해야 할 일은 이러한 네 가지 기본적인 목표를 추진하고 ‘실행(execute)’하는 것이다. 기업의 최고 리더를 ‘Chief Executive Officer’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 있다.